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사스 대 존슨 판결에 반발한 의회가 1989년 연방 국기보호법을 제정하자, 이를 어기고 국기를 불태운 사건에서 연방대법원이 다시 5대 4로 이 법을 위헌이라 결정함. 국기 소각을 처벌하려는 입법 시도가 거듭 좌절되면서, 성조기 모독을 금지하려면 헌법 수정밖에 없다는 점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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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사스 대 존슨 판결로 주(州) 차원의 국기모독죄가 무효화되자, 의회가 '특정인을 모욕할 의도'라는 요건을 뺀 연방 차원의 국기보호법을 380대 38로 통과시킴. 부시 대통령은 헌법 수정이 옳은 길이라며 서명을 거부했으나 1989년 10월 28일 법률로 발효됨. 그러나 이 법 역시 이듬해 미국 대 아이크먼 판결에서 위헌으로 무효화되며, 성조기 모독 처벌을 둘러싼 입법·사법의 충돌을 보여줌.
1984년 공화당 전당대회(댈러스)에서 성조기를 불태운 그레고리 존슨의 유죄가 다투어진 사건에서, 연방대법원이 5대 4로 '정치적 항의로서의 국기 소각은 수정헌법 1조가 보호하는 상징적 표현'이라고 판결함. 48개 주의 국기모독죄가 무효화되었고, 성조기가 곧 표현의 자유 논쟁의 한복판에 선 기념비적 판례.
아폴로 11호의 닐 암스트롱과 버즈 올드린이 인류 첫 달 착륙 중 달 표면에 특수 제작된 성조기(Lunar Flag Assembly)를 세움. 대기가 없는 달에서도 펼쳐 보이도록 가로대를 댄 나일론 깃발이었음. 지구 밖에 세워진 첫 국기로서, 냉전기 미국의 기술력과 개척 정신을 전 세계에 각인한 상징적 장면.
하와이가 1959년 50번째 주가 된 데 따라,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행정명령 10834호가 정한 별 50개(6개씩 5줄·5개씩 4줄 엇갈림 배열) 성조기가 1960년 7월 4일부터 공식 국기로 시행됨. 알래스카 승격으로 1년간 쓰였던 49개 별 국기를 잇는 디자인으로, 60년 넘게 이어진 미국 역사상 가장 오래 쓰인 성조기.
오하이오주 랭커스터 고교 2학년이던 17세 로버트 헤프트가 역사 수업 과제로, 알래스카·하와이의 주 승격을 내다보고 48개이던 별을 50개로 늘린 성조기를 직접 만들어 제출함. 교사는 '별 개수가 틀렸다'며 B−를 주었고, 이듬해 같은 배열이 공식 국기로 채택되자 학점을 A로 고쳐줌. 통설로 굳은 일화지만, 같은 도안을 낸 사람이 수천 명에 달했다는 점에서 단독 창안 여부엔 논란이 있음.
재향군인회 등이 500만 명 서명 청원을 모은 끝에, 상원이 1931년 3월 3일 법안을 통과시키고 허버트 후버 대통령이 이튿날 서명해 '별이 빛나는 깃발(The Star-Spangled Banner)'이 미국의 공식 국가가 됨. 포트 맥헨리의 성조기를 노래한 곡이 국가가 되면서, 국기와 국가가 하나의 애국 의례로 결합됨.
태평양전쟁 이오지마 전투 중 미 해병대원 6명이 수리바치산 정상에 성조기를 세우는 장면을, AP통신 사진기자 조 로젠탈이 촬영함(두 번째 게양 장면). 이틀 뒤 신문에 실려 폭발적 반향을 일으켰고 그해 퓰리처상을 받음. 전쟁채권 모금과 해병대 기념비의 모델이 되며, 성조기가 미국의 희생과 승리를 응축한 가장 상징적인 이미지로 각인됨.
그때까지 정부 기관에서만 66종의 제각각인 국기가 쓰이자,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 대통령이 행정명령 1556호로 별의 배열(가로 6줄×8개=48개)과 깃발의 비율·크기를 처음으로 표준화함(7월 4일 시행). 임의적이던 성조기의 형태가 통일된 규격을 갖추게 된 전환점.
