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와 소프트뱅크가 2022년 2월 8일 ARM 인수 계약을 종료한다고 발표함. 양사는 미국·영국·유럽연합 등 주요 경쟁당국의 심사 과정에서 거래 종결을 가로막는 중대한 규제상 난관이 발생했다고 설명함. 미국 연방거래위원회는 2021년 12월 엔비디아가 ARM의 핵심 반도체 설계 기술에 대한 통제력을 확보하면 경쟁을 제한할 수 있다며 거래 저지를 위한 행정소송을 제기했음. 거래 종료 후 소프트뱅크는 ARM의 기업공개 준비로 전략을 전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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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비디아·소프트뱅크, ARM 매각 합의 발표
엔비디아와 소프트뱅크가 2020년 9월 ARM을 최대 400억 달러에 엔비디아에 매각하는 최종 계약을 체결했다고 발표함. 거래가 성사될 경우 엔비디아는 GPU 중심 사업에 ARM의 CPU 설계·라이선스 생태계를 결합하게 되는 대형 반도체 인수였음. 그러나 ARM의 중립적 라이선스 사업 모델 훼손 가능성을 우려한 업계 반발과 각국 경쟁당국의 심사가 이어졌고, 양사는 2022년 2월 규제상 난관을 이유로 거래를 종료함.
위워크가 기업공개 계획을 철회하고 유동성 위기에 빠지자, 소프트뱅크가 2019년 10월 23일 최대 95억 달러 규모의 자금지원 계획을 발표함. 패키지는 신규 자금조달 50억 달러, 기존 15억 달러 출자 약정의 조기 집행, 기존 주주 지분 최대 30억 달러 공개매수로 구성됨. 거래는 소프트뱅크가 위워크의 약 80% 지분을 확보하는 구조였으나, 이후 공개매수는 2020년 취소됨. 위워크 사태는 비전 펀드식 고평가·대규모 자금 투입 전략의 위험을 드러낸 대표적 사건으로 남음.
소프트뱅크가 2019년 7월 26일 인공지능 분야의 성장기업 투자를 목표로 하는 소프트뱅크 비전 펀드 2 조성 계획을 발표함. 소프트뱅크는 최대 1,080억 달러 규모를 제시하고, 애플·마이크로소프트·폭스콘·미즈호은행 등과 참여를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고 밝힘. 다만 1호 펀드의 핵심 출자자였던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와 아부다비 무바달라는 참여 명단에 포함되지 않았고, 위워크 사태 이후 외부 자금 유치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서 비전 펀드 2는 소프트뱅크 자체 자금 중심의 투자 펀드로 운영됨.
소프트뱅크 비전 펀드, 쿠팡에 20억 달러 투자
소프트뱅크 비전 펀드가 2018년 11월 20일 쿠팡에 20억 달러를 투자함. 쿠팡은 신주를 발행해 자금을 조달했으며, 보도에 따르면 거래 후 기업가치는 약 90억 달러로 평가됨. 대규모 투자금은 로켓배송과 물류센터 확장, 배송 서비스 고도화에 투입될 기반이 되었고, 쿠팡이 적자를 감수하며 물류 중심 성장 전략을 지속할 수 있게 한 핵심 자본 조달 사례가 됨.
소프트뱅크 비전 펀드, 930억 달러 이상 첫 대규모 클로징
소프트뱅크 그룹이 2017년 5월 22일 소프트뱅크 비전 펀드의 첫 대규모 클로징을 완료하고, 930억 달러 이상의 약정 자본을 확보했다고 발표함.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PIF), 아부다비 무바달라, 애플, 폭스콘, 퀄컴, 샤프 등이 출자자로 참여했으며, 소프트뱅크 그룹의 최대 약정액은 현물출자를 포함해 280억 달러였음. 대형 기술기업과 성장기업에 장기 자본을 집중 투자하는 세계 최대급 기술 투자 펀드의 출범으로, 소프트뱅크가 통신·지주회사에서 글로벌 기술 투자 그룹으로 전환하는 핵심 계기가 됨.
