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빈 윌리엄스 출생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에서 태어남. 이후 미시간주 블룸필드힐스와 캘리포니아주 마린 카운티 등에서 성장함.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에서 태어남. 이후 미시간주 블룸필드힐스와 캘리포니아주 마린 카운티 등에서 성장함.
미국이 러스크 서한에서 독도의 추가 명시와 일본의 권리 포기 시점 소급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은 사건. 독도에 관한 서한의 판단은 당시 미국의 외교적 견해로서, 조약 본문이나 모든 연합국의 합의와 구별할 자료. 이튿날에는 일본이 미군정의 일본 재산 처분 효력을 인정하는 조항과 한국에 제4조의 이익을 부여하는 문구를 최종안에 넣겠다고 통보하여 한국 요구의 일부 반영.
일본을 포함한 52개국 대표가 참석한 가운데 대일 강화회의가 개막한 사건. 미국·영국이 사전에 조정한 문안을 중심으로 서명을 추진했으며, 소련의 중국 대표 참가 및 조약 수정 요구를 둘러싼 대립의 표면화. 중국의 두 정부와 한국이 정식 서명 당사자로 참여하지 못한 상태에서 진행되어 전승국 전체와 피해 지역 모두를 포괄한 강화에는 이르지 못한 회의.
일본과 48개 연합국이 대일평화조약에 서명한 사건으로, 일본을 포함하면 총 49개 서명국. 참석국 가운데 소련·폴란드·체코슬로바키아는 서명하지 않은 결과. 일본의 주권 회복과 전쟁상태 종결, 영토 포기, 재산·청구권 처리의 기본 틀을 정했으나 실제 효력은 비준 절차를 거친 1952년 4월 28일부터 발생.
강화조약 서명 당일 미국과 일본이 별도의 안전보장조약을 체결한 사건. 점령이 끝난 뒤에도 미군이 일본에 주둔하는 안보 관계의 기반 마련. 평화 회복과 미국의 군사적 영향력 유지가 함께 추진된 사실을 보여주며, 강화조약과 미일 안보조약이 서로 다른 문서임을 구별할 필요.
1951년 10월 3일 뉴욕 자이언츠의 바비 톰슨이 브루클린 다저스를 상대로 9회말 끝내기 3점 홈런을 쳐 내셔널리그 우승을 결정함.
내셔널리그 우승 결정 3차전에서 자이언츠는 9회말까지 1대4로 뒤지고 있었으나 추격에 성공했고, 톰슨이 랠프 브랑카를 상대로 역전 끝내기 홈런을 기록함. ‘Shot Heard ’Round the World’로 불린 이 장면은 야구뿐 아니라 라디오 중계와 미국 대중문화의 상징적 순간으로 남음.
도쿄에서 한일 간 예비회담이 시작된 사건. 강화조약에 직접 서명하지 못한 한국과 주권 회복을 앞둔 일본이 기본관계, 재일한국인의 지위, 재산·청구권 등 남은 문제를 양자 교섭으로 다루기 시작한 단계. 1965년 국교정상화까지 이어지는 장기 협상의 출발점으로, 강화조약의 일반적 틀만으로 식민지 지배 이후의 관계가 정리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사건.
X-1 2호기가 원래 형상으로 54번째이자 마지막 비행을 수행함. 연료계통을 가압하는 고압 질소 용기의 금속 피로가 우려되어 기존 상태로 비행을 계속하기 어려워졌음.
NACA는 기체를 폐기하는 대신 얇은 날개와 터보펌프 연료계통 등을 갖춘 X-1E로 개조하여 새로운 연구에 활용하는 방향을 택함.
X-1 3호기가 B-50에 매달린 시험을 마치고 착륙한 뒤 추진제 배출 준비 중 폭발과 화재가 발생함. 조종사 조지프 캐넌은 탈출했으나 심한 화상을 입었고, X-1 3호기와 B-50은 소실됐음.
터보펌프 방식으로 더 높은 성능을 기대했던 3호기는 본격적인 동력시험 성과를 남기지 못함. 이 손실은 X-1 개발이 성공 기록만이 아니라 추진제 취급과 실험비행의 큰 위험을 동반했음을 보여 줌.
뉴욕 풀턴 극장에서 개막한 연극 《Gigi》의 타이틀롤을 맡아 브로드웨이에 데뷔함. 공연은 219회 이어졌으며, 헵번은 이 작품으로 1952년 Theatre World Award를 받음.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카를로스에서 캐스린 비글로 출생. 이후 《폭풍 속으로》·《허트 로커》·《제로 다크 서티》 등을 연출한 영화감독.
유엔총회의 승인으로 유엔과 WMO 사이의 관계협정 발효 및 유엔 전문기구 지위 확립. 같은 해 파리에서 열린 첫 세계기상총회의 협정 승인에 이어 유엔 체계와의 공식 협력 관계를 갖추며 기상·관련 지구과학 분야의 국제 조정 역할 강화.
아서 C. 클라크의 단편소설 「영원의 파수병(Sentinel of Eternity)」이 잡지 『10 Story Fantasy』 창간호에 발표.
1951년 조합 서기로 부임한 서상전의 주선으로 엽문이 홍콩섬 상환의 공안분회 공간에 제3기 교습반을 열고 사십여 명을 받아들임. 반응이 커지면서 이름이 조합 밖으로 퍼지고, 다른 문파와의 비무를 통해 기법의 실전성을 시험하는 일이 잦아짐. 조합 회관을 넘어 시내 여러 곳으로 교습망이 늘어난 국면.
멕시코에서 악단을 이끈 다마소 페레스 프라도가 1951년 무렵 미국 무대에도 진출함. 멕시코 국립음향자료관의 연보는 1951년 악단을 조직하고 가수 키코 멘디베의 권유로 미국을 방문해 큰 반응을 얻었다고 기록함. 이러한 이동은 멕시코에서 성장한 빅밴드 맘보를 미국 공연·음반 시장으로 전파하는 계기가 됨.
김명순이 일본 도쿄에서 사망한 것으로 전해지는 시기는 1951년경.
한국문학번역원은 사망 연도를 1951년으로 기재하고, 박소란의 문장웹진 글은 1951년경으로 추정.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사망 연도를 미상으로 표기.
한국저작권위원회 공유마당의 1951년 6월 22일도 추정 날짜로, 정확한 사망 월일은 미상
오리건대학교 건축·응용미술 계열에서 미술 학위를 취득한 경력. 이후 영화 제작에서 도시 공간과 미술을 탐색하는 관심으로 이어진 학업 기반.
개정된 수수께끼 장을 수록한 《호빗》 제2판의 출간. 반지를 잃은 골룸의 적대감과 빌보가 골룸을 죽이지 않는 선택을 부각하며 《반지의 제왕》과의 연결을 강화한 본문 변화. 초판에서는 골룸이 반지를 수수께끼의 내기 선물로 약속하는 설정이었으며, 개정판은 이를 반지에 대한 집착과 빌보의 연민이 드러나는 장면으로 바꾼 판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