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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 20건
46년 전

1980년 말 선경그룹이 정부로부터 국내 최대 정유 공기업이던 대한석유공사(유공)의 경영권과 미국 걸프사 보유 지분 50%를 인수함. 당시 유공은 매출 1조 원이 넘는 국내 1위 기업으로, 매출 2천억 원대의 선경이 자기보다 다섯 배 큰 회사를 삼킨 '새우가 고래를 삼킨' 인수로 평가됨. 정부는 산유국 네트워크를 통한 원유 확보력과 자금 조달 능력을 높이 사 선경을 인수자로 결정했으나, 한편으로는 신군부 실세 개입설 등 특혜 의혹도 따라붙음.

전두환 당시 대통령

1980년 7월 제록스를 떠나 애플에 합류해 Lisa 개발을 지원. 이후 Object Pascal과 애플리케이션 프레임워크 MacApp 같은 객체지향 도구를 개발하고 AppleNet·첨단기술그룹 부사장과 수석과학자(Chief Scientist)를 거치며 1997년까지 재직. 복잡성을 플랫폼·도구가 떠안게 하려는 지향이 제품 개발로 이어진 시기.

1980년 5월 27일 새벽 계엄군이 최후 진압 작전으로 광주YWCA 건물을 공격하면서, 건물 안에서 마지막 소식지를 제작하던 박용준이 총격으로 사망. 계엄군은 제작 중이던 『민주시민회보』 제10호를 압수했으며, 이에 따라 5월 21일 『투사회보』로 시작된 항쟁 소식지 발행도 종료.

언론 통제 속에서 광주의 상황과 항쟁 지도부의 입장을 시민들에게 전달하던 대안 언론 활동이 계엄군의 무력 진압과 함께 중단.

투사회보

1980년 5월 25일 민주시민학생투쟁위원회 결성과 항쟁 지도부 재편 과정에서 소식지 제작 거점을 광주YWCA로 이전하고, 제호를 『투사회보』에서 『민주시민회보』로 변경. 새 제호로 발행한 첫 소식지는 앞선 『투사회보』 제8호의 호수를 이어받은 제9호로 제작.

제호 변경 뒤에도 들불야학 구성원들을 중심으로 한 제작 체계와 소식지의 기능은 계속 유지. 『민주시민회보』는 항쟁 지도부의 입장과 광주의 상황을 시민들에게 전달하며 5월 26일까지 발행.

투사회보

1980년 5월 25일 조선일보에 광주 르포를 게재하며 광주를 ‘무정부 상태’로, 바리케이드 뒤의 무장 시민을 ‘총을 든 난동자’로 표현함. 계엄군의 집단 발포와 시민 희생이 이어진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맥락을 충분히 드러내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으며, 당시 조선일보 보도의 문제를 보여주는 사례로 거론됨. 김대중은 1997년 회고에서 “기사는, 신문은 그 시대 그 상황의 산물이며 기록일 수밖에 없다”고 썼고, 다른 글에서는 해당 기사를 쓰지 말았어야 했다는 후회를 밝힌 것으로 전해짐.

김대중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