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제철 축구단 창단
포항제철이 실업 축구단을 공식 창단함. 해체된 대한중석 축구단 출신 선수들을 중심으로 준비한 팀으로, 제철기업의 지원을 받는 축구단이 포항에 자리잡기 시작함.
경상북도 포항을 연고로 하는 대한민국의 프로축구 구단. 포항제철의 실업팀에서 출발해 전용구장과 학교 연계 유소년 체계를 운영하며 국내 리그·컵대회와 아시아 클럽대항전에서 활동해 온 기업구단.
철강기업의 지원, 학교 축구팀의 선수 육성, 지역 팬의 관람과 응원이 결합한 구단. 스틸야드를 홈구장으로 삼으며 제철도시 포항의 지역 스포츠 문화를 구성함.
학교 연령별 팀과 프로 선수단을 연결하는 유소년 체계, 전용 훈련시설, 국내외 선수의 영입을 함께 활용하는 운영 방식. 육성 선수의 성장은 팀의 경기력 기반인 동시에 선수의 진로 선택과 구단의 육성 투자 회수 문제가 만나는 영역.
포항제철이 실업 축구단을 공식 창단함. 해체된 대한중석 축구단 출신 선수들을 중심으로 준비한 팀으로, 제철기업의 지원을 받는 축구단이 포항에 자리잡기 시작함.
포항제철이 프로·실업팀이 함께 참가한 첫 수퍼리그의 다섯 팀 가운데 하나로 출전함. 당시 프로팀 두 팀과 실업팀 세 팀이 참여한 대회로, 기업 실업축구에서 프로리그 체제로 넘어가는 과정에 합류함.
포항제철의 원료 공급사인 브라질 CVRD와의 교류로 호세와 세르지오가 임대 선수로 참가함. 두 선수의 체류는 약 6개월에 그쳤으나 국내 리그가 외국인 선수와 함께 경기하는 초기 사례가 됨.
포항제철 축구단이 실업팀에서 프로축구단으로 전환하고 돌핀스라는 팀명을 사용함. 다음 해에는 아톰즈로 이름을 바꾸며, 실업팀으로 참가했던 수퍼리그에서 프로 구단으로 활동을 이어감.
포항제철이 창단 후 처음으로 국내 프로축구 리그 정상에 오름. 이후 1988년에도 리그 우승을 거두면서 1980년대 후반 국내 상위권 구단으로 자리잡음.
포항제철이 국내 최초의 축구전용구장인 스틸야드를 준공함. 육상 트랙 없이 관중석과 경기장을 가깝게 배치한 구장으로, 종합운동장에서 경기를 보던 국내 축구 관람 환경에 다른 형태의 시설을 도입함.
건설비 약 110억 원을 들여 관중석과 경기장 사이를 약 6m로 좁힌 구조. 기업의 지원이 선수단 운영뿐 아니라 지역 팬이 경기를 관람하는 상설 시설로 확대된 사례.
포항이 1996년 시작한 대한축구협회 FA컵의 첫 우승팀이 됨. 정규리그와 별도로 여러 수준의 팀이 참가하는 전국 토너먼트에서도 우승 경력을 쌓기 시작함.
포항 스틸러스가 1996-97시즌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에서 우승함. 국내 리그와 컵대회에 이어 아시아 클럽 대항전 정상에 오른 첫 시즌.
같은 해 아톰즈에서 스틸러스로 팀명을 변경함. 포항의 제철산업과 연결된 이름 아래 국내 리그와 아시아 대회에 참가함.
포항 스틸러스가 1997-98시즌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에서도 우승해 두 시즌 연속 아시아 정상에 오름. 훗날 AFC 챔피언스리그로 개편되는 아시아 최상위 클럽대회에서 연속 우승을 기록함.
포항 스틸러스가 선수단 숙소와 훈련장을 결합한 전용 클럽하우스를 완공함. 약 80억 원을 투입한 시설에 개인 숙소와 체력훈련실, 천연잔디 구장 두 면과 인조잔디 구장 한 면 등을 갖춤.
기존에는 아파트 숙소와 별도의 운동장을 이용하던 선수단의 생활·훈련 공간을 한곳으로 모음. 경기장 건설에 이어 훈련과 회복을 위한 상시 시설에 투자한 변화.
포항 스틸러스가 포스코교육재단의 초·중·고 축구팀을 구단 유소년 체계로 통합함. 학교별로 운영하던 선수 육성을 프로 구단과 연계해 연령별 훈련과 선수의 성장 경로를 연결함.
학교팀 지도자들의 반대와 운영 조정 과정을 거쳐 통합한 제도. 2013년 구단 선수 32명 가운데 15명이 유소년팀 출신으로 집계되는 등 자체 육성 선수가 성인 선수단의 상당 부분을 차지함.
세르지우 파리아스 감독의 포항 스틸러스가 정규리그 5위로 진출한 플레이오프에서 경남·울산·수원을 차례로 넘어 결승에 진출하고 성남을 꺾어 리그 우승을 차지함. 1992년 이후 15년 만의 리그 정상 복귀.
