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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10월의 기록 9건

일자가 있는 기록은 날짜순으로,
월까지만 알려진 기록은 마지막에 모았습니다.

현재 9건 표시

02 · 화

광복 직후 사원자치위원회가 매일신보 발행을 이어가던 가운데, 1945년 10월 2일 미군정청이 매일신보사를 접수함. 이후 오세창 등 새 간부진을 중심으로 신문사가 재편되고, 매일신보는 서울신문으로 이름을 바꿔 발행되는 방향으로 정리됨. 총독부 기관지였던 매일신보가 해방 직후 새 언론 체제로 넘어가는 과도기.

매일신보

05 · 금

10 · 수

평양에서 조선공산당 서북5도당 책임자 및 열성자대회가 시작됨. 대회는 10월 13일까지 이어졌으며 이 과정에서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이 조직됨. 북한은 10월 10일을 조선로동당 창건일로 기념하지만, 현 조선로동당은 이후 북조선로동당과 남조선로동당의 통합을 거쳐 1949년에 성립한 조직으로 구분할 필요가 있음.

14 · 일

해방 직후 평양 공설운동장에서 열린 김일성 장군 환영 평양시 민중대회에서 김일성이 일반 대중 앞에 처음 공식적으로 등장해 연설함. 소련군이 점령한 북부 지역에서 항일 활동 경력을 내세운 김일성을 주민에게 소개한 대규모 정치 집회의 성격을 가짐.

이 행사는 해방 이후 북부 지역 정치 지도부가 재편되는 과정과 김일성이 정치적 지도자로 부상하는 초기 단계를 보여주는 사건. 당시 발표된 연설 요지는 이튿날 《평양민보》에 소개됨.

16 · 화

이승만이 1945년 10월 16일 김포비행장에 도착했음. 이튿날 기자회견에서 개인 자격의 귀국임을 밝히고 자주독립과 단결을 호소했음.

1945년 10월 16일, 이승만이 김포비행장에 도착했음. 1912년 미국으로 떠난 뒤 33년 만의 귀국이었음. 일본의 패전과 해방으로 독립운동의 과제가 국내에서 어떤 국가를 세울 것인가의 문제로 바뀌던 시기에, 오랫동안 미국을 중심으로 활동한 정치지도자가 국내 정치무대로 들어온 것임.

이튿날인 10월 17일, 이승만은 미군정청에서 존 하지 중장과 아널드 소장의 소개로 기자회견을 했음. 그는 자신이 임시정부 대표나 외교기관 책임자의 지위로 온 것이 아니라 평민의 자격으로 돌아왔다고 밝힘. 국내 사정은 차차 알아가겠다고 말하면서 자주독립국가를 세우기 위한 동포들의 협력과 단결을 강조했음.

이 기자회견은 귀국과 동시에 이승만이 어떤 자격과 명분으로 국내 활동을 시작했는지 보여주는 자료임. 장기간의 해외활동에서 국내의 자주독립국가 수립 운동으로 활동 무대를 옮기는 전환점이 됨.

20 · 토

24 · 수

국제연합 헌장이 중국·프랑스·소련·영국·미국 등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과 다른 서명국 과반의 비준을 거쳐 발효. 국제연합이 국제 평화와 안전 유지, 국가 간 협력, 인권 존중을 목적으로 하는 상설 국제기구로 공식 출범.

1945년 샌프란시스코 회의에 참가하지 못했던 폴란드가 이후 헌장에 서명하면서 창설 회원국은 51개국으로 구성. 10월 24일은 이후 ‘유엔의 날’로 지정.

국제연맹의 실패와 유엔 창설

28 · 일

미군정청 외무과장 엔더스 소좌의 발표에 따른 1945년 10월 28일까지의 일본발 조선인 귀환자 누계 17만 6,015명. 당일 귀환자는 1만 2,553명이며, 같은 발표에 포함된 일본인 철수 인원은 군인 11만 55명과 일반인 9만 205명. 전체 해외 귀환자의 최종 합계가 아닌 시점별·경로별 행정 집계. 통계 기준일인 10월 28일과 《매일신보》 보도일인 11월 1일의 구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