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들어 일본 업체의 부상으로 D램 시장 점유율이 1974년 82.9%에서 1984년 1.3%까지 붕괴하자, 인텔이 1985년 메모리 사업에서 사실상 철수하고 마이크로프로세서에 집중하는 전략 전환 단행. 앤디 그로브가 주도한 이 결정은 위기 속 사업 재정의의 대표 사례로 회자. 이후 인텔이 CPU 기업으로 정체성을 재확립한 분기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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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립 10주년인 1978년 인텔이 첫 16비트 마이크로프로세서 8086을 출시하며 x86 명령어 집합 아키텍처의 계보 개시. 이후 수십 년간 PC와 서버 CPU의 사실상 표준이 되는 아키텍처의 시발점. 8086에서 파생된 8088이 곧 PC 산업의 핵심 부품으로 부상.
1971년 인텔 엔지니어 테드 호프·페데리코 파긴·스탠 메이저가 일본 계산기 회사(비지컴)의 의뢰로 4비트 단일 칩 마이크로프로세서 4004를 개발해 출시. 연산 기능을 하나의 칩에 담은 세계 최초의 상용 마이크로프로세서로, 모든 사물에 지능을 심는 디지털 시대의 출발점. 같은 해 인텔은 기업공개(IPO)로 상장.
1968년 7월 페어차일드 반도체 출신의 로버트 노이스와 고든 무어가 캘리포니아에 인텔을 창립, 아서 록이 주선한 250만 달러로 출발. 집적회로 공동 발명자(노이스)와 R&D 책임자(무어)라는 검증된 기술자들이 세운 회사. 반도체 메모리에서 출발해 마이크로프로세서로 세계 컴퓨팅을 주도하게 되는 기업의 시작.
1979년 1월 26일 뉴욕시의 사무실에서 심장마비로 70세에 별세. 4선 주지사와 부통령을 지내고 막대한 부와 예술 후원, 라틴아메리카 관여로 한 시대를 풍미한 공인의 마지막. 동부 기득권 자유주의 공화당의 상징적 인물의 퇴장.
워터게이트로 닉슨이 사임하고 포드가 대통령직을 승계한 뒤, 수정헌법 25조에 따라 부통령으로 지명됨. 수개월의 의회 인준 청문회를 거쳐 1974년 12월 19일 상·하원 인준으로 제41대 부통령 취임. 그러나 보수 진영의 견제로 1976년 재지명을 포기하며 1977년 1월 임기 종료.
1973년 12월 18일 네 번째 임기 도중 주지사직을 사임. 미국의 중대 과제를 연구하는 민간 위원회(Commission on Critical Choices for America) 활동과 차기 대권 구상에 집중하기 위한 결정. 14년에 걸친 뉴욕 주지사 시대의 종료.
1973년 5월 마약 범죄에 강제 최소형을 부과하는 강경한 마약 단속법안에 서명, 이른바 '록펠러 마약법' 제정. A급 중범죄에 최고 15년~종신형의 의무형을 규정하는 등 미국에서 가장 가혹한 마약법의 하나로 평가. 대량 수감과 인종 불균형 논란을 낳으며 미국 마약 정책과 형사사법에 장기적 영향을 끼친 입법.
1971년 9월 9일 수감자 약 2,200명이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애티카 교도소를 장악하고 교도관들을 인질로 잡음. 나흘간의 협상이 결렬되자 록펠러 주지사가 주(州) 경찰의 무력 탈환을 명령, 9월 13일 진압 과정에서 수감자와 인질 등 모두 43명이 사망. 미국 교정사(史) 최악의 유혈 사태로 기록되며 그의 강경 통치를 상징하는 사건.
공화당 자유주의 분파의 기수로서 1964년 대선 후보 지명에 도전했으나, 보수파 배리 골드워터에게 패배. 당내 노선 투쟁에서 온건·자유주의가 보수주의에 밀리기 시작한 분기점. 1960년과 1968년 도전을 포함해 세 차례 모두 좌절된 그의 대권 시도를 상징.
