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냐민 네타냐후, 리쿠드 소속으로 크네세트 첫 당선
베냐민 네타냐후가 1988년 총선에서 리쿠드 비례대표 명단으로 제12대 크네세트 의원에 처음 당선됨. 주유엔 이스라엘 대사 재임을 마치고 국내 정치에 진입한 사건. 이후 모셰 아렌스 외무장관 아래 외무차관을 맡으며 외교·안보 분야의 정치 경력을 본격화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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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냐민 네타냐후가 1988년 총선에서 리쿠드 비례대표 명단으로 제12대 크네세트 의원에 처음 당선됨. 주유엔 이스라엘 대사 재임을 마치고 국내 정치에 진입한 사건. 이후 모셰 아렌스 외무장관 아래 외무차관을 맡으며 외교·안보 분야의 정치 경력을 본격화함.
이스라엘이 ‘라이징 라이언 작전’이라는 명칭 아래 이란의 핵·미사일·군 지휘 체계를 겨냥한 대규모 기습 공습을 개시함. 이스라엘군은 200대가 넘는 전투기가 약 100개 표적을 타격했다고 밝혔으며, 나탄즈 농축시설과 군사시설, 이란 혁명수비대 고위 지휘부 등이 공격 대상에 포함됨. 이란은 같은 날 드론과 탄도미사일로 보복 공격에 나섰고, 양국의 직접 군사충돌은 이후 ‘12일 전쟁’으로 불린 전면적 교전으로 확대됨. IAEA는 나탄즈 시설 피격과 외부 방사능 영향 부재를 확인했으나, 초기 시점에는 지하 농축시설의 직접 피해 여부가 확정되지 않았다고 밝힘.
국제형사재판소(ICC) 전심재판부가 가자지구 전쟁과 관련해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와 요아브 갈란트 전 국방장관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함. 재판부는 두 사람이 기아를 전쟁 수단으로 사용한 전쟁범죄와 살해·박해 등 반인도범죄에 형사책임이 있을 합리적 근거가 있다고 판단함. 네타냐후는 결정을 반유대주의적 조치라고 비판하며 ICC의 관할권과 혐의를 모두 부인함.
베냐민 네타냐후가 2022년 총선 후 종교·극우 정당들과 손잡은 강경 우파 연정을 이끌고 총리에 다시 취임함.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우편향된 정부로 평가되었으며, 이후 사법 개혁 추진과 대규모 반대 시위로 이어짐.
나프탈리 베네트와 야이르 라피드가 합의한 교대 총리제 연립정부가 크네세트 신임투표를 60대 59로 통과하며 출범함. 베네트가 첫 총리로 취임하면서 2009년 3월부터 약 12년 2개월간 이어진 베냐민 네타냐후의 연속 집권이 종료됨. 우파·중도·좌파 정당과 아랍계 정당까지 참여한 이질적 연정이 네타냐후의 퇴진이라는 공통 목표 아래 결집한 결과였으며, 네타냐후는 야당 지도자로 이동함.
아비하이 만델블리트 이스라엘 검찰총장이 베냐민 네타냐후를 1000·2000·4000 사건과 관련해 정식 기소함. 4000 사건에는 뇌물수수·사기·배임 혐의가, 1000·2000 사건에는 사기 및 배임 혐의가 적용됨. 이스라엘 역사상 현직 총리가 형사 기소된 첫 사례였으며, 네타냐후는 모든 혐의를 부인하고 정치적 수사라고 주장하면서 총리직을 유지함.
베냐민 네타냐후의 누적 총리 재임 기간이 이스라엘 초대 총리 다비드 벤구리온의 기록을 넘어섬. 1996~1999년 첫 총리 재임과 2009년 이후의 두 번째 재임을 합산한 결과로, 이스라엘 역사상 최장수 총리가 됨. 장기간의 선거 승리와 연립정부 구성 능력을 바탕으로 이스라엘 정치에서 가장 오래 지속된 개인 중심의 리더십 중 하나를 형성한 시점.
2009년 총선 뒤 베냐민 네타냐후가 리쿠드·이스라엘 베이테이누·노동당·샤스·통합토라유대교 등으로 연립정부를 구성하고 총리로 재취임함. 크네세트는 3월 31일 제32대 정부를 69대 45로 승인했으며, 네타냐후는 약 10년 만에 총리직에 복귀함. 이 재임은 2021년 6월까지 이어짐.
아리엘 샤론 정부에서 재무장관을 맡아 예산 삭감, 공공부문 축소, 민영화, 감세, 연금·노동시장 제도 개편 등 시장자유화 성격의 경제정책을 추진함. 당시 침체와 재정 불안 속에서 성장 회복과 고용 확대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으나, 복지 지출 축소와 소득 불평등 심화 논쟁도 동반함. 2005년 8월 7일 가자지구 정착촌 철수 계획에 반대하며 내각 회의에서 재무장관직을 사임함.
1999년 5월 17일 총리 직선제에서 노동당의 에후드 바라크에게 패배한 뒤, 바라크 정부가 출범한 7월 6일 총리직에서 퇴임함. 재임 기간 연립정부의 불안정, 평화협상과 영토 양보를 둘러싼 우파·중도층 내부의 갈등, 경제·사회 현안에 대한 불만이 패배의 배경으로 작용함. 이후 리쿠드 대표직에서도 물러나 정계를 잠시 떠났으며, 2002년 외무장관으로 복귀할 때까지 민간 부문에서 활동함.