소프트뱅크, ARM 인수 합의 발표
소프트뱅크가 2016년 7월 18일 영국 반도체 설계 기업 ARM 홀딩스를 약 243억 파운드에 인수하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함. 이는 당시 일본 기업의 해외 인수 가운데 최대급 거래였으며, 소프트뱅크는 9월 5일 인수를 완료해 ARM을 비상장 자회사로 편입함. 스마트폰 중심의 ARM 설계 생태계를 사물인터넷·인공지능·차세대 컴퓨팅 시대의 핵심 기반으로 본 손정의의 전략적 베팅으로 평가됨.
소프트뱅크, 쿠팡에 10억 달러 투자 발표
소프트뱅크가 2015년 6월 3일 쿠팡에 10억 달러를 투자하기로 최종 계약을 체결했다고 발표함. 당시 쿠팡은 로켓배송과 물류 인프라 확대를 위해 대규모 적자를 감수하던 시기였으며, 이 투자는 그 확장 전략에 장기 자금을 공급한 거래였음. 소프트뱅크는 2018년 기존 지분을 비전펀드로 넘긴 뒤, 비전펀드를 통해 쿠팡에 추가로 20억 달러를 투자함.
소프트뱅크, 스프린트 인수 완료
소프트뱅크가 2013년 7월 스프린트 인수를 완료하고, 약 216억 달러를 투자해 신설 스프린트 법인의 약 78% 지분을 확보함. 이 거래로 스프린트는 소프트뱅크의 자회사가 되었고, 손정의는 스프린트 이사회 의장을 맡음. 일본 이동통신 시장을 넘어 미국 통신 시장에 직접 진출한 대형 인수로, 소프트뱅크의 글로벌 통신 사업 확장을 상징하는 사건.
소프트뱅크, 보다폰 재팬 인수 완료
소프트뱅크가 2006년 4월 27일 보다폰 재팬 인수를 완료하며 이동통신 사업에 본격 진입함. 거래의 지분가치는 1조 7,500억 엔, 전체 거래 규모는 약 2조 5,000억 엔으로 당시 일본 기업 인수 가운데 최대급으로 평가됨. 소프트뱅크는 같은 해 10월 회사를 소프트뱅크 모바일로 바꾸고, 2008년 아이폰의 일본 최초 출시 사업자로 나서며 통신 사업을 그룹의 핵심 현금창출 기반으로 키움.
소프트뱅크, 알리바바에 2천만 달러 투자
소프트뱅크가 창업 초기의 중국 전자상거래 기업 알리바바에 2천만 달러를 투자함. 손정의가 잭 마(마윈)와의 짧은 면담 뒤 투자를 결정했다는 일화로 널리 알려진 거래이며, 소프트뱅크의 초기 중국 인터넷 투자 전략을 상징함. 이 지분은 2014년 알리바바의 뉴욕증시 상장을 거치며 막대한 가치로 성장해, 소프트뱅크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투자 사례로 평가됨.
소프트뱅크와 미국 야후가 1996년 1월 31일 합작법인 야후 재팬을 설립함. 같은 해 4월 일본어 포털 서비스 ‘Yahoo! JAPAN’을 출시하며 검색·뉴스·전자상거래 등을 묶는 일본 인터넷 관문 사업에 진입함. 이는 소프트뱅크가 소프트웨어 유통 중심 기업에서 인터넷 사업과 플랫폼 투자 기업으로 전환하는 초기 분기점이 됨.
소프트뱅크, 도쿄증권거래소 1부 상장
소프트뱅크가 1998년 1월 16일 도쿄증권거래소 1부에서 거래를 시작함. 일본 장외시장 공개 기업이 2부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1부에 상장한 이례적 사례로, 회사의 성장성과 인터넷·미디어 사업 확장 전략에 대한 시장의 기대를 반영함. 상장을 계기로 소프트뱅크는 미국 미디어·인터넷 기업 투자와 인수를 가속하며 기술 투자 그룹으로의 전환을 본격화함.
소프트뱅크, 일본 장외시장 공개
소프트뱅크가 1994년 7월 일본 장외시장에 주식을 공개함. 상장을 통해 조달한 자본시장 접근성을 바탕으로 미국 미디어·기술 기업 인수와 인터넷 사업 진출을 본격화할 기반을 마련함. 이후 1998년 도쿄증권거래소 1부에 상장하며 소프트웨어 유통기업에서 인터넷·투자 기업으로의 전환을 가속함.