현직 민주당 주지사 W. 애버렐 해리먼을 50만 표 이상 차로 누르고 뉴욕 주지사에 당선, 이듬해 1월 취임. 민주당 강세 속에서 거둔 승리로 단숨에 전국적 정치인으로 부상. 이후 1962·1966·1970년 세 차례 재선되며 1973년까지 14년간 주정부를 이끈 4선 주지사 시대의 개막.
뉴욕에서 아메리카·아프리카·오세아니아 등지의 토착(원시) 미술을 수집·전시하는 원시미술관(Museum of Primitive Art)을 개관함. 어머니가 공동 설립한 현대미술관(MoMA) 운영과 함께 그의 예술 후원 활동을 대표. 1960년대 말 폐관 후 소장품은 메트로폴리탄미술관으로 이관됨.
아프리카·오세아니아·아메리카 원주민 예술을 중심으로 한 이 미술관은 당시 미국 미술계에서 비서구권 예술을 독립된 미술사적 대상으로 조명하는 중요한 계기가 됨.
제2차 세계대전기 미주(美洲) 관계 조정 업무를 거쳐, 1944년 12월 국무부의 서반구(라틴아메리카) 담당 차관보로 임명됨. 민주당 루스벨트 행정부에서 일한 공화당계 인사로서 미국의 대(對)라틴아메리카 정책을 총괄. 1945년 8월까지 재임하며 평생에 걸친 라틴아메리카 관여의 기반 마련.
다트머스대학에서 파이 베타 카파 회원으로 선발되며 우등(cum laude)으로 졸업, 경제학 학사 학위 취득. 졸업 후 록펠러 센터 경영과 가문 기업 활동에 합류하며 사업가로서 첫발을 디딤. 이후 공직·정치로 확장되는 경력의 학문적 토대.
스탠더드오일 창업자 존 D. 록펠러의 손자이자 존 D. 록펠러 주니어와 애비 올드리치 록펠러의 6남매 중 셋째로 메인주 바하버에서 태어남. 미국에서 가장 부유한 가문의 일원으로 성장하며 훗날 정치·자선·예술 후원의 발판이 된 배경 형성. 가문의 부와 공적 활동이 결합된 그의 생애의 출발점.
2021년 9월 24일 멍완저우가 미 검찰과 기소유예 합의(DPA)에 이른 뒤 약 3년 만에 석방돼 중국으로 귀국. 같은 시기 중국에 억류됐던 캐나다인 2명도 풀려나며 외교 갈등 일단락. 화웨이를 둘러싼 미·중 마찰의 한 분수령.
2019년 8월 안드로이드를 대체할 자체 운영체제 하모니OS(훙멍) 공개. 미국 제재로 구글 모바일 서비스 사용이 막힌 데 대한 기술 자립 차원의 대응. 반도체 자회사 하이실리콘의 기린 칩과 함께 중국 기술 자립의 상징으로 부상.
2019년 5월 미국 상무부가 화웨이와 다수 계열사를 수출통제 명단(entity list)에 등재. 미국산 첨단 반도체·구글 안드로이드 서비스·설계 소프트웨어 접근이 차단되며 창사 이래 최대 위기 직면. 글로벌 스마트폰 점유율의 급격한 하락으로 이어짐.
2018년 12월 1일 화웨이 CFO이자 런정페이의 딸 멍완저우가 미 법무부 요청으로 밴쿠버 공항에서 체포. 미국은 멍과 화웨이가 홍콩 위장회사 스카이콤을 통해 대(對)이란 제재를 위반하고 은행 사기를 저질렀다고 기소. 미·중 기술 갈등을 외교 분쟁으로 비화시킨 사건.
2010년 자사 브랜드 스마트폰 어센드(Ascend) 시리즈 출시로 소비자 전자 사업 본격화. 이후 CES 2012에서 초슬림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Ascend P1과 P1 S를 공개. 이후 출하량이 빠르게 늘어 2015년 약 1억 800만 대 기록. 삼성·애플에 이은 세계 3위 스마트폰 제조사로 등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