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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이 1945년 8월 9일 오전 11시 2분 나가사키 상공에서 플루토늄 내폭형 원자폭탄 Fat Man을 폭발시킴. 트리니티 시험에서 검증한 것과 같은 기본적인 내폭 방식의 무기였으며 로스앨러모스 연구소가 개발에 중심적 역할을 담당함. 나가사키의 공식 추모기관 자료는 1945년 말까지 약 7만~7만4천 명이 사망하고 약 7만5천 명이 부상한 것으로 추산함. 중국인·조선인 강제노동자와 외국인 전쟁포로도 피해자에 포함됨.

미군이 일본 히로시마에 우라늄 건배럴 방식의 원자폭탄 Little Boy를 투하함. 오펜하이머가 이끈 로스앨러모스는 사용된 핵무기의 설계·개발을 담당했지만 실제 투하의 군사적 명령권자는 아니었음. 히로시마시는 정확한 사망자 수를 확정하기 어렵다고 설명하며 1945년 말까지 약 14만 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산함. 피해자에는 일본인뿐 아니라 당시 일본의 식민지였던 조선·대만 출신자와 중국인, 외국인 포로 등도 포함됨.

오펜하이머가 이끄는 로스앨러모스 연구진이 뉴멕시코 사막에서 플루토늄 내폭형 핵장치 Gadget을 폭발시켜 세계 최초의 핵폭발 시험에 성공함. 실험은 1945년 7월 16일 새벽 실시되었으며 로스앨러모스가 개발한 내폭 시스템의 실제 작동 가능성을 입증함. 이후 같은 기본 방식이 나가사키에 투하된 Fat Man에 사용됨.

레슬리 그로브스와 제임스 코넌트가 오펜하이머에게 서한을 보내 뉴멕시코 특별연구소의 Scientific Director로서 권한과 책임을 공식 확인함. 오펜하이머에게 연구소의 과학 업무 수행, 연구방향 결정, 민간 인력 관리와 보안 등의 책임을 부여함. 기존 이벤트에 적힌 1943년 4월 20일은 미 육군 공병대와 캘리포니아대학교의 로스앨러모스 운영 계약일이므로 오펜하이머 개인의 ‘공식 인사 발령일’로 보지 않음.

미국 과학연구개발국장 배니버 부시가 그로브스와 오펜하이머가 참석한 회의에서 오펜하이머를 새로운 핵무기 중앙연구소 책임자로 삼는 방안을 승인함. 이후 그로브스와 오펜하이머는 연구소 부지를 물색했고 뉴멕시코 로스앨러모스를 Project Y의 장소로 선정함.

맨해튼 프로젝트 책임자 레슬리 그로브스가 오펜하이머에게 핵무기 물리 연구와 설계를 담당할 새로운 중앙 연구소 Project Y를 이끌 것을 요청함. 오펜하이머는 대형 연구소 운영 경험은 없었지만 핵무기 개발에 필요한 여러 이론 분야를 폭넓게 이해하고 연구자들을 통합할 수 있는 인물로 평가되어 선택됨.

막스 보른의 지도 아래 괴팅겐대학교에서 물리학 박사 학위를 취득함. 당시 괴팅겐은 양자역학 형성의 중심지 가운데 하나였으며, 오펜하이머는 이곳에서 유럽의 주요 이론물리학자들과 교류하며 실험물리학에서 이론물리학으로 연구 방향을 확립함.

하버드대학교를 졸업한 뒤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 캐번디시 연구소에서 J. J. 톰슨 아래 대학원 연구를 시작함. 실험물리학 연구에 어려움을 겪었으나 유럽에서 급속히 발전하던 양자역학에 관심을 돌렸고, 이듬해 막스 보른의 초청을 받아 괴팅겐대학교로 이동함.

1904년 4월 22일 뉴욕에서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 출생. 독일계 이민자 출신의 섬유 수입업자 아버지 줄리어스 오펜하이머와 화가였던 어머니 엘라 프리드먼 사이에서 성장했으며, 뉴욕 윤리문화학교를 거쳐 하버드대학교에 진학함.

제이크 홈스가 2025년 5월 지미 페이지·워너 채플·소니 픽처스를 상대로 2011년 합의 위반과 저작권 침해를 주장하는 소송을 제기함. 홈스 측은 야드버즈 시절 실황 음원과 다큐멘터리 《Becoming Led Zeppelin》에서 〈Dazed and Confused〉가 적절한 크레딧·보상 없이 사용됐다고 주장함. 8월 1일 당사자들이 연방법원에 분쟁 해결에 합의했다고 알렸으며 구체적인 합의 조건은 공개되지 않음.

