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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라디오와 벅스가 《신해철의 고스트스테이션》 과거 방송의 다시듣기 서비스를 시작함. 첫 방송으로부터 16년이 되는 날에 맞춰, 청취자들이 신해철의 목소리와 방송을 다시 만날 수 있는 통로가 마련되었음.

신해철 음악가

대법원이 신해철의 수술을 집도한 의사의 상고를 기각해 업무상과실치사와 의료법 위반을 인정한 징역 1년의 원심을 확정함. 수술 후 필요한 진단과 처치를 하지 않은 과실과 사망 사이의 인과관계를 인정했으며, 사망한 환자의 진료정보를 공개한 행위에도 의료법상 비밀누설 금지가 적용된다고 판단했음. 같은 의사의 다른 환자 의료사고 판결과는 별개의 사건임.

MBC가 신해철 10주기 다큐멘터리 《우리 형, 신해철》을 10월 4일과 5일에 걸쳐 방송함. 동료 음악인과 방송 관계자들의 기억을 통해 음악 작업, 라디오 진행, 사회적 발언을 돌아보며 신해철의 여러 모습을 함께 조명했음.

인천 영종도 인스파이어 아레나에서 10월 26일과 27일 이틀간 신해철 10주기 헌정 공연 ‘마왕 10th: 고스트 스테이지’가 열림. 넥스트 멤버들과 동료·후배 음악인들이 신해철의 노래를 새롭게 연주하며 그의 음악을 이어갔음.

신해철이 크롬이라는 이름을 앞세운 《Crom’s Techno Works》를 발표함. 넥스트의 밴드 사운드에서 한발 벗어나 전자음과 반복되는 리듬의 가능성을 탐색했으며, 〈일상으로의 초대〉에서는 부드러운 보컬과 전자음악의 질감을 함께 들려주었음.

이수가 신해철이 만든 〈A Boy From The Moon〉을 2026년 버전으로 발표함. 문차일드 1집에 실렸던 노래를 다시 부른 작업으로, 소속사는 스승의 날 발매에 음악적 스승인 신해철을 향한 감사의 뜻을 담았다고 설명했음. 신해철의 창작물이 후배 음악가의 새로운 녹음으로 이어진 사례임.

넥스트가 2집 《The Return of N.EX.T Part 1: The Being》을 발표함. 〈껍질의 파괴〉와 〈The Ocean: 불멸에 관하여〉에서는 긴 곡 구성과 강렬한 연주를 전개하고, 〈날아라 병아리〉에서는 작은 생명의 죽음을 통해 상실을 이야기했음. 삶과 죽음이라는 질문을 하나의 앨범에 엮은 작품임.

신해철이 정기송·이동규와 함께한 넥스트가 첫 앨범 《Home》을 발표함. 〈도시인〉의 전자음악적 감각과 〈인형의 기사〉의 극적인 구성을 함께 담아, 솔로 활동에서 축적한 제작 역량을 밴드 음악으로 확장했음.

경주 화랑교육원에서 서울 아시안게임 성화를 채화함. 성화는 세 갈래의 봉송로를 따라 전국을 지나 서울로 향했으며, 9월 19일 서울시청 앞 광장에 도착한 뒤 다음 날 개회식 성화대에 점화되었음. 경기장 밖의 여러 지역도 대회 준비와 축제에 참여하도록 한 행사였음.

서울 대회에서 태권도가 아시안게임 정식종목으로 처음 실시됨. 한국에서 발전한 무술이 국제 종합대회의 메달 종목으로 자리 잡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음. 유도와 여자 사이클·여자 사격도 이 대회를 통해 아시안게임 경기 프로그램에 새롭게 포함되었음.

서울아시아경기대회 조직위원회(SAGOC)가 발족해 대회 준비를 전담하기 시작함. 경기 운영뿐 아니라 선수단의 숙박과 이동, 보도 지원, 시설과 물자 확보를 함께 준비해야 했으며, 이후 올림픽 조직위원회와 사무기구를 통합 운영해 두 대회의 인력과 시설을 연계했음.

잠실 올림픽주경기장에서 제10회 아시안게임 개회식이 열림. 27개국 선수단의 입장과 개회선언, 성화 점화에 이어 전통문화와 집단 공연을 결합한 식후 행사가 펼쳐졌음. 개막식은 16일간의 경기 시작을 알리는 동시에 한국의 문화와 대회 운영 역량을 국제사회에 보여주는 무대였음.

뉴델리에서 열린 아시아경기연맹(AGF) 총회가 서울을 제10회 아시안게임 개최지로 확정함. 이라크와 북한이 유치 경쟁에서 물러난 뒤 서울이 단독 후보로 남았으며, 표결 없이 만장일치로 결정되었음. 같은 해 9월 서울 올림픽 유치에 이어 두 국제 종합대회를 준비하게 된 전환점이었음.

한국 남자 축구대표팀이 결승에서 사우디아라비아를 2대 0으로 꺾고 금메달을 획득함. 이전 아시안게임의 공동 우승과 달리 단독으로 정상에 오른 첫 대회였음. 대회 마지막 날에 나온 이 금메달은 개최국 한국의 최종 금메달 수를 93개로 늘렸음.

정부가 두 대회의 주요 시설 배치 조정 방안을 확정함. 잠실에 경기장을 계속 추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방이동 국립경기장 부지를 활용해 사이클·체조경기장 등과 체육공원을 조성하는 방향이 정해졌음. 이 결정은 경기시설과 역사유적을 함께 품은 올림픽공원 개발의 중요한 바탕이 되었음.

제10회 서울아시안게임이 16일간의 일정을 마치고 폐막함. 한국은 금메달 93개·은메달 55개·동메달 76개를 획득해 중국에 이어 종합 2위에 올랐음. 폐회식에서는 대회기가 내려가고 성화가 꺼졌으며, 선수와 참가자들이 어울리는 공연으로 대회를 마무리함. 시설과 운영 경험은 2년 뒤 서울 올림픽 준비로 이어졌음.

1986 서울아시안게임

서울 아시안게임 개막을 엿새 앞두고 김포공항 국제선 청사에서 폭발물이 터져 5명이 숨지고 여러 사람이 다침. 선수단과 대회 관계자들이 입국하던 시기에 발생해 대회의 안전 문제를 부각한 사건이었음.

당시 정부는 대회와 이후 올림픽에 미칠 영향을 우려하며 수사와 해외 반응 파악에 나섰음. 사건 초기의 추정과 훗날 공개된 자료를 구분해 살펴볼 필요가 있으며, 피해 사실과 대회 준비에 남긴 긴장을 중심으로 기록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