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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네가 아동 심리와 교육에 관한 연구를 종합한 『Les Idées modernes sur les enfants』를 파리의 에르네스트 플라마리옹에서 출간함. 학교에서의 아동 관찰, 신체·감각 측정, 기억과 지능의 평가, 교육 방법 등을 실험심리학의 관점에서 검토한 저작.

특히 지능을 개인에게 고정된 채 주어지는 양으로 보는 견해를 비판하고, 주의·기억·판단 등 지적 기능이 교육과 훈련을 통해 발달할 수 있다고 주장함. 비네의 지능검사가 단순한 서열화 도구가 아니라 교육적으로 개입할 대상을 찾기 위한 것이었다는 관점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저작 가운데 하나.

비네와 시몽이 기존 검사 과제를 대폭 재구성해 3세부터 13세까지의 연령 수준별로 배열한 개정 척도를 발표함. 특정 연령의 다수 아동이 통과하는 과제를 그 연령 수준에 배치함으로써 아동의 수행을 또래의 전형적인 수행과 비교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춤.

이 판에서 아동의 검사 수행을 특정 연령 집단에 해당하는 ‘정신 수준(mental level)’으로 표현하는 방식이 본격화됨. 후대 영어권 지능검사 전통에서는 이것이 ‘정신연령(mental age)’이라는 용어로 널리 정착했으므로, 비네 자신이 현대적 의미의 정신연령 개념을 처음부터 같은 용어로 제시한 것으로 단순화하지 않음.

알프레드 비네

알프레드 비네와 테오도르 시몽이 특별한 교육 지원이 필요한 아동의 현재 지적 수행 수준을 평가하기 위한 첫 검사 체계를 발표함. 약 30개의 다양한 과제를 쉬운 것에서 어려운 것 순으로 배열하고 기억·이해·언어·판단·추론 등 여러 정신 기능을 함께 살펴보도록 구성함.

1905년판은 아직 1908년판과 같은 연령별 척도가 완성된 상태가 아니었음. 정상 아동과 다양한 연령 집단에 검사를 적용한 후 과제를 연령 수준별로 재배치하는 작업이 이어졌고, 1908년 개정에서 오늘날 비네-시몽 척도의 전형으로 알려진 구조가 확립됨.

알프레드 비네

프랑스 공교육 확대와 함께 일반 학급의 수업을 따라가기 어려운 아동에게 어떤 교육을 제공할 것인지가 정책 과제로 떠오르자 1904년 공교육부가 관련 위원회를 구성함. 비네도 위원으로 참여해 교사나 의사의 주관적 인상에만 의존하지 않는 판별 방법을 모색함.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교육적·의학적 검사와 함께 아동의 현재 지적 수행 수준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방법이 요구됨. 비네와 테오도르 시몽의 연구가 이듬해 첫 지능 측정 체계 발표로 이어지는 직접적인 제도적 배경이 됨.

1894년 창간된 『심리학 연보』의 첫 권을 앙리 보니스와 알프레드 비네의 편집으로 1895년 발간함. 첫 권에는 1894년 소르본 연구소에서 수행된 연구와 국제 심리학 연구 동향이 함께 수록됨.

연구소 내부의 성과집을 넘어 정기적인 학술 발표 매체를 구축하면서 프랑스 실험심리학의 제도화에 중요한 기반이 됨. 이후 비네가 연구소와 학술지를 함께 이끌며 자신의 기억·개인차·아동 연구를 지속적으로 발표하는 주요 지면으로 활용함.

알프레드 비네 공동 편집

기존 연구소 간행물의 형식에 한계를 느낀 비네가 앙리 보니스의 동의를 얻어 1894년 『L’Année Psychologique』를 창간함. 프랑스에서 과학적 심리학을 전문적으로 다룬 최초의 학술지로, 실험심리학 연구 성과와 국제 연구 동향을 함께 소개하는 것을 목표로 함.

창간 결정은 1894년에 이루어졌고 1894년의 연구를 담은 첫 연보는 이듬해인 1895년에 발간됨. 따라서 1894년 창간과 1895년 첫 권 발간은 별개의 사건으로 구분함.

알프레드 비네

1891년 앙리 보니스가 이끌던 소르본의 심리학 연구소에 합류함. 1892년 부소장을 맡아 기억·개인차·고등 정신 과정에 관한 실험을 주도하기 시작함. 보니스가 물러난 뒤 1895년 공식 소장이 되어 1911년 사망할 때까지 연구소를 이끎.

연구소는 비네가 아동 심리와 지능 연구를 발전시키는 핵심 기반이 됨. 비네는 복잡한 대형 장비보다 종이·연필·그림과 간단한 도구를 활용해 기억·판단·추론 같은 고등 정신 기능을 관찰하고 비교하는 방법을 발전시킴.

알프레드 비네

최면 실험에서 나타난 일부 현상이 피험자의 피암시성과 실험자의 무의식적 단서에 의해 만들어졌을 가능성을 받아들이면서 샤르코 학파의 일부 연구 결과에 대한 지지를 철회함. 1890년 무렵 살페트리에르를 떠나 최면을 주요 실험 방법으로 사용하는 연구에서 벗어남.

이 전환은 단순한 연구 분야 변경보다 비네의 연구 방법론에 중요한 변곡점이 됨. 이후 아동과 정상 성인을 대상으로 고등 정신 기능과 개인차를 직접 관찰·측정하는 연구로 관심을 옮김.