베냐민 네타냐후가 크네세트의 정부 승인 뒤 이스라엘 총리로 처음 취임함. 같은 해 5월 29일 치러진 이스라엘 최초의 총리 직선제에서 시몬 페레스를 근소한 차이로 꺾은 결과에 따른 취임. 이스라엘 건국 뒤 태어난 첫 총리이자, 당시 역대 최연소 총리로 기록됨. 이츠하크 라빈 암살 이후 격화된 안보·평화협정 논쟁 속에서 리쿠드 주도의 우파 연립정부가 출범한 것.
1992년 총선에서 리쿠드가 패배한 뒤 실시된 당 대표 경선에서 베냐민 네타냐후가 52.1%를 득표해 다비드 레비, 베니 베긴, 모셰 카차브를 제치고 대표로 선출됨. 이츠하크 샤미르 전 총리의 뒤를 이어 제1야당 리쿠드를 이끌며 야당 지도자로 부상함. 1996년 총선에서 총리직에 도전하는 정치적 기반을 마련한 전환점.
베냐민 네타냐후가 주유엔 이스라엘 상주대표로 부임해 1988년까지 재임함. 유엔 외교 무대와 미국 언론을 상대로 이스라엘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대변하며 국제적 인지도를 높임.
이스라엘 방위군이 우간다 엔테베 공항에서 납치 인질을 구출하는 작전을 수행함. 현장 강습부대를 지휘한 사예레트 마트칼 지휘관 요나탄 네타냐후 중령이 교전 중 사망했으며, 이스라엘군 측 유일의 전사자로 기록됨. 작전은 이후 그의 이름을 따 ‘요나탄 작전’으로도 불림.
역사학자이자 수정주의 시온주의 계열 지식인이었던 벤시온 네타냐후의 아들로 텔아비브에서 태어남. 어린 시절 예루살렘에서 성장했고, 부친의 연구·교직 활동을 따라 1950~1960년대 일부를 미국에서 보냄.
리사 쯔펑 수(Lisa Tzwu-Fang Su)가 1969년 11월 7일 대만 타이난에서 출생함. 세 살 무렵 부모와 함께 미국으로 이주해 뉴욕에서 성장함.
휘트니 필립스가 MIT Press에서 《This Is Why We Can't Have Nice Things: Mapping the Relationship between Online Trolling and Mainstream Culture》를 출간함. 책은 트롤링을 인터넷의 예외적 일탈이나 고립된 하위문화로만 보지 않고, 현대의 주류 미디어와 사회문화적 규범 안에서 작동하는 현상으로 분석함.
필립스는 트롤의 도발과 착취가 선정적 상업 미디어의 관심 경제와 분리되지 않는다고 주장함. 트롤에게 착취가 놀이와 여가 활동이라면, 미디어 기업에는 시청률·클릭·수익을 위한 전략이 될 수 있다는 대비를 제시함.
이 책은 트롤링을 개인의 악의나 플랫폼 이용자 문제에만 환원하지 않고, 젠더·권력·성공·특권에 관한 지배적 문화와 미디어 구조가 재생산되는 방식으로 해석한 주요 연구서로 평가됨.
정치학·종교학자 마크 브록웨이와 공저로 MIT 프레스를 통해 《그림자 복음: 반(反)진보적 악마화가 미국 종교·미디어·정치를 어떻게 사로잡았는가》 출간. 보수·복음주의 미디어 안에서 80년에 걸쳐 형성된 "진보적 악마" 형상의 준종교적 역사를 추적. 트롤링·미스정보를 넘어 우익 미디어 문화와 종교정치로 확장된 연구를 집약한 저작.
휘트니 필립스와 라이언 밀너가 MITeen 프레스를 통해 《공유는 더 잘, 스트레스는 덜: 소셜미디어를 생태적으로 사고하기 위한 안내서》를 출간함. 두 연구자의 첫 청소년 대상 저작으로, 소셜미디어를 개인 게시물의 집합이 아니라 서로 연결되고 영향을 주고받는 정보 생태계로 설명함.
책은 밈의 오용, 단체 채팅 갈등, 온라인 활동의 예상치 못한 부작용 등을 사례로 들어 정보 오염이 퍼지는 방식과 그 사회적 영향을 다룸. 독자가 자신의 게시·공유·반응이 타인과 디지털 환경에 미치는 결과를 함께 고려하도록 안내함.
트롤링·허위정보·미디어 윤리를 다뤄 온 기존 연구를 디지털 시민성과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의 언어로 확장한 저작. 안전하고 포용적인 온라인 환경을 만드는 책임을 개인의 정보 실천과 연결해 제시한 책.
휘트니 필립스가 시러큐스 대학교 커뮤니케이션·수사학 학부 조교수직을 떠나, 2022년 오리건 대학교 저널리즘·커뮤니케이션 학부에 디지털 플랫폼·윤리 조교수로 합류함. 오리건 대학교는 필립스가 2012년 영문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모교이기도 함.
온라인 트롤링, 허위정보, 음모론, 미디어 조작을 연구해 온 경력을 바탕으로 디지털 플랫폼의 공적 책임과 미디어 윤리를 가르치는 자리로 이동함. 연구 관심을 온라인 하위문화 분석에서 정보정치와 공론장의 윤리적 조건으로 확장해 온 흐름을 제도적으로 이어간 전환점.
이후 오리건 대학교에서 정보정치·미디어 윤리 부교수와 John L. Hulteng 미디어 윤리·책임 석좌를 맡게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