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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1월의 기록 6건

일자가 있는 기록은 날짜순으로,
월까지만 알려진 기록은 마지막에 모았습니다.

현재 6건 표시

06 · 월

1919년 1월 6일 일본 도쿄 조선기독교청년회관에서 재일 조선인 유학생들이 웅변회를 개최하고 구체적인 독립운동에 나서기로 결의함. 회의 참가자들은 최팔용, 송계백, 김도연 등 실행위원 10명을 선정하고 독립선언 발표 및 일본 정부와 각국 외교공관에 대한 전달 방안을 논의함. 이 움직임은 2월 8일 도쿄의 조선청년독립단이 발표한 2·8 독립선언을 준비하는 핵심 단계였으며, 이후 3·1운동의 국제적 배경과도 연결됨.

07 · 화

18 · 토

1919년 1월 18일 제1차 세계대전 승전 연합국 대표들이 파리에 모여 강화 조건과 전후 국제 질서를 논의하는 회의를 개막. 미국 윌슨·프랑스 클레망소·영국 로이드 조지·이탈리아 오를란도의 '4대 거두'가 핵심 결정을 주도. 20세기 전반 국제 질서의 틀을 짠 거대한 외교 무대의 출발.

인종 평등 제안 (1919)

제1차 세계대전 승전국 대표들이 파리에서 전후 평화조약을 준비하는 회의를 열음. 회의에는 27개국이 대표를 파견했으며, 패전국은 초청 대상에서 제외됨. 새 국경과 국제관계 원칙, 국제연맹 구상을 논의하는 다자외교의 장이 마련됨.

파리장서운동

21 · 화

대한제국 초대 황제이자 조선 제26대 국왕인 고종이 덕수궁 함녕전에서 승하함. 갑작스러운 죽음 뒤 일본에 의한 독살설이 퍼져 반일 여론이 높아졌으며, 국장을 앞두고 서울로 모인 사람들의 움직임이 3·1운동의 사회적 배경 가운데 하나가 됨. 독살설의 유포와 실제 사인을 동일시할 수는 없으며, 고종 사후에는 덕수궁의 궁역 축소와 전각 철거가 더욱 진행됨.

삼일절 덕수궁 기미독립선언서

일자 미상

재일 조선인 유학생 실행위원들이 조선청년독립단을 조직하고 독립선언서와 결의문 작성에 착수. 백관수·김도연·이광수가 기초위원으로 선출되고, 실제 선언서 문안은 이광수가 전담한 것으로 알려짐. 완성된 독립선언서와 결의문을 한국어·일본어·영어로 마련하며 도쿄에서 독립을 선포하기 위한 조직과 문건을 갖춘 단계.

이광수 (춘원) 기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