손정의, 소프트뱅크 창업
손정의가 1981년 9월 일본에서 니혼 소프트뱅크를 설립하고, PC용 패키지 소프트웨어의 전국 유통 사업을 시작함. 회사명은 정보화 사회의 기반이 될 ‘소프트웨어의 은행’을 지향한다는 뜻에서 붙여짐. 이후 소프트뱅크는 출판·인터넷·통신을 거쳐 대규모 기술 투자 그룹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는 출발점을 마련함.
후먼 조약 체결, 영국에 최혜국 대우·치외법권 부여
1843년 10월 8일 영국 전권대표 헨리 포팅거와 청나라 전권대신 기영이 광둥성 후먼에서 난징 조약의 후속 협정인 후먼 조약을 체결함. 조약은 영국인의 범죄와 민사 분쟁을 영국 영사·영국 법률에 따라 처리하는 치외법권을 인정하고, 청나라가 이후 다른 국가에 부여하는 특권을 영국에도 적용하는 최혜국 대우 조항을 둠. 또한 조약항에서의 영국인 거주·통상 조건과 영국 군함의 정박 범위를 구체화함. 이 협정은 난징 조약으로 열린 조약 체제를 법률·외교적으로 확장했고, 이후 미국·프랑스 등 서구 열강이 유사한 특권을 요구하는 선례가 됨.
1842년 8월 29일 영국 전권대표 헨리 포팅거와 청나라 전권대신 기영·이리포·우건이 난징 앞 양쯔강에 정박한 영국 군함 콘월리스호에서 난징 조약에 서명함. 청나라는 홍콩섬을 영국에 할양하고, 광저우·샤먼·푸저우·닝보·상하이의 다섯 항구를 개항했으며, 아편 몰수·광저우 몸값·상인 채무·전쟁 비용 명목으로 모두 2,100만 은달러를 배상하기로 함. 또한 광저우 공행의 무역 독점이 폐지되고, 관세는 양국이 협의해 정하도록 규정됨. 이 조약은 1차 아편 전쟁을 종결한 중국 최초의 불평등조약으로 평가되며, 이후 호문 조약 등을 통해 치외법권과 최혜국 대우가 추가되면서 청의 대외 질서가 본격적으로 재편됨.
1842년 7월 21일 영국군이 양쯔강과 대운하가 만나는 전략 거점 전장을 공격해 점령함. 만주·몽골 팔기군이 성문과 시가지에서 강하게 저항했고, 성이 함락된 뒤 일부 수비대와 가족들은 포로가 되지 않기 위해 자결함. 영국군 역시 전쟁 중 가장 큰 전투 손실을 입었으나, 전장을 장악하며 대운하 남단과 세곡 수송 체계를 위협하게 됨. 이 패배는 청 조정이 난징에서 강화 협상에 나서도록 압박한 마지막 대규모 전투로 평가됨.
헨리 포팅거가 지휘한 영국 원정군이 1842년 6월 16일 황푸강 하구의 우쑹 포대를 공격해 함락하고, 바오산을 점령함. 청군 지휘관 진화성은 포대 방어 중 전사했고, 영국군은 이 승리로 상하이로 향하는 수로를 확보함. 6월 19일 청군의 저항이 약한 가운데 상하이를 점령하면서, 영국은 양쯔강 하구의 핵심 무역·수운 거점을 장악함. 이후 영국군은 양쯔강을 거슬러 올라가 전장과 대운하를 위협하며 청 조정의 재정과 곡물 운송 체계에 압박을 가함.
도광제의 종실 이경이 이끄는 청군이 영국 점령하의 닝보를 탈환하려고 야간 공격을 감행함. 영국 수비대는 성문과 시가지의 방어 거점에서 소총·포병 사격으로 청군을 격퇴했으며, 청군은 큰 피해를 입고 후퇴함. 저장성 연안의 점령지를 되찾으려 한 청 조정의 대규모 반격이 실패하면서, 영국군은 닝보와 인근 거점에 대한 통제력을 유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