유소년 출신 선수와 조기에 발굴한 선수들이 선수단의 기반을 형성함. 플레이오프에서는 이광재와 고기구 등을 활용한 교체 운영이 득점으로 이어지며 정규리그 순위를 뒤집은 우승 과정.
포항 스틸러스가 도쿄에서 열린 AFC 챔피언스리그 결승에서 사우디아라비아의 알이티하드를 2대1로 꺾고 우승함. 1997·1998년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 우승에 이어 아시아 최상위 클럽대회에서 세 번째 우승을 기록한 첫 구단이 됨.
포항 스틸러스가 아랍에미리트에서 열린 클럽월드컵 3·4위전에서 멕시코의 아틀란테와 1대1로 비긴 뒤 승부차기에서 4대3으로 승리함. 데닐손은 이 대회 포항의 네 골을 모두 기록함.
앞선 에스투디안테스와의 준결승에서는 세 명이 퇴장당한 가운데 1대2로 패배함. 골키퍼 퇴장 뒤 공격수 데닐손이 골문을 맡는 상황을 겪은 후 순위 결정전에서 승리해 대회를 마침.
포항 스틸러스가 울산과의 리그 최종전에서 후반 추가시간 김원일의 골로 1대0 승리를 거둬 승점 74점으로 울산을 한 점 차로 앞서 우승함. 앞서 획득한 FA컵과 함께 국내 최초로 같은 시즌 리그와 FA컵을 모두 우승함.
외국인 선수 없이 시즌을 운영한 황선홍 감독의 팀으로, 짧은 패스와 조직적인 움직임을 활용하는 경기 방식이 주목받음. 마지막 경기까지 선두 경쟁이 이어진 끝에 리그와 토너먼트 양쪽에서 우승한 시즌.
잘츠부르크가 포항 유소년팀 출신 황희찬과의 계약을 발표함. 포항은 신인 우선지명 선수인 황희찬이 구단 동의 없이 계약했다며 반발했고, 선수 측은 포항과 프로 계약을 맺지 않은 상태에서 해외 진출 협의 조건이 달라졌다고 주장함.
포항은 유소년 육성과 우선지명 제도에 따른 구단의 권리를 강조하며 국내에서 성장한 뒤 해외로 진출하는 방침을 설명함. 황희찬의 부친은 2015년 인터뷰에서 조기 유럽 진출 의사와 구단 간 사전 협의를 설명하고, 과도한 이적 조건 때문에 협상이 어긋났다고 주장함. 계약금, 임대 후 완전이적 조건, 우선지명과 해외 이적 규정의 적용이 쟁점이 된 분쟁.
포항 스틸러스가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열린 AFC 챔피언스리그 결승에서 알힐랄에 0대2로 패해 준우승함. 2009년 이후 12년 만에 아시아 최상위 클럽대회 결승에 복귀했으나 네 번째 우승에는 이르지 못함.
포항 스틸러스 선수단·임직원과 팬들이 태풍 힌남노 피해를 입은 포항 구룡포읍 삼정해변에서 복구 활동을 진행함. 팬 75명을 포함한 약 140명이 모여 해변에 밀려온 쓰레기와 잔해를 치움.
서포터스 강철전사와 일반 팬이 선수단과 함께 지역의 재해 복구에 참여함. 포항 지역의 수해에 대응해 구단과 팬의 관계가 경기 응원을 넘어 공동 봉사활동으로 이어진 사례.
포항 스틸러스가 홈구장 스틸야드에서 열린 FA컵 결승에서 전북을 4대2로 꺾고 우승함. 2013년 이후 10년 만의 FA컵 우승이자 통산 다섯 번째 우승으로, 당시 대회 최다 우승 기록과 타이를 이룸. 김기동 감독은 포항 감독으로 첫 우승을 거둠.
포항 스틸러스가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코리아컵 결승에서 연장전 끝에 울산을 3대1로 꺾음. 박태하 감독 체제에서 전년도 FA컵에 이어 대회 2연패를 달성하고, 이름이 바뀐 코리아컵의 통산 최다 우승 기록을 여섯 차례로 늘림.
포항제철 축구단에서 프로 경력을 시작한 첫해 리그 우승에 기여하고 최우수선수상을 받음. 신인이 곧바로 MVP가 된 사례로, 수비뿐 아니라 경기 전개를 이끄는 역할을 인정받음.
홍명보가 포항을 떠나 당시 벨마레 히라쓰카라는 이름을 사용하던 쇼난 벨마레에 입단함. 포항에서 시작한 프로 선수 경력을 일본 J리그에서 이어감.
LA 갤럭시와 계약해 메이저리그사커 진출을 결정함. 실제 미국 리그 활동은 2003년부터 이어졌으며, 구단은 홍명보를 MLS 최초의 한국인 선수로 소개함.
일본에서의 활동을 마치고 포항 스틸러스로 복귀함. 소속팀 생활과 함께 네 번째 월드컵을 준비하며 개최국 대표팀 주장으로 대회에 나서게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