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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보안사령관과 노태우 제9사단장 등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가 대통령의 사전 재가 없이 정승화 육군참모총장 겸 계엄사령관을 강제로 연행함. 서울과 수도권 병력을 동원한 반란은 이튿날 새벽까지 이어졌으며, 육군본부·국방부 점령과 반대 지휘관 체포를 거쳐 군 지휘권 장악으로 귀결됨.

최규하 대통령의 사후 재가는 이미 진행된 무력행사를 정당화하지 못했으며, 대법원은 이 사건을 대통령의 군통수권과 육군참모총장의 지휘권에 반항한 군사반란으로 판단함. 최규하 정부가 곧바로 폐지된 것은 아니지만, 신군부가 이듬해 국가권력 전반을 장악하는 기반이 된 사건이었음.

전두환

제9사단장 노태우가 전두환 등과 함께 정승화 육군참모총장 연행을 준비하고 12·12 군사반란에 가담함. 반란 지휘부가 모인 수도경비사령부 제30경비단에서 휘하 병력의 서울 진입을 지시했으며, 제9사단 병력이 이튿날 새벽 중앙청에 진주함.

반란 뒤 노태우는 수도경비사령관에 임명되어 수도 방위의 핵심 지휘권을 맡음. 이 사건은 전두환과 노태우를 중심으로 한 신군부가 기존 군 수뇌부를 밀어내고 군권을 장악하는 과정의 주요 단계였음.

배경

10·26 사건으로 박정희가 사망한 뒤의 권력 공백기에 전두환·노태우 등 하나회 장교들이 계엄사령관 정승화 육군참모총장 체포를 모의함.

전개

9사단장이던 노태우가 병력을 동원해 반란에 가담했고, 최규하 대통령의 원대복귀 명령에도 불응. 사태 직후 수도경비사령관에 올라 신군부 집권의 토대 마련.

전두환 반란 주도

군 내부 사조직 하나회에 속한 전두환·노태우와 이들을 지지한 장교들이 수도권 병력과 주요 부대를 동원해 12·12 군사반란의 중심을 이룸. 보안사령부, 수도경비사령부, 공수부대 등에서 형성된 인맥은 정규 지휘체계의 명령을 거스른 병력 운용을 가능하게 한 조직적 기반이었음.

반란 뒤 신군부 인사들이 군의 핵심 보직을 차지하면서 기존 지휘부가 교체됨. 하나회는 신군부의 중요한 인적 토대였지만 두 집단의 범위가 완전히 같은 것은 아니며, 반란에는 하나회 회원 외의 지지 세력도 참여함.

전두환 주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