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벤트 18,030

정렬

편집일 기준 · 한국 시간

20건

개막 전날 강화도 마니산 참성단에서 대회 성화를 채화하고 서울로 봉송한 행사. 서울시청 앞에서 하루를 보낸 뒤 이튿날 잠실 올림픽주경기장에 도착한 성화로, 패럴림픽 성화봉송의 출발점으로 기록된 대회 상징.

재단법인 한국장애자복지체육회가 설립허가를 받아 대회 이후 장애인 복지·체육 사업을 이어갈 기반을 마련한 단계. 훗날 한국장애인개발원으로 이어진 조직의 출발이며, 1990년 6월 한국장애인복지체육회로 변경되기 전의 명칭.

네덜란드 안헴에서 열린 국제조정위원회(ICC) 총회에서 제8회 장애인올림픽 개최지로 서울을 선정한 결정. 1984년 유치 신청과 가조인에 이어 국제 개최 절차가 공식화된 단계.

잠실 올림픽주경기장에서 폐회식이 열리며 10일간의 대회를 마친 날. 한국은 금메달 40개·은메달 35개·동메달 19개, 총 94개로 종합 7위를 기록했으며 미국·서독·영국이 메달 순위 상위 세 자리를 차지한 결과.

1988 서울 패럴림픽

서울올림픽주경기장에서 약 7만 5천 명의 관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제8회 서울 패럴림픽 개회식 개최. 노태우 대통령의 개회 선언과 새 국제조정위원회(ICC) 공식기 전달로 대회의 시작을 알린 행사.

1964년 도쿄 이후 24년 만에 올림픽과 같은 도시·주요 경기시설에서 열린 패럴림픽으로, 두 국제대회의 개최 기반을 연계한 중요한 전환점.

1988 서울 패럴림픽

1996년 2월 29일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정부가 사라예보를 둘러싼 약 4년간의 포위전이 공식적으로 끝났다고 선언한 사건. 데이턴 평화협정 이행 과정에서 도시 주변 세르비아계 병력의 철수와 주요 도로의 통제권 이전이 이루어지면서 정부가 포위 해제를 확인함.

1995년 군사적 봉쇄 완화·평화협정 체결과 1996년 2월 29일 정부의 공식 종료 선언은 서로 구별되는 단계. 장기 포위로 시민 희생과 도시 기반시설 파괴가 발생했으며, 이후 귀환·재건·전쟁범죄 책임 규명이 과제로 남음.

1908년 2월 29일 원주진위대 출신 항일 의병장 민긍호가 강원도 일대에서 일본군과 교전하다 붙잡힌 뒤 탈출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사망한 사건. 민긍호는 1907년 대한제국 군대 해산에 항거해 원주진위대 봉기를 주도하고 강원도·경기도·충청도 등지에서 의병을 지휘한 인물.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인명사전과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1908년 2월 29일을 사망일로 기록하나, 일부 국가보훈부 자료에는 2월 28일로 표기되어 날짜 이견이 있음. 원사료와 전투·체포 경과를 추가 대조할 필요.

1504년 2월 29일 자메이카에 머물던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이날 예측된 개기월식을 이용해 현지 주민에게 식량 공급을 요구한 일화. 항해일지와 후대 전승에 따르면 콜럼버스는 월식을 신의 경고처럼 설명해 원주민을 압박했고, 이는 원정대가 식량을 확보하는 데 이용됨.

유럽의 천문 지식이 식민지 접촉 상황에서 권력과 강압의 수단으로 사용된 사례. 사건의 세부 대화와 효과는 당시 원정대 측 기록에 의존하므로 확정적 사실과 전승적 서술을 구분할 필요.

2020년 2월 29일 카타르 도하에서 미국과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의 전쟁 종식과 외국군 철수에 관한 합의문에 서명한 사건. 합의에는 탈레반의 대테러 약속과 조건부 미군·연합군 철수, 아프가니스탄 내부 협상 추진 등이 포함됨.

2001년 이후 지속된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외교적 전환점. 당시 아프가니스탄 정부가 미국·탈레반 간 합의의 직접 서명 당사자는 아니었으며, 이후 2021년 외국군 철수와 탈레반의 재집권으로 이어진 과정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사건.

2012년 2월 29일 미국과 북한이 베이징에서의 양자 협의 결과를 각각 발표한 사건. 북한은 장거리 미사일 발사·핵실험·영변 우라늄 농축 활동 등을 유예하고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 복귀를 허용하기로 했으며, 미국은 24만 톤의 영양 지원을 추진하기 위한 세부 협의를 진행하기로 함.

