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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충칭에서 중국어 기관지 『독립신문』 충칭판을 창간. 1926년 상하이판 폐간 뒤 다시 발간된 판본으로, 중국 사회와 연합국 측에 임시정부의 활동·한중 연대·항일전선에서의 역할을 알리는 대외 선전 매체로 활용. 전시기의 물자 부족과 인쇄 여건 제약으로 비정기 발행.

독립신문 상하이판

상하이에서 1919년 8월 21일 창간된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관지 『독립신문』이 1926년 11월 26일 제198호를 마지막으로 폐간. 재정난과 발행 여건의 악화 속에서 약 7년간 이어진 상하이 국한문판 발행 종료. 이후 『독립신문』은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충칭으로 옮긴 뒤 1943년 다시 발간.

독립신문 상하이판

1924년 9월 통의부와 참의부의 갈등 속에서 참의장 채찬이 통의부원들에게 피살된 뒤, 『독립신문』은 10월 4일 제177호에 통의부 비판 사설 「남만사변을 듣고」와 참의부의 통의부 성토문을 게재함. 통의부 측은 11월 7개 단체와 연합해 반임정 선언과 『독립신문』 구독 금지 내용을 담은 성명서를 발표함. 김승학은 이러한 반발 속에서 1924년 11월 15일 사장직을 사임하고 상하이를 떠남.

독립신문 상하이판

『독립신문』이 1924년 1월 1일 제169호부터 한자 제호 ‘獨立新聞’을 한글 ‘독립신문’으로 변경. 1919년 창간호부터 제21호까지 사용한 ‘獨立’, 제22호부터 제168호까지 사용한 ‘獨立新聞’에 이은 세 번째 제호. 김승학 운영 아래 한인 독자를 위한 국문 표기를 제호에 반영한 변경.

김승학 운영 아래 『독립신문』 상하이 중문판이 1922년 7월 20일 제1호 발행으로 창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활동과 한국 독립운동의 정당성을 중국 사회와 국제 여론에 알리고, 중국인과의 연대를 넓히기 위한 중국어 신문 발간. 국한문판과 병행해 간행되었으며, 1924년 말까지 약 40호 발행.

독립신문 상하이판

일본 영사관의 항의와 프랑스 영사관의 조치로 봉쇄되어 제109호(1921년 5월 31일) 뒤 발행이 중단된 『독립신문』이, 1921년 8월 15일 제110호부터 속간. 김승학 사장 취임 뒤 신문사와 인쇄소의 재개방을 거쳐 발행을 재개했고, 김승학 운영기에는 제110호부터 제177호까지 모두 68호 발행.

독립신문 상하이판

1921년 7월 초 김승학이 『독립신문』 2대 사장에 취임. 초대 사장 겸 주필 이광수와 영업부장 이영렬의 이탈 뒤 일본 영사관의 항의와 프랑스 영사관의 조치로 신문사와 인쇄소가 봉쇄된 상황에서, 안창호와 신문사 해제 방안을 논의하고 프랑스 영사관과 교섭함. 그 결과 음력 5월 말 신문사와 인쇄소가 다시 개방되었고, 사장 김승학·주필 박은식·편집국장 차리석 체제로 운영 기반 재정비.

안창호 독립신문 상하이판

1919년 8월 21일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기관지 『독립』이 상하이 프랑스 조계 동익리에서 창간. 이광수가 사장 겸 주필을 맡고, 주요한·이영렬 등이 발간과 운영에 참여함. 상하이 망명 지사들이 국내외 소식과 독립운동 관련 기사를 싣던 등사판 신문 《우리 소식》을 발전시킨 매체로, 민족사상 고취와 독립운동 소식의 국내외 전파를 발간 목표로 제시함.

독립신문 상하이판 이광수 (춘원) 초대 사장 겸 주필

창간 이래 한자 제호 ‘獨立’으로 제21호까지 발행하던 신문이 제22호인 1919년 10월 25일부터 ‘獨立新聞’으로 제호 변경. 이 한자 제호는 제168호까지 유지되었고, 제169호인 1924년 1월 1일부터 한글 제호 ‘독립신문’으로 다시 변경.

