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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NU Library GPL의 후속 버전 2.1이 GNU Lesser General Public License라는 이름으로 발표됨. ‘Library’를 ‘Lesser’로 바꿔 모든 라이브러리에 이 라이선스를 사용해야 한다는 인상을 피하고, 일반 GPL보다 제한적으로 카피레프트를 적용한다는 점을 드러냄.

라이선스 선택은 단순히 프로그램이 라이브러리인지 여부만으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개발자가 어떤 공유 조건을 적용하려는지와 연결됨.

자유 소프트웨어 재단이 MIT에서 열린 국제 공개회의와 함께 GNU GPL 버전 3의 첫 토론 초안을 공개함. 개발자·기업·법률 전문가·이용자가 조항에 의견을 제출하는 공개 개정 절차가 시작됐음.

특허와 기기의 기술적 제한 등 변화한 환경에 대응하는 방식을 논의했으며, 이 단계의 초안은 최종 라이선스와 구분됨.

자유 소프트웨어 재단이 네트워크 서비스 이용자의 소스 접근을 보완하는 GNU AGPL 버전 3을 발표함. 수정된 프로그램과 네트워크를 통해 상호작용하는 사용자에게도 해당 소스 코드를 받을 기회를 제공하도록 규정함.

프로그램의 복제본을 배포받는 경우를 중심으로 하는 일반 GPL과 다른 상황을 다루는 별도 라이선스이며, 모든 온라인 서비스에 자동으로 적용되는 규칙은 아님.

자유 소프트웨어 재단이 Aleph Objects의 LulzBot AO-100 3D 프린터에 첫 Respects Your Freedom(RYF) 인증을 부여함. 기기에 탑재되는 소프트웨어를 사용자가 통제할 수 있는지 확인하고 이를 제품 선택의 기준으로 제시하는 활동이 시작됐음.

첫 인증을 위해 심사 절차와 인증 표장, 시험 체계 등을 마련했음. 이는 기기의 모든 물리적 설계가 자유롭게 공개됐다는 포괄적 보증이 아니라, 재단이 정한 소프트웨어 자유와 관련 요건을 충족했음을 나타내는 인증임.

자유 소프트웨어 재단이 이사들의 역할과 책임을 정한 합의서와 윤리 강령을 도입했다고 발표함. 외부 자문을 받으며 진행한 검토의 결과로, 조직·재정 감독, 이사회 활동 참여, 연례 평가 등에 관한 책임을 명문화했음.

현직 이사들이 새 기준에 서명했으며 앞으로 합류할 후보자에게도 적용할 계획을 밝힘. 2021년의 조직 운영 논란 이후 책임성과 투명성을 제도적으로 정비하려 한 변화임.

자유 소프트웨어 재단 이사회가 리처드 스톨먼을 다시 이사로 선출한 이유와 발표 과정에 관한 성명을 냄. 재단은 그의 자유 소프트웨어 분야 경험을 복귀 이유로 설명하면서도, 직원과 행사 관계자에게 먼저 알리고 의견을 구하지 못한 점을 인정하고 사과함.

복귀는 그보다 앞선 3월 LibrePlanet에서 알려졌으며, 레드햇은 3월 25일 재단과 재단 주최 행사에 대한 자금 지원 중단을 발표했음. 따라서 이날은 복귀 자체의 날짜가 아니라 재단의 공식 설명이 나온 날짜임. 재단은 3월 28일 이언 켈링이 직원 대표 이사로 선출됐음을 알리고, 더 투명한 후보 선정 절차를 추진한다고 밝힘.

자유 소프트웨어 재단

자유 소프트웨어 재단이 후원 회원에게 이사 후보를 추천하고 평가할 기회를 처음 개방함. 회원은 다른 사람이나 자신을 추천할 수 있으며, 자격을 갖춘 참가자들이 조정된 토론 공간에서 후보를 논의하도록 설계함.

이는 회원이 이사를 직접 선출하는 단순한 보통선거를 도입했다는 뜻은 아님. 재단은 후보 토론을 의사결정에 반영하고, 신규 이사 선임 이후에는 기존 이사들에게도 유사한 검토 절차를 적용하겠다고 밝힘.

자유 소프트웨어 재단이 개인이 정기적으로 활동을 뒷받침할 수 있는 후원 회원 프로그램을 출범시킴. 당시 회보는 새 프로그램과 회원 혜택, 재단 이사회·직원을 만나는 연례 모임을 안내했음.

소프트웨어의 배포와 개발 지원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재단의 공동체 기반을 넓힌 변화였음. 이 후원 회원 자격을 법인의 의결권 회원 자격이나 이사회 선거권과 동일하게 이해해서는 안 됨.

자유 소프트웨어 재단이 미국 시애틀의 WinHEC 행사장 밖 시위와 함께 디펙티브 바이 디자인 캠페인을 시작함. 참가자들은 방호복 차림으로 DRM이 이용자의 선택과 콘텐츠 이용을 제한한다는 주장을 알렸음.

캠페인은 소프트웨어 개발자뿐 아니라 음악·영상·전자기기를 이용하는 일반 대중에게도 기술적 제한의 문제를 전달하려는 시도였음. DRM을 ‘권리 관리’ 대신 ‘제한 관리’로 부른 것은 캠페인의 비판적 관점을 드러내는 표현임.