알프레드 비네

1880년대 초 파리 살페트리에르 병원에서 장마르탱 샤르코의 연구 환경에 참여해 최면과 히스테리 현상을 연구함. 샤르코 학파는 최면을 히스테리와 연결된 신경학적 현상으로 설명했고, 비네도 초기에는 이 해석을 지지하며 샤를 페레 등과 관련 실험을 수행함.

이 시기의 연구는 훗날 비네가 피험자의 피암시성과 실험자의 기대가 연구 결과에 개입할 수 있다는 문제를 인식하는 계기가 됨. 최면 연구의 한계를 경험한 뒤 관찰과 실험 통제를 더 중시하는 연구 태도로 이동하게 되는 배경이 됨.

알프레드 비네

배우 하영의 증조부 안상호의 일제강점기 행적이 알려져 한국에서 관련 논란이 이어지던 가운데 넷플릭스 재팬이 하영 개인을 약 4분간 조명한 특집 영상을 공식 유튜브 채널에 공개함. 영상은 한 작품의 홍보가 아니라 『이런 엿같은 사랑』·『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월간남친』·『참교육』 등 여러 작품의 하영 출연 장면을 묶고, 하영을 ‘자기답게 살아가는 강인하고 유연한 캐릭터들’을 연기하는 배우로 소개함. 공개 시점과 대상 선정, 하영 얼굴 네 장을 배치한 썸네일이 한국 언론과 온라인에서 논란이 됨.

일본 외무성이 2021년 10월 한국어·영어·중국어 등으로 제작해 공식 유튜브에 올린 「일본의 오랜 문화로서의 욱일기」 영상이 한국 이용자들에게 한국어 유튜브 광고로 직접 송출되고 있는 사실이 알려짐. 국내에서 반발이 확산돼 반크 등이 유튜브코리아에 광고 금지를 요구함.

일본 제품 불매운동과 강제동원·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주요 한일 현안으로 이어지던 가운데 유니클로의 한국 광고에서 영어 원문의 ‘그렇게 오래전 일은 기억하지 못한다’는 대사가 ‘80년도 더 된 일을 기억하냐고?’로 번역됨. 원문에 없던 구체적인 숫자가 한국판에 추가되고 80년 전이 일제강점기와 겹친다는 점에서 큰 논란이 발생함. 유니클로는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고 설명한 뒤 국내 광고 송출을 중단함.

일본의 수출규제로 한국에서 일본 제품 불매운동이 확산되던 시기에 일본 화장품 기업 DHC의 자회사 DHC TV가 한국의 불매운동을 비꼬고 평화의 소녀상·한글·독도 등을 두고 한국 비하·역사왜곡성 발언을 담은 유튜브 방송을 내보낸 사실이 알려짐. 국내 주요 유통업체가 DHC 제품 판매를 중단하고 DHC코리아가 사과했으나 DHC TV는 ‘사실에 근거한 정당한 비평’이라는 취지로 반박함.

도쿄올림픽·패럴림픽 조직위원회 공식 홈페이지의 성화봉송 경로 지도에 독도 위치가 일본 영토에 포함되는 것처럼 표시된 사실이 알려짐. 한국 정부가 삭제를 요구했으나 일본 측이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당시 일본의 항의와 IOC 권고에 따라 한반도기에서 독도를 제외한 전례와 대비되며 논란이 커짐.

후지TV가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을 맞아 방송한 한국 특집에서 서울의 한 여학생이 한국의 문화와 외국인 방문객을 말하는 장면에 ‘일본이 싫다. 한국을 괴롭혔다’는 취지의 일본어 자막을 붙이는 등 실제 발언과 자막·더빙이 일치하지 않는 장면을 방송함. 논란이 확산되자 후지TV는 6월 29일 다른 인터뷰 부분의 영상을 잘못 사용한 편집 실수였다며 공식 사과함.

일본 외무성이 앞서 일본어로 공개했던 독도 영유권 주장 동영상 「다케시마-법과 대화에 의한 해결을 지향하며」를 한국어를 포함한 여러 언어로 제작해 공식 홈페이지와 유튜브에 배포함. 한국 정부는 주한 일본대사관 관계자를 불러 항의하고 해당 동영상의 삭제를 요구함.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 이후 한일 갈등이 격화된 가운데 일본 정부가 외무성 명의로 요미우리신문·도쿄신문 등 중앙·지방지 약 70곳에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광고를 게재하기 시작함. 일본 정부가 자국 신문을 대상으로 독도 영유권 주장을 대규모 정부 광고로 전개한 첫 사례로 보도됨.

일본 외무성이 「다케시마 문제를 이해하기 위한 10가지 포인트」라는 14쪽짜리 팸플릿을 일본어뿐 아니라 한국어와 영어로 제작해 공식 홈페이지에서 열람·인쇄할 수 있도록 공개함. 독도가 일본 영토이며 한국이 이를 불법 점거하고 있다는 일본 정부의 주장을 한국어로 직접 전달한 공식 온라인 홍보물로 논란이 됨.

시마네현이 2005년 조례로 지정한 ‘다케시마의 날’이 처음 기념된 2006년 2월 22일 『만화 혐한류 2』가 발매됨. 전작의 흥행이 이어지던 가운데 독도·재일한국인·식민지배·전후보상 등 한일 현안을 다룬 후속편이 ‘다케시마의 날’과 같은 날짜에 출간돼 한국 관련 논란이 이어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