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과 잡지 《새명동》 제작
친구들과 함께 등사판 잡지 《새명동》을 만들며 글을 쓰고 나누는 활동에 참여한 소년 윤동주. 정식 문단 등단보다 앞선 자발적인 문학 활동으로, 시인이 되기 전부터 읽기와 창작을 생활 속에서 실천한 사례.
친구들과 함께 등사판 잡지 《새명동》을 만들며 글을 쓰고 나누는 활동에 참여한 소년 윤동주. 정식 문단 등단보다 앞선 자발적인 문학 활동으로, 시인이 되기 전부터 읽기와 창작을 생활 속에서 실천한 사례.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과를 졸업하고 조선총독부 건축 부문의 기수로 근무를 시작한 해. 도면과 수치, 근대적 건물의 공간을 다루는 전문 교육을 받은 작가라는 점을 보여 주는 이력. 이후 시에 등장하는 기하학적 표현과 시각적 배치를 살펴볼 때 참고할 배경이지만, 모든 표현을 건축 경력의 직접적 결과로 단정할 수는 없는 관계.
회동서관에서 김명순의 두 번째 창작집 『애인의 선물』을 출간.
국회도서관은 원본 발행 연도를 [1929]로 기재. 원본의 판권 부분이 소실되어, 복원본 출판사도 당시 문예지 광고 등을 근거로 출간 시기를 1929년경으로 추정.
송명희의 연구는 1928~1929년으로 추정하고, 한국문학번역원 한국어 서지는 출판 연도를 불명으로 기재
김명순이 소설 「모르는 사람같이」를 발표.
소문으로 고통받는 여성 인물 순실을 중심에 놓은 작품. 송명희는 이 소설을 여성을 둘러싼 소문과 그에 휘둘리는 남성의 태도에 대한 비판으로 해석
오펜하이머가 UC 버클리와 캘리포니아 공과대학교에서 교수 활동을 시작함. 두 학교를 오가며 연구·교육을 이어가고 젊은 이론물리학자와 대학원생들을 모아, 특히 버클리를 미국 이론물리학의 주요 연구 거점으로 성장시키는 데 기여함.
1929년 미국 은행가 오언 D. 영이 이끄는 전문가 위원회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 배상금의 상환 조건을 재조정하는 영 플랜을 마련. 헤이그 회의의 배상금 문제 협의 과정에서 지급·관리를 담당할 국제은행 설립도 구상.
독일의 전쟁배상금 처리를 위한 기구이면서 주요 중앙은행의 정례 협력을 위한 회의체로 출범하게 된 BIS 설립의 직접적인 배경.
1929년 주가 대폭락 이후 은행 파산과 통화수축이 확산되는 동안 연방준비제도가 지역 연방준비은행 사이의 정책 견해 차이와 당시의 통화정책 체계 아래 충분한 유동성 공급에 나서지 못함. 대공황기의 경험은 연준의 정책 운영과 조직구조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졌으며, 이후 1935년 은행법을 통한 통화정책 의사결정 구조 재편의 배경 가운데 하나가 됨.
건축 전문지 《조선과건축》의 표지 도안 공모에서 1등과 3등에 입상한 일. 직장 생활과 함께 시각예술 분야에서도 재능을 드러낸 사례. 훗날 문학 활동만으로 알려진 이상을 그림과 디자인에도 관여한 창작자로 이해할 수 있게 하는 초기 기록.
경상북도 달성군에서 1남 2녀 중 막내로 출생. 어린 시절 부친을 잃고 가난 때문에 학교에 다니지 못했으며, 일제 말에는 방직공장 강제노역을 경험함.
진명 학생들이 광주학생운동에 호응하여 항일행동과 동맹휴학에 참여. 배화·중앙보육·정신 등 서울 여러 학교의 학생들도 광주 학생 지원과 일제 규탄에 동참
학생운동의 확산을 막으려는 식민 당국이 같은 날 조기 겨울방학 조치. 시위와 동맹휴학을 억제하기 위해 학교 수업을 앞당겨 중단
신간회가 광주학생운동을 전국적 민중운동으로 확대하기 위해 서울 안국동에서 민중대회를 열기로 했으나, 대회 개최 약 6시간 전 일제 경찰이 신간회 본부를 포위해 준비 중이던 조병옥 등 신간회 회원과 관련 단체 인사들을 대거 검거함.
뉴욕 현대미술관(MoMA)이 1929년 11월 7일부터 12월 7일까지 세잔·고갱·쇠라·반 고흐를 다룬 첫 기획전 《Cézanne, Gauguin, Seurat, van Gogh》를 개최함. 유럽 후기인상주의 미술을 뉴욕의 대중에게 소개하면서 근현대미술 전문 미술관의 방향성을 제시함. MoMA의 공식 전시 아카이브가 명시한 시작일은 11월 7일이며, 미술관 설립(1929년 6월)과는 별개의 사건임. 일반 관람 개시일은 MoMA의 기념 자료들에서 11월 7일과 8일로 혼재해 구별해 설명해야 함.
1929년 11월 3일 광주에서 조선인 학생들이 일제의 차별적 교육과 10월 30일 나주역 충돌 사건에 대한 편파적 대응에 항의하며 대규모 가두시위를 전개함. 시위는 광주를