버나드 맥마흔이 연출한 다큐멘터리 《Becoming Led Zeppelin》이 북미 IMAX에서 개봉함. 소니 픽처스 클래식스가 레드 제플린 결성 이후 처음으로 밴드의 공식 승인을 받은 영화라고 밝힌 작품으로, 멤버 인터뷰와 미공개 공연·아카이브 자료를 이용해 결성과 초기 활동을 다룸. 2월 14일 북미 일반 상영관으로 확대 개봉함.

제이크 홈스가 2010년 〈Dazed and Confused〉의 저작권 침해와 작곡 크레딧 문제를 제기하며 소송을 낸 뒤 지미 페이지와 법정 밖 합의에 도달함. 이후 레드 제플린의 관련 발매물에는 홈스의 원곡에서 영감을 받았음을 나타내는 수정 크레딧이 사용되기 시작함.

윌리 딕슨이 자신의 곡 〈You Need Love〉와 레드 제플린의 〈Whole Lotta Love〉 사이의 가사 유사성을 문제 삼아 1985년 제기한 저작권 소송이 법정 밖 합의에 도달함. 합의 조건은 공개되지 않았으며, 이후 후속 발매물에서 딕슨의 작곡 크레딧이 추가됨. 법원 기록상 소송은 같은 해 9월 최종적으로 정리됨.

워싱턴 D.C.에서 열린 2012년 케네디 센터 명예상 행사에서 레드 제플린이 버디 가이, 더스틴 호프먼, 데이비드 레터맨, 나탈리아 마카로바와 함께 수훈 대상으로 선정됨. 생존 멤버 지미 페이지·로버트 플랜트·존 폴 존스가 참석했으며, 헌정 공연에서 레드 제플린의 음악이 연주됨.

레드 제플린

2007년 O2 아레나 공연을 담은 콘서트 영화를 전 세계 극장에서 한정 상영. 같은 해 11월 음반·영상 매체로도 발매되며 재결합 무대의 전곡 실황이 정식 공개. 밴드가 직접 관리해 온 공연 기록을 대중에게 내놓은 사례로 이후 아카이브 발매 흐름과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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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틀랜틱 레코드 공동 창업자 아메트 어티건을 추모하는 자선 공연의 헤드라이너로 나서 1980년 해체 이후 처음으로 약 두 시간 규모의 레드 제플린 세트를 공연함. 드럼은 존 본햄의 아들 제이슨 본햄이 맡아 열여섯 곡을 연주함. 한 차례의 공연이었지만 2천만 건이 넘는 티켓 신청이 몰리며 밴드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보여줌.

레드 제플린

뉴욕 월도프 아스토리아에서 열린 제10회 헌액식에서 공연자 부문으로 이름을 올림. 에어로스미스의 스티븐 타일러와 조 페리가 헌액사를 맡고, 페이지·플랜트·존스와 본햄의 자녀 제이슨·조이가 함께 무대에 오름. 블루스·켈틱 포크·소울을 결합해 록의 틀을 넓힌 공적이 헌액 사유로 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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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라델피아 JFK 스타디움에서 열린 자선 공연에 페이지·플랜트·존스가 함께 올라 해체 후 첫 합동 무대를 가짐. 필 콜린스와 토니 톰프슨이 드럼을, 폴 마티네즈가 베이스를 맡아 〈Rock and Roll〉·〈Whole Lotta Love〉·〈Stairway to Heaven〉을 연주. 리허설 부족으로 연주가 흐트러져 멤버들 스스로 실패한 무대로 회고했고, 이후 오랫동안 공식 영상 공개를 꺼린 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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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체 이후 계약 정리와 아카이브 정돈을 겸해 1969년부터 1978년 사이 정규 앨범에 실리지 않았던 녹음을 모은 《Coda》를 발매함. 본햄의 드럼 솔로 〈Bonzo's Montreux〉를 비롯한 미발표 세션 트랙이 수록됨. 밴드 해체 이후 레드 제플린 명의로 정리된 첫 주요 아카이브 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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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햄 사망 두 달여 뒤 남은 세 멤버와 매니저가 공식 성명을 내고 활동 종료를 선언. 새 드러머를 들여 활동을 잇지 않겠다는 뜻을 밝혀 1968년 결성 이후 12년의 활동이 마무리. 멤버 교체로 명맥을 유지하는 관행과 달리 원 편성의 완결성을 택한 결정으로 자주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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