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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9월의 기록 9건

일자가 있는 기록은 날짜순으로,
월까지만 알려진 기록은 마지막에 모았습니다.

현재 9건 표시

04 · 금

10 · 목

《게르니카》가 뉴욕 현대미술관을 떠나 스페인 마드리드에 도착. 1939년 이후 미국을 주요 보관처로 삼았던 작품이 피카소가 생전에 제시한 민주적 자유의 회복이라는 조건과 반환 협상을 거쳐 귀환한 사건.

프랑코 사망 뒤의 민주화와 1978년 헌법 제정이 만들어 낸 정치적 변화 속에서 성사된 귀환. 작품은 카손 델 부엔 레티로에 설치되었으며, 내전과 해외 체류의 기억이 민주화된 스페인으로 돌아오는 상징적 의미를 얻은 문화사적 이정표.

12 · 토

임권택 감독의 불교영화 《만다라》 개봉. 수행에 회의를 느끼는 젊은 승려 법운과 계율 밖을 떠도는 지산의 동행을 통해 깨달음과 중생 구원의 의미를 탐색한 작품. 김성동의 동명소설을 영화화하고 상반된 수행 방식과 속세의 고통을 함께 다룬 화천공사 제작 영화. 안성기의 법운 역, 전무송의 지산 역, 방희의 옥순 역 출연.

17 · 목

로베르 바댕테르 법무장관이 정부를 대표해 국민의회에 사형제 폐지를 요청하는 연설을 함. 국가가 회복할 수 없는 죽음의 형벌을 부과해도 되는지를 묻는 논의를 이끌었으며, 다음 날 법안 표결을 앞둔 입법 과정의 핵심 장면이 되었음.

프랑스의 사형제 폐지

18 · 금

프랑스 국민의회가 로베르 바댕테르 법무장관이 정부를 대표해 제출한 사형제 폐지 법안을 찬성 363표, 반대 117표로 가결함. 이틀간의 논의 끝에 이루어진 하원 표결이었으며, 상원의 최종 가결과 대통령의 법률 공포는 이후에 진행됨.

프랑스의 사형제 폐지

26 · 토

보잉 767-200 시제기가 미국 워싱턴주 에버렛에서 첫 비행을 실시. 767은 이후 장거리 쌍발 광동체 여객기의 대표 기종 가운데 하나로 자리잡으며 여객·화물·군용 파생형으로 폭넓게 운용됨.

30 · 수

서독 바덴바덴에서 열린 제84차 국제올림픽위원회 총회가 서울을 1988년 제24회 하계올림픽 개최지로 선정함. 서울은 52표를 얻어 27표의 일본 나고야를 앞섰으며, 이후 경기장·교통시설과 대회 운영을 준비하는 국가적 사업이 본격화됨.

유치 추진은 1979년부터 시작되었으며, 서울시와 대한올림픽위원회, 정부 및 민간 인사들의 외교·유치 활동이 함께 이루어진 결과였음. 전두환 정부는 유치 재추진을 지원하고 대통령 명의의 지원 확약 서신을 제출했으며, 국제대회를 대외 이미지 개선과 정권 안정의 기회로 활용하려는 정치적 목적도 갖고 있었음.

전두환

일자 미상

손정의가 1981년 9월 일본에서 니혼 소프트뱅크를 설립하고, PC용 패키지 소프트웨어의 전국 유통 사업을 시작함. 회사명은 정보화 사회의 기반이 될 ‘소프트웨어의 은행’을 지향한다는 뜻에서 붙여짐. 이후 소프트뱅크는 출판·인터넷·통신을 거쳐 대규모 기술 투자 그룹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는 출발점을 마련함.

소프트뱅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