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드루 1세, 브라질 독립 선언
브라질 섭정왕자 페드루가 상파울루 인근 이피랑가에서 포르투갈과의 정치적 분리를 선언한 사건. 1822년 9월 7일은 브라질 독립의 상징적 날짜로 자리 잡았으나, 독립은 선언 한 번으로 완결된 것이 아니라 이후 각지의 무력 충돌과 국가 체제 정비, 1825년 포르투갈의 승인까지 이어진 과정의 핵심 분기점.
브라질 섭정왕자 페드루가 상파울루 인근 이피랑가에서 포르투갈과의 정치적 분리를 선언한 사건. 1822년 9월 7일은 브라질 독립의 상징적 날짜로 자리 잡았으나, 독립은 선언 한 번으로 완결된 것이 아니라 이후 각지의 무력 충돌과 국가 체제 정비, 1825년 포르투갈의 승인까지 이어진 과정의 핵심 분기점.
프랑스의 비평가 에드몽 드 공쿠르. (~1896년)
프랑스의 정치가 프레데리크 파시. (~1912년)
프랑스의 군인, 황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1769년~)
미국의 정치인 새뮤얼 G. 아널드. (~1880년)
프랑스의 작가 샤를 보들레르. (~1867년)
영국의 간호사 플로렌스 나이팅게일. (~1910년)
영국의 사회학자, 철학자 허버트 스펜서. (~1903년)
프랑스의 화가 귀스타브 쿠르베. (~1877년)
폴란드의 장군 얀 헨리크 동브로프스키. (1755년~)
미국의 남북전쟁 당시 남부동맹의 장군 피에르 보우리가드. (~1860년)
독일의 철학자 카를 마르크스. (~1883년)
덴마크의 국왕 크리스티안 9세. (~1906년)
의회가 줄무늬는 독립 당시 13개 주를 기리는 13개로 되돌리고, 별은 주가 늘 때마다 하나씩 추가하되 그해 7월 4일부터 반영하도록 한 1818년 국기법을 제정함. 이로써 별의 수로 주의 수를 나타내는 오늘날의 원칙이 확립되어, 이후 모든 성조기 디자인 변경의 토대가 됨.
《노생거 사원》과 《설득》이 존 머리를 통해 함께 사후 출간됨. 오빠 헨리 오스틴의 전기적 소개가 실리면서 제인 오스틴이라는 이름이 처음으로 자신의 소설 저자로 공개적으로 제시됨. 표제지 연도는 1818년으로 표시됨.
제인 오스틴이 치료를 위해 머물던 윈체스터에서 41세로 사망함. 7월 24일 윈체스터 대성당에 안장됨.
《The Brothers》라는 제목으로 훗날 《샌디턴》이라 불리는 장편을 집필하기 시작함. 12개 장까지 작성했으나 건강이 악화돼 3월 18일 작업을 중단함.
월터 스콧이 《Quarterly Review》에 익명으로 《엠마》 평론을 발표함. 평범한 일상과 통상적인 인물들을 소재로 독창적인 소설을 만들어내는 오스틴의 방식을 평가했으며, 동시대 주요 작가가 남긴 최초의 장문 비평 가운데 하나가 됨.
오빠 헨리 오스틴이 1803년 출판권을 넘겼으나 출간되지 않았던 《수전》의 판권을 10파운드에 다시 사들임. 작품은 이후 《노생거 사원》으로 개정되어 사후 출간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