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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의 기록 4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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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과 평양의 대표 선수들이 경성 휘문고보 운동장에서 첫 경평축구대항전을 벌였음. 조선일보가 주최한 대회는 10월 8일부터 10일까지 세 경기로 진행되었고, 평양 대표팀이 2승 1무를 기록했음.

당시의 대표팀은 1933년에 정식 창단되는 경성축구단·평양축구단과 구분할 필요가 있음. 학교와 민간 축구단에서 모인 선수들의 대결이 도시 전체의 관심사로 커지면서, 경평전은 근대적인 관람 스포츠와 도시 라이벌 문화의 상징이 되었음.

1929년 10월 28일 뉴욕 주식시장에서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가 하루 만에 약 12.8% 떨어진 이른바 ‘블랙 먼데이’ 발생. 나흘 전 검은 목요일 이후 가라앉지 않은 매도 압력이 다시 급증했고, 다음 날 검은 화요일에도 폭락이 이어짐. 미국의 증권시장 붕괴가 금융·경제 전반의 위기로 심화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사건이며, 이후 세계 대공황과 연결되는 역사적 전환점임. 다만 대공황의 발생 원인을 이날의 주가 하락 하나로 환원할 수는 없음.

세계 대공황

1929년 10월 29일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에서 대규모 투매가 발생해 약 1,640만 주가 거래되고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가 하루 만에 약 12% 하락함. 전날 블랙 먼데이에 이어 주가 폭락이 계속된 ‘검은 화요일’로, 1929년 주식시장 붕괴와 이후 세계 대공황으로 이어지는 금융 불안의 상징적 사건임. 1929년 가을의 주가 급락은 대공황 악화의 중요한 계기였지만 은행 위기, 통화 긴축, 국제 금본위제와 무역 위축 등 다른 원인도 함께 고려해야 함.

검은 화요일 세계 대공황

한글날 기념식에서 100여 명에 이르는 각계 인사의 발기로 조선어사전편찬회를 조직하고 우리말 사전 편찬에 착수함. 신명균·이극로·이윤재·이중화·최현배가 집행위원으로, 이극로·이윤재·한징 등이 편찬원으로 선정됨. 28년 뒤 『큰사전』 완간으로 결실을 맺는 대장정의 출발점.

조선어학회 이극로 집행위원

버지니아 울프가 《자기만의 방》에서 여성 작가의 창작 조건과 문학적 계보를 논하면서 제인 오스틴을 중요한 선배 작가로 다룸. 후대 연구에서는 울프가 가족 전기에서 형성된 온순한 작가 이미지를 넘어 오스틴을 풍자적이고 비판적인 여성 작가이자 모더니즘의 선행자로 다시 읽은 과정으로 평가함.

애비 올드리치 록펠러·릴리 P. 블리스·메리 퀸 설리번이 발의해 1929년 뉴욕에 근대미술 전문 미술관을 설립함. A. 콩거 굿이어를 초대 회장, 알프레드 H. 바 주니어를 초대 관장으로 두고, 5번가 헥셔 빌딩의 임대 공간에서 월스트리트 대폭락 9일 뒤인 11월 7일 일반에 개관. 유럽 모더니즘을 전문으로 내건 맨해튼 최초의 미술관으로, 이후 근현대 미술 제도의 출발점이 됨.

뉴욕 현대 미술관 (MoMA)

개관과 함께 후기인상주의 거장 4인의 작품만으로 첫 전시를 구성함. 전적으로 대여 작품으로 꾸려졌고 47,293명이 관람하며 큰 호응을 얻음. 동시대 화가들이 특히 존경한 화가들을 골랐다는 초대 관장 바의 기획 의도가 드러난, 미술관의 방향을 예고한 첫 전시.

뉴욕 현대 미술관 (MoMA)

신간회가 광주학생운동을 전국적 민중운동으로 확대하기 위해 서울 안국동에서 민중대회를 열기로 했으나, 대회 개최 약 6시간 전 일제 경찰이 신간회 본부를 포위해 준비 중이던 조병옥 등 신간회 회원과 관련 단체 인사들을 대거 검거함.

조병옥

진명 학생들이 광주학생운동에 호응하여 항일행동과 동맹휴학에 참여. 배화·중앙보육·정신 등 서울 여러 학교의 학생들도 광주 학생 지원과 일제 규탄에 동참

학생운동의 확산을 막으려는 식민 당국이 같은 날 조기 겨울방학 조치. 시위와 동맹휴학을 억제하기 위해 학교 수업을 앞당겨 중단

진명여자고등학교

1929년 주가 대폭락 이후 은행 파산과 통화수축이 확산되는 동안 연방준비제도가 지역 연방준비은행 사이의 정책 견해 차이와 당시의 통화정책 체계 아래 충분한 유동성 공급에 나서지 못함. 대공황기의 경험은 연준의 정책 운영과 조직구조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졌으며, 이후 1935년 은행법을 통한 통화정책 의사결정 구조 재편의 배경 가운데 하나가 됨.

1929년 미국 은행가 오언 D. 영이 이끄는 전문가 위원회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 배상금의 상환 조건을 재조정하는 영 플랜을 마련. 헤이그 회의의 배상금 문제 협의 과정에서 지급·관리를 담당할 국제은행 설립도 구상.

독일의 전쟁배상금 처리를 위한 기구이면서 주요 중앙은행의 정례 협력을 위한 회의체로 출범하게 된 BIS 설립의 직접적인 배경.

국제결제은행

오펜하이머가 UC 버클리와 캘리포니아 공과대학교에서 교수 활동을 시작함. 두 학교를 오가며 연구·교육을 이어가고 젊은 이론물리학자와 대학원생들을 모아, 특히 버클리를 미국 이론물리학의 주요 연구 거점으로 성장시키는 데 기여함.

김명순이 소설 「모르는 사람같이」를 발표.

소문으로 고통받는 여성 인물 순실을 중심에 놓은 작품. 송명희는 이 소설을 여성을 둘러싼 소문과 그에 휘둘리는 남성의 태도에 대한 비판으로 해석

회동서관에서 김명순의 두 번째 창작집 『애인의 선물』을 출간.

국회도서관은 원본 발행 연도를 [1929]로 기재. 원본의 판권 부분이 소실되어, 복원본 출판사도 당시 문예지 광고 등을 근거로 출간 시기를 1929년경으로 추정.

송명희의 연구는 1928~1929년으로 추정하고, 한국문학번역원 한국어 서지는 출판 연도를 불명으로 기재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과를 졸업하고 조선총독부 건축 부문의 기수로 근무를 시작한 해. 도면과 수치, 근대적 건물의 공간을 다루는 전문 교육을 받은 작가라는 점을 보여 주는 이력. 이후 시에 등장하는 기하학적 표현과 시각적 배치를 살펴볼 때 참고할 배경이지만, 모든 표현을 건축 경력의 직접적 결과로 단정할 수는 없는 관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