서울회생법원이 홈플러스의 회생절차를 폐지하기로 결정함. 법원은 홈플러스가 제출한 수정 회생계획안의 수행 가능성을 검토한 뒤 회생절차를 계속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임.

앞서 법원은 회생계획 이행에 필요한 약 2천억 원 규모의 추가 자금 조달 계획에 대해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소명자료가 부족하다고 지적함. 홈플러스는 점포 축소·인력 감축·사업부 매각 등을 포함한 수정안을 제출했으나, 회생계획안은 관계인집회 결의 단계로 넘어가지 못함.

회생절차 폐지는 곧바로 파산을 뜻하지는 않지만, 홈플러스의 법정관리 절차가 종료되었다는 의미임. 이후 파산선고, 재신청 또는 별도 구조조정·매각 절차의 가능성은 남아 있으나, 구체적 방향은 후속 절차에서 결정될 전망.

찰스 로드, 리 로스, 마크 레퍼가 사형제의 억지 효과를 둘러싼 상반된 연구 결과를 제시하고 참가자들의 해석을 조사한 실험을 발표함. 사형제 찬성자와 반대자는 자신의 기존 입장에 부합하는 연구를 더 설득력 있고 방법론적으로 우수하다고 평가하고, 반대되는 연구는 더 비판적으로 평가하는 경향을 보임. 양측 모두 찬반 증거를 함께 접한 뒤에도 기존 태도가 약화되기보다 더 강해지는 태도 양극화가 나타남. 확증 편향이 추상적 가설 검증 과제를 넘어 사회적·정치적 쟁점의 증거 해석에서도 작동할 수 있음을 보여준 고전적 연구.

확증 편향

휴고 메르시에와 단 스페르베르가 학술지 《Behavioral and Brain Sciences》에 「Why Do Humans Reason? Arguments for an Argumentative Theory」를 발표함. 두 연구자는 인간 추론의 주된 기능이 개인이 혼자 진실을 발견하는 데만 있지 않고, 사회적 상황에서 주장을 만들고 평가하며 타인을 설득하는 데 있다고 주장함. 이 관점에서 확증 편향은 단순한 추론 실패가 아니라, 자신의 입장을 뒷받침할 논거를 찾는 논증적 기능과 연결된 경향으로 해석됨. 다만 이는 인간 추론의 진화적 기능에 관한 영향력 있는 이론적 제안이며, 확정된 단일 설명으로 받아들여지지는 않음.

확증 편향

에밀리 프로닌, 대니얼 린, 리 로스가 사람들이 인지적·동기적 편향을 자신보다 타인에게서 더 강하게 본다는 현상을 실험적으로 제시하고 이를 '편향 맹점(bias blind spot)'으로 설명함. 참가자들은 자신이 평균적인 미국인, 동료 학생, 다른 여행자보다 여러 편향에 덜 영향을 받는다고 평가하는 경향을 보임. 타인의 판단에서는 편향을 비교적 쉽게 발견하면서도 자기 판단의 편향에는 둔감한 비대칭을 보여준 연구. 편향을 인식하고 있다고 믿는 사람 역시 자신의 확증 편향을 충분히 알아차리지 못할 수 있음을 설명하는 대표적 개념.

확증 편향

레이먼드 니커슨이 학술지 《Review of General Psychology》에 「Confirmation Bias: A Ubiquitous Phenomenon in Many Guises」를 발표함. 기존 연구를 바탕으로 확증 편향이 증거의 선택적 탐색뿐 아니라 증거 해석, 기억, 신념 유지, 과학적·사회적 판단 등 여러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음을 종합적으로 검토함. 또한 웨이슨 선택 과제를 확증 편향으로 해석할 때 조건문의 논리적 검증과 일반적 가설 평가를 구별해야 하며, 긍정적 정보에 주의를 두는 경향 같은 대안 설명도 고려해야 한다고 논의함. 확증 편향의 범위와 작동 방식을 정리한 대표적 개관 논문.

