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수출공사, 《용형호제》 신정 시즌 한국 개봉
《용형호제》가 1987년 1월 1일 한국에서 개봉하며 홍콩 개봉보다 20일 앞서 관객과 만남. 수입은 동아수출공사가 맡았으며, 1986년 12월 23일 등급분류를 마치고 신정에 개봉한 일정. 1980년대 한국 극장가에서 성룡 주연 홍콩 액션영화가 신년 대목에 배치된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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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형호제》가 1987년 1월 1일 한국에서 개봉하며 홍콩 개봉보다 20일 앞서 관객과 만남. 수입은 동아수출공사가 맡았으며, 1986년 12월 23일 등급분류를 마치고 신정에 개봉한 일정. 1980년대 한국 극장가에서 성룡 주연 홍콩 액션영화가 신년 대목에 배치된 사례.
크쥐시토프 키에슬로프스키 감독의 영화 《맹목적인 기회》(Przypadek, Blind Chance)가 폴란드에서 개봉함. 열차를 타는 우연한 선택에 따라 한 인물의 삶이 세 갈래로 나뉘는 구조를 통해 개인과 정치적 환경의 관계를 탐색한 작품. 1981년 제작됐으나 검열로 공개가 지연돼 1987년 개봉함.
치안본부 대공수사단 경찰들이 서울대학교 학생 박종철을 불법연행한 뒤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선배 박종운의 행방을 추궁하며 물고문을 가해 사망에 이르게 함. 경찰은 사인을 단순 쇼크사로 설명했으나 언론 취재와 의료진의 소견 등이 고문 의혹을 드러냈음. 사건은 전국적인 추모와 고문 규탄운동을 촉발했으며, 이후 가해 경찰의 범위와 은폐 사실이 추가로 밝혀지면서 전두환 정권에 대한 저항을 증폭시킨 계기가 되었음.
1987년 1월 14일 박종철이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고문으로 사망한 뒤, 치안본부 5차장 박처원이 사건의 축소·은폐 조작에 관여함. 실제 고문 가담자가 5명이었음에도 경찰은 2명만 가담한 것으로 발표하며 책임을 축소하려 했고, 이 조작은 5월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폭로로 무너짐. 박처원은 같은 달 29일 범인도피 혐의로 구속됨.
1987년 1월 14일 서울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에서 박종철이 고문 끝에 사망한 뒤, 치안본부 5차장 박처원은 대공수사 지휘라인의 핵심 인물로서 사건 축소·은폐 조작에 관여함. 경찰은 실제 고문 가담자가 5명이었음에도 조한경·강진규 두 명만 가담한 것으로 발표하며 책임 범위를 축소하려 함.
경찰은 처음 박종철의 사망을 단순 쇼크사로 설명하며 고문 사실을 부인했고, 이후 부검 결과와 여론 압박으로 물고문 사실을 시인함. 이른바 “탁 치니 억 하고 쓰러졌다”는 표현은 1월 15일 강민창 치안본부장의 공식 발표에서 나온 것으로, 박처원은 그 발언의 직접 화자는 아니었음.
5월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폭로로 고문 가담자가 2명이 아니라 5명이고, 치안본부 간부들이 범인 축소·은폐에 관여했다는 사실이 알려짐. 박처원은 유정방·박원택 등과 함께 5월 29일 범인도피 혐의로 구속됨. 사건 은폐의 붕괴는 전두환 정권의 국가폭력과 민주화 요구를 결집시키며 6월 민주항쟁으로 이어지는 중요한 계기가 됨.
경찰은 사망 다음날, 박종철이 조사를 받던 중 책상을 "탁" 치니 갑자기 "억" 소리를 지르며 쓰러져 단순 쇼크사했다고 공식 발표하며 사건을 은폐하려 함.
박종철의 사망 직후 현장에 출동했던 중앙대 용산병원 의사 오연상이 조사실 바닥에 물이 흥건했다고 증언하며 단순 쇼크사 발표에 의문을 제기함. 이어 부검을 맡은 국립과학수사연구소 황적준 박사가 1월 17일 온몸의 피멍과 폐 손상 등 물고문·전기고문 흔적을 확인함. 경찰의 '쇼크사' 주장을 무너뜨리고 고문치사의 진상을 드러낸 결정적 전환점.
언론 보도와 부검 결과로 의혹이 커지자 강민창 치안본부장이 사건 발생 5일 만에 기존 발표를 뒤집고 물고문 등 가혹행위 사실을 공식 시인함. 수사 경관 조한경과 강진규 2명을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위반 혐의로 구속함. 다만 가담자를 2명으로만 한정해 이후 드러나는 조직적 축소·은폐의 출발점이 됨.
《용형호제》가 제작지 홍콩에서 1987년 1월 21일 정식 개봉. 성룡·알란 탐·관지림·롤라 포너가 주요 배역을 맡은 구성. 일본과 한국에서 먼저 공개된 뒤 홍콩에서 개봉한 배급 순서.
1987~2001년을 대상으로 한 장기발전계획을 발표하고 국제적 수준의 대학원 중심대학으로 발전한다는 방향을 제시함. 대학원 교육과 연구의 강화, 학부 교육체제의 개편, 대학의 자율화가 함께 논의된 변화.
학부 전문인력 양성과 함께 학문 후속세대와 연구자를 기르는 기능을 대학 발전의 중심에 놓은 계획.
CBS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뒤 고문 피해자와 가족을 다룬 특집을 1시간 15분간 방송함. 참여자 변상욱의 회고에 따르면 간부진이 주제 변경과 방송 중단을 요구했지만 직원들이 방송을 진행했으며, 이후 제작진이 다른 부서로 발령됨.
부산지검 울산지청의 수사와 언론 보도를 통해 형제복지원의 강제수용·강제노역과 폭행, 다수 사망 실태가 드러남. 울주 작업장에서의 노역과 감금에 대한 조사가 시설 운영 전반의 문제로 확대되었고, 야당과 사회단체의 실태조사 요구로 이어짐.
아동과 성인, 여성과 장애인 등 다양한 사람들이 수용되어 있었으며, 가족과의 연락과 이동을 제한받음. 수용자들은 폭력과 노동력 착취뿐 아니라 교육 기회의 상실도 겪었음.
사건이 공개된 뒤 다수 수용자가 퇴소하거나 다른 시설로 옮겨졌지만 시설과 재단은 이름을 바꾸어 이어짐. 퇴소만으로 가족관계와 생계, 심리적 후유증이 회복된 것은 아니었으며, 생존자들은 이후에도 수용 경력에 따른 낙인과 어려움을 증언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