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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10월의 기록 16건

일자가 있는 기록은 날짜순으로,
월까지만 알려진 기록은 마지막에 모았습니다.

현재 16건 표시

04 · 금

소련이 바이코누르 발사장에서 R-7 계열 로켓으로 스푸트니크 1호를 발사함. 네 개의 안테나를 단 약 83.6kg의 위성이 지구 궤도에 진입하여 무선 신호를 송신함. 국제지구물리관측년 기간 중 이루어진 인류 최초의 인공위성 발사.

07 · 월

윌리엄 가이어와 조지 와이펜바흐가 스푸트니크 발사 뒤 첫 월요일에 위성 신호를 수신하고 기록함.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주파수로 위성의 운동을 추정하면서, 단순한 전파 청취가 궤도 계산 연구로 발전함. 이때는 아직 항법위성을 만들려는 계획에서 시작한 연구가 아니었음.

1호 원자로에서 위그너 에너지를 방출시키기 위한 작업을 시작함. 평소의 생산 운전과 다른 조건에서 열을 관리해야 했으나, 내부 온도와 연료 상태를 충분히 파악하지 못한 채 작업이 진행되면서 화재로 이어지는 조건이 형성되었음.

윈드스케일 화재

08 · 화

벨 X-1E가 마하 2.24에 도달하여 이 개조형의 최고속도를 기록함. 앞선 착륙 사고와 수리를 거친 뒤 얻은 성과로, 초기 X-1이 개척한 연구를 더 높은 속도 영역으로 확장함.

고속에서의 방향 안정성은 여전히 연구 과제로 남았으며, 이 기록을 X-1 계열 전체의 최고속도와 동일하게 취급해서는 안 됨.

벨 X-1

09 · 수

한글날에 마지막 6권을 펴내며 『큰사전』 편찬 사업을 마무리함. 1929년 조선어사전편찬회 조직 이후 조선어학회 사건과 6·25 전쟁을 견뎌낸 28년 만의 완간으로, 총 16만 4125개 어휘 수록. 민족의 손으로 완성한 첫 한국어 대사전.

10 · 목

윈드스케일 1호 원자로 내부에서 연료가 붉게 달아오른 모습이 확인되며 화재가 드러남. 흑연의 축적 에너지를 제거하던 작업 중 온도 제어에 문제가 생겼고, 방사성 물질이 냉각 공기의 경로를 따라 외부로 방출되었음. 이후 소화와 냉각, 주변 오염 감시 및 우유 공급 제한이 이어졌음.

윈드스케일 화재

11 · 금

12 · 토

사고 시설 주변 약 80제곱마일 지역의 우유 공급을 제한함. 방사성 요오드가 목초지와 젖소를 거쳐 우유에 들어갈 수 있었기 때문이며, 특히 갑상선에 요오드를 축적하는 어린이의 노출을 줄이는 데 중요한 조치였음.

15 · 화

17 · 목

윌리엄 페니가 이끄는 조사위원회가 사고의 원인과 대응 과정을 조사하기 시작함. 위원회는 37명의 증언과 73건의 기술 자료를 검토했으며, 운전 과정뿐 아니라 사고의 영향과 대응 조치까지 조사 범위에 포함했음.

윈드스케일 화재

23 · 수

25 · 금

전국대의원대회에서 노동자의 생활 개선, 노동쟁의에 대한 공동 대응, 노동법 집행 강화와 개정, 노동운동의 자주성 등을 결의한 사건.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 소개된 결의문에 나타난 조직의 공식 목표이며, 실제 정치적 관계와 활동에 대한 역사 연구의 평가와는 구별되는 자기서술.

26 · 토

조사위원회가 사고보고서를 제출함. 짧은 기간에 수집한 증언과 기술 자료를 토대로 화재의 경과와 원인을 정리했으나, 이 보고서 전문이 곧바로 대중에게 공개된 것은 아니었음.

윈드스케일 화재

31 · 목

일자 미상

소련의 스푸트니크 1호 발사 뒤 마크 1 망원경이 위성을 궤도에 올린 운반 로켓을 추적함. 이는 위성의 무선 신호를 수신한 것과는 다른 로켓 레이더 추적 성과였음. 건설비 초과로 곤란을 겪던 시설의 가치를 드러낸 사건이자 천문학 장비가 우주 경쟁에 참여한 전환점이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