확증 편향

피터 웨이슨이 「Reasoning about a Rule」을 발표하며, 조건문 규칙을 검증하기 위해 네 장의 카드 가운데 무엇을 뒤집어야 하는지를 묻는 선택 과제를 제시함. 예컨대 “한쪽 면에 모음이 있으면 다른 면에는 짝수가 있다”는 규칙에서, 참가자들은 대체로 규칙 위반 가능성을 확인하는 카드보다 규칙 문구에 직접 들어간 항목을 고르는 경향을 보임. 웨이슨은 이를 조건문의 대우 추론이 어려운 현상, 그리고 문장과 현실 사이의 일치·대응을 기대하는 사고 경향과 연결해 설명함. 이후 이 과제는 확증 편향 연구의 고전적 사례로 널리 인용되었으나, 후속 연구에서는 확증 편향 외에 일치 편향·긍정적 검증 전략 등 여러 설명이 제시됨.

확증 편향

피터 웨이슨이 「On the Failure to Eliminate Hypotheses in a Conceptual Task」를 발표함. 참가자에게 2-4-6이 어떤 규칙에 맞는 수열이라고 제시한 뒤, 새 수열을 제안해 숨은 규칙을 찾게 하는 과제. 실제 규칙은 단순히 오름차순인 세 수였지만, 참가자들은 자신이 세운 더 좁은 가설에 맞는 사례를 주로 시험하고 그 가설을 깨뜨릴 사례는 충분히 시험하지 않는 경향을 보임. 가설을 지지하는 증거만 찾고 반증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검토하지 않는 경향을 보여준 고전적 연구로, 이후 확증 편향 연구의 주요 출발점 가운데 하나로 인용됨.

확증 편향

프랜시스 베이컨이 『노붐 오르가눔』을 출간하며 인간 인식을 왜곡하는 요인을 종족의 우상·동굴의 우상·시장의 우상·극장의 우상으로 구분함. 또한 인간 지성이 한 견해를 받아들이면 그 견해에 부합하는 사례를 더 많이 끌어모으고, 반대 사례는 무시하거나 경시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함. 현대 심리학의 확증 편향을 직접 명명한 것은 아니지만, 그 핵심 작동 방식과 가까운 인식 오류를 이른 시기에 서술한 사례.

확증 편향

트위터가 여성·행동·미디어(Women, Action & the Media, WAM)와 협력해 성별 기반 온라인 괴롭힘 신고를 접수·검토하는 시범 프로그램을 도입. WAM이 신고 내용을 검토해 트위터에 전달하고, 트위터가 처리 결과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운영됨.

게이머게이트를 포함한 여성 대상 온라인 괴롭힘이 플랫폼의 신고·대응 체계에 대한 비판을 키운 뒤 나온 조치. 게이머게이트에 한정한 제도는 아니었으나, 대규모 성별 기반 괴롭힘이 플랫폼 안전정책 논의에 영향을 미친 사례.

게이머게이트

배우이자 게임 콘텐츠 제작자인 펠리시아 데이가 게이머게이트를 둘러싼 여성 대상 괴롭힘에 대한 우려를 텀블러에 게시. 글에서 신상공개 공격을 두려워해 침묵해 왔다고 밝힌 직후, 누군가가 그의 주소 등 개인정보를 게시함.

게이머게이트를 공개 비판하거나 여성 대상 괴롭힘을 문제 삼은 인물이 즉시 신상공개 공격의 표적이 되는 양상을 보여 준 사례. 조이 퀸·어니타 사키시안·브리아나 우를 넘어 게임 문화권의 다른 여성 창작자와 유명인에게도 공격이 확장됐음을 드러냄.

게이머게이트

배우 애덤 볼드윈이 조이 퀸을 둘러싼 공격성 콘텐츠를 소개하며 트위터에서 #GamerGate 해시태그를 사용. 이후 이 해시태그가 게임 저널리즘 윤리 문제를 내세운 논쟁과 여성 게임 개발자·비평가를 겨냥한 괴롭힘을 묶는 표지로 빠르게 확산됨.

게이머게이트는 중앙 지도부나 단일한 조직 구조 없이 전개됐지만, #GamerGate 해시태그가 참여자들의 주장·공격·동원을 연결하는 공통된 명칭과 집결점으로 기능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