베시 로스의 손자 윌리엄 캔비가 펜실베이니아 역사협회에서 '할머니가 조지 워싱턴 등의 의뢰로 첫 성조기를 바느질했고 별을 오각형으로 바꿨다'는 이야기를 공개 발표함. 1870년의 이 발표로 베시 로스 전설이 대중에 퍼졌으나 이를 뒷받침할 사료가 없어 현대 학자들은 정설로 인정하지 않음. 그럼에도 미국 건국 신화의 한 장면으로 깊이 자리 잡음.
의회가 줄무늬는 독립 당시 13개 주를 기리는 13개로 되돌리고, 별은 주가 늘 때마다 하나씩 추가하되 그해 7월 4일부터 반영하도록 한 1818년 국기법을 제정함. 이로써 별의 수로 주의 수를 나타내는 오늘날의 원칙이 확립되어, 이후 모든 성조기 디자인 변경의 토대가 됨.
1794년 국기법에 따라 1795년 5월 1일부터 줄무늬와 별이 각각 15개인 성조기가 공식 시행됨. 미국 역사상 줄무늬가 13개를 넘은 유일한 국기로 1818년까지 23년간 쓰임. 이 깃발이 바로 1814년 포트 맥헨리 상공에 휘날리며 미국 국가의 영감이 된 '별이 빛나는 깃발(Star-Spangled Banner)' 실물로, 현재 스미스소니언에 보존됨.
버몬트·켄터키의 연방 가입을 반영해 줄무늬와 별을 각각 15개로 늘리는 1794년 국기법에 조지 워싱턴 대통령이 서명함. 새 국기의 시행일은 1795년 5월 1일로 정해졌으며, 주가 늘 때마다 줄무늬까지 함께 늘리려 한 처음이자 마지막 시도였음. 줄무늬가 계속 불어나는 문제는 훗날 1818년 국기법에서 13개로 되돌려 해결됨.
대륙회의가 '13개 주의 국기는 붉은색과 흰색이 번갈아 나오는 13개 줄무늬로, 연합은 푸른 바탕의 흰 별 13개로 한다'는 국기 제정 결의를 채택함. 별과 줄무늬로 13개 식민지를 나타낸 이 결의가 성조기의 법적 출발점이 됨. 오늘날 미국은 이날(6월 14일)을 '국기의 날'로 기림.
독립전쟁 첫해, 영국 깃발과 구분되는 표지가 필요했던 식민지 연합이 13개 식민지를 뜻하는 붉은·흰 줄무늬 13개에 좌측 상단 칸톤만 영국 유니언기를 넣은 '그랜드 유니언 기(대륙연합기)'를 사용함. 1775년 12월 3일 대륙해군 기함 알프레드호에서 존 폴 존스가 처음 게양했고, 이듬해 초 케임브리지 인근 대륙군 진영(프로스펙트 힐)에도 올랐다고 전함. 별 대신 영국 국기가 남아 있던 이 깃발은 1777년 별 13개 국기로 대체되기 전까지 사실상 미국의 첫 국기였음.
제2차 대륙회의가 붉은색과 흰색의 13개 줄무늬, 푸른 바탕 위 13개의 흰 별로 구성된 미국 국기 결의를 채택. 이후 이 도안은 ‘성조기’의 원형으로 자리 잡았으며, 벳시 로스가 제작했다는 이야기는 미국 국기 기원에 관한 대표적 전승으로 확산됨.
현대 미국 육군의 뿌리는 미국이 독립하기 전, 미국 독립 전쟁 때문에 1775년 6월 14일에 창설된 대륙군에 두고 있음.
한국이 유네스코 총회에서 55번째 정식 회원국으로 가입. 참혹한 한국전쟁 발발 직전 국제 사회의 지원과 교육 재건을 이끌어내는 중요한 계기.
이탈리아의 추기경, 정치인 쥘 마자랭. (~166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