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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중앙지법은 12·3 비상계엄 해제 직후 열린 이른바 ‘안가 회동’에서 계엄 관련 논의가 없었다는 취지로 국회에서 허위 증언한 혐의로 기소된 이완규 전 법제처장에 대해 공소기각 판결함. 재판부는 혐의의 유무죄를 판단하지 않고, 특검의 해당 혐의 수사 및 기소 권한에 문제가 있다고 보아 절차상 재판을 종결함.

혐의 판단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33부(재판장 이진관 부장판사)는 박성재 전 법무부장관이 12·3 비상계엄 당시 계엄사 합동수사본부 검사 파견 협조, 교정시설 수용 여력 점검, 출국금지 담당 인력 대기 등을 지시해 내란에 가담한 혐의를 유죄로 인정함. 재판부는 국헌문란 목적과 위법성 인식이 있었다고 판단했으며, 증거인멸 우려를 이유로 법정구속함. 특검 구형량인 징역 20년보다 5년 무거운 형량임.

단,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공소기각 판결.

혐의 판단

2023-01-25 milestone 이용자 1억 명을 돌파한 플랫폼

깃허브, 개발자 1억 명 돌파 발표

깃허브가 전 세계에서 플랫폼을 사용하는 개발자가 1억 명을 넘어섰다고 발표함. 2008년 공개 출시 이후 오픈소스와 기업 개발을 아우르는 세계적 소프트웨어 협업 기반으로 성장했음을 보여주는 이용자 규모의 이정표가 됨.

2021-06-29 release 제품을 공개한 개발 플랫폼

깃허브, 코파일럿 기술 미리보기 공개

깃허브가 오픈AI와 공동 개발한 인공지능 코딩 도구 깃허브 코파일럿을 제한된 기술 미리보기로 공개함. 작업 중인 코드의 맥락을 바탕으로 코드 줄과 함수를 제안하는 기능을 선보이며 플랫폼의 중심 영역을 저장소 협업에서 인공지능 기반 개발 지원으로 확장함.

깃허브가 모든 활성 공개 저장소와 일정 기준을 충족한 주요 저장소의 스냅샷을 생성함. 약 21테라바이트의 데이터를 186개 필름 릴로 기록해 스발바르의 북극 세계 기록 보관소에 옮김으로써 오픈소스 코드를 장기간 보존하는 아카이브를 구축함.

깃허브 공개 코드를 보존한 플랫폼

2019년 12월 18일 이세돌이 NHN이 개발한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 한돌과 세 판의 은퇴 대국을 치름. 두 점을 깔고 둔 제1국에서 이세돌이 불계승했으나, 제2국과 제3국을 한돌이 가져가 최종 한돌 2-1로 마무리. 이 대국을 끝으로 이세돌은 기사로서의 공식 활동을 마침.

이세돌

2019년 11월 19일 이세돌이 "인공지능은 이길 수 없는 존재"라며 프로 바둑 은퇴를 선언함. 한국기원에 사직서를 제출했으며, 최고가 되어도 이길 수 없는 상대가 있다는 점을 은퇴 이유로 밝힘. 알파고와의 대국 이후 인공지능 시대 프로 기사의 위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결정.

이세돌

딥마인드의 바둑 인공지능 알파고가 2016년 3월 서울에서 열린 다섯 번기 대국에서 세계 정상급 기사 이세돌을 4승 1패로 꺾음. 경우의 수가 방대해 정복이 어렵다고 여겨지던 바둑에서 인간 최고수를 이긴 첫 사례로, 이세돌은 네 번째 대국에서 인간으로서 유일한 한 판을 거둠. 인공지능의 가능성을 대중에게 각인시킨 상징적 사건.

이세돌 대국한 기사 구글 딥마인드 개발사

2016년 3월 13일 알파고와의 다섯 번기 제4국에서, 백 78수로 둔 이른바 "신의 한 수"로 판세를 뒤집어 불계승을 거둠. 구리 9단이 "신의 한 수"라 평한 이 수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급소로, 인간이 알파고를 상대로 거둔 유일한 공식 승리로 기록됨. 다섯 번기는 알파고의 4-1 승리로 끝났으나 이 1승은 인공지능 시대 인간 지성의 상징으로 남음.

이세돌 구글 딥마인드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바둑 남자 단체전에서 한국 국가대표로 출전해 금메달을 획득함. 바둑이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이 대회에서 강동윤·박정환·이창호·조한승·최철한 등과 함께 팀을 이뤄 우승. 국가대표로서 거둔 국제 종합대회 성취.

2003년 7월 7일 제16회 후지쯔배에서 우승하며 9단으로 승단함. 같은 해 한국기원의 승단 규칙 개정에 힘입어 8단을 건너뛰는 등 유례없는 속도로 최고단에 도달. 입단 8년 만에 바둑 기사 최고 단위에 오른 초고속 승단의 정점.

이세돌

2003년 4월 23일 KAT배에서 홍창식과의 대국 중, 통상 초보의 실수로 여겨지는 끊어진 사다리(broken ladder) 형태를 흑으로 감행함. 정석을 거스른 이 수로 우하변에서 백의 대마를 잡아 죽은 것으로 보였던 귀의 돌을 살려냈고 백이 결국 돌을 던짐. 변칙과 수읽기 싸움을 즐기는 "센돌"의 기풍을 상징하는 명국.

2002년 3단의 신분으로 후지쯔배 세계바둑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하며 첫 세계대회 제패를 달성함. 1992년 이창호가 동양증권배 우승 당시 세운 최저단(5단) 세계대회 제패 기록을 경신한 사건. 단위에 얽매이지 않는 실력으로 세계 정상급 기사임을 입증한 도약대.

1999년 3단 승단 이후 본격적으로 활약하며, 2000년 32연승의 대기록을 세우고 최우수기사상, 최다승 기록상, 연승 기록상 3부문 수상함. 입단 초기의 부진을 딛고 국내 정상급 기사로 도약한 전환점. 이후 폭발적인 승률로 한국 바둑의 차세대 주역으로 부상.

1995년 7월 만 12세 4개월의 나이로 한국기원 입단 시험을 통과해 프로 1단이 됨. 조훈현·이창호·조혜연·최철한에 이은 역대 5번째 최연소 입단 기록. 비금도 출신의 어린 기사가 한국 바둑계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인 출발점.

이세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