김정일 사망 이후 북·미 관계 개선의 가능성을 보여준 외교적 시도였으나, 북한의 위성 발사 계획 발표와 4월 발사 이후 합의가 사실상 무산됨. 발표 당시 영양 지원은 실행 세부사항을 추가 협의하는 단계였음을 구별해야 함.

2004년 2월 29일 아이티의 장베르트랑 아리스티드 대통령이 무장 반군의 진격과 정치적 압박이 심화된 가운데 사임하고 해외로 출국한 사건. 아이티 대법원장이던 보니파스 알렉상드르가 헌법상 승계 절차에 따라 임시 대통령에 취임함.

아이티의 정권 교체와 국제사회 개입을 촉발한 정치적 위기. 미국은 자발적 사임을 주장했으나 아리스티드는 사임이 강요되었다고 반박하는 등 퇴진 경위에 대한 논쟁이 지속됨.

1980년 2월 29일 최규하 정부가 긴급조치 위반 등으로 정치적 권리를 제한받았던 윤보선·김대중 등 687명에 대한 복권 조치를 단행한 사건. 관련 인사들은 선거권·피선거권 등 공민권을 회복하였으며, 유신체제 종식 이후 정치적 자유화 조치의 일환으로 이루어짐.

1979년 10·26 이후 이른바 '서울의 봄' 시기에 정치활동 재개와 민주화 기대를 보여준 조치. 다만 같은 해 신군부의 권력 장악과 5·18민주화운동 탄압으로 민주화 이행이 좌절된 맥락에서 이해할 필요.

1960년 2월 29일 밤 모로코 대서양 연안 도시 아가디르에서 규모 약 5.7~5.9의 지진이 발생한 사건. 진원이 얕고 건축물이 취약해 도시의 상당 부분이 무너졌으며 약 1만 2천 명이 사망하고 수많은 주민이 부상·이재민이 됨.

비교적 중간 규모의 지진도 도시 구조와 건축물의 내진성에 따라 참혹한 피해를 낼 수 있음을 보여준 재난. 도시 재건과 모로코의 지진 대비 정책을 연결하는 사건.

1940년 2월 29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제1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해티 맥대니얼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매미 역으로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사건. 흑인 배우가 아카데미 연기상을 수상한 최초의 사례로, 영화 산업의 인종 장벽을 넘어선 상징적 성취.

시상식 당시 인종분리 관행으로 맥대니얼이 다른 출연진과 떨어진 자리에서 참석해야 했다는 차별적 현실도 함께 보여주는 사건. 수상과 당시 할리우드의 인종차별 구조를 균형 있게 기록할 가치.

1704년 2월 29일 앤 여왕 전쟁 중 프랑스군과 여러 원주민 동맹 세력이 영국령 매사추세츠의 디어필드 정착지를 기습한 사건. 주민 약 50명이 사망하고 100명 이상이 포로로 잡혀 겨울철 캐나다 방면으로 이동해야 했으며 정착지 일부가 파괴됨.

북아메리카에서 영국·프랑스 식민세력의 경쟁과 원주민 동맹·전쟁이 복잡하게 얽힌 국경 분쟁의 사례. 당시 포로 경험과 원주민의 입장을 함께 검토할 필요가 있는 사건.

2001년 10월 26일 미국의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9·11 테러 이후 의회를 통과한 미국 애국자법(USA PATRIOT Act)에 서명해 법률로 확정한 사건. 수사기관의 감청·수색 및 금융 추적, 기관 간 정보공유 권한 등을 확대하는 내용을 포함함.

테러 방지를 위한 국가안보 정책이 크게 전환된 사건인 동시에, 개인정보 보호·시민적 자유·정부 감시권의 범위를 둘러싼 장기적인 논쟁을 촉발한 입법.

1994년 10월 26일 이스라엘과 요르단이 양국 국경의 아라바 통과 지점에서 평화조약에 서명한 사건. 이스라엘의 이츠하크 라빈 총리와 요르단의 압둘살람 마잘리 총리가 조약에 서명하고 미국의 빌 클린턴 대통령 등이 참석함.

1948년 이후 이어진 양국의 전쟁 상태를 종식하고 국경·안보·수자원·외교관계의 기본 틀을 확립한 중동 외교사의 중요한 전환점. 조약은 1994년 11월 10일 발효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