자유 소프트웨어 재단

자유 소프트웨어 재단이 창립자 리처드 스톨먼의 회장직과 이사직 사임을 발표함. 재단은 같은 날 사임이 이뤄졌으며 새 회장을 찾는 절차에 즉시 착수한다고 알렸음.

1985년 설립 이후 창립자가 맡아 온 지도부 구성이 바뀌는 전환점이었음. 이 사건은 FSF의 직책에 관한 변화이며, GNU 프로젝트의 활동이나 모든 자유 소프트웨어 운동에서 물러났다는 뜻으로 확대해서는 안 됨.

자유 소프트웨어 재단이 선임 시스템 관리자 이언 켈링을 새 회장으로 선출했다고 발표함. 선출은 9월 이사회에서 이뤄졌으며, 재단 직원이 무보수 회장직을 맡은 첫 사례가 됨.

켈링은 2021년 직원 대표로 이사회에 참여한 뒤 조직 운영에 관여해 왔음. 제프리 크노스는 회장·이사·의결권 회원에서 물러나고 후임자를 찾는 동안 재무 담당 역할을 이어가기로 했으며, 켈링은 시스템 관리자 업무와 회장 역할을 병행하게 됨.

자유 소프트웨어 재단

자유 소프트웨어 재단이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에서 기존 연례 모임을 확대한 LibrePlanet 2009 콘퍼런스를 개최함. 3월 21일부터 22일까지 발표와 참가자 중심의 협업 활동을 진행했으며, 자유로운 네트워크 서비스·우선 개발 과제·지역 활동 등을 논의함.

프로그래머뿐 아니라 글쓰기·디자인·사용 경험을 나눌 참가자도 함께하는 행사였음. 현장과 원격 참가자가 자유 소프트웨어 활동 안내서를 공동 집필한 사례처럼, 토론을 구체적인 결과물로 이어가려는 성격을 지녔음.

자유 소프트웨어 재단이 오랫동안 이사로 활동한 제프리 크노스의 회장 선출을 발표함. 프랑스에서 자유 소프트웨어 운동에 참여해 온 오딜 베나시의 이사회 합류도 함께 알렸음.

스톨먼 사임 이후의 지도부를 정비한 발표였음. 크노스는 다양한 배경과 의견을 지닌 공동체를 보호하고, 소프트웨어 자유라는 공통의 목표에 집중하도록 돕는 역할을 강조함.

자유 소프트웨어 재단이 자유 부팅 펌웨어 프로젝트 GNU Boot의 재정 후원 프로그램 합류를 발표함. GNU Boot는 운영체제가 시작되기 전 단계의 비자유 BIOS·UEFI를 대체하려는 프로젝트로, Coreboot와 GNU GRUB 등 기존 자유 소프트웨어를 묶고 개선함.

재단은 자체 법인 지위와 모금·조직 운영 기반을 제공해 개발자들이 코드 작성과 문제 해결에 집중하도록 지원함. 라이선스를 발표하는 역할을 넘어, 개별 프로젝트가 활동을 지속할 행정적 기반을 제공하는 재단의 기능을 보여 주는 사례임.

1918년 2월 6일 영국에서 국민대표법(Representation of the People Act 1918)이 국왕 재가를 받음. 이 법은 일정한 재산·지방선거 자격 요건을 충족한 30세 이상 여성에게 의회선거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부분의 21세 이상 남성에게도 투표권을 확대함. 여성과 남성의 동등한 선거권이 실현된 것은 1928년임.

에멀린 팽크허스트와 동료들이 맨체스터에서 여성의 의회선거 투표권을 요구하는 여성사회정치연합(WSPU)을 창설함. 기존 정치권의 약속과 느린 입법에 대한 불만 속에서 여성들이 직접 행동하는 조직을 만들었으며, 이후 영국 서프러제트 운동의 주요 세력으로 성장함.

여성사회정치연합

에멀린 팽크허스트가 회람을 통해 전투적인 참정권 운동의 중단을 알림. 지도부는 전쟁 지원을 우선하는 방향으로 전환했으며, 이는 전쟁을 반대하거나 참정권 요구를 계속하려는 활동가들과 다른 선택이었음. 전쟁 이전의 대정부 대결 구도가 크게 바뀐 전환점임.

여성사회정치연합

에밀리 와일딩 데이비슨이 6월 4일 엡섬 더비 경주 도중 경주로에 들어가 국왕 소유의 말과 충돌한 뒤 나흘 만에 숨짐. WSPU는 그의 죽음을 운동의 희생으로 기렸음. 다만 경주로에 들어간 정확한 의도는 확인되지 않으므로 계획적인 자살이었다고 단정할 수 없음.

여성사회정치연합

에멀린·크리스타벨 팽크허스트가 이끈 WSPU가 여성당으로 전환됨. 전쟁 이전의 전투적 참정권 조직에서 전쟁 지원과 새로운 정치 활동을 지향하는 조직으로 성격이 바뀜. 다른 여성 참정권 단체들은 이와 별개로 투표권 확대를 위한 활동을 계속했음.

여성사회정치연합

여성 참정권 입법이 진전되지 않는 가운데 의회에 접근하려던 여성 시위대가 경찰 및 반대 군중과 충돌함. 참가자들은 폭행과 성적 모욕을 포함한 부당한 대우를 호소했으며, 이날은 ‘블랙 프라이데이’로 기억됨. 국가가 여성의 정치적 요구에 대응하는 방식에 대한 분노를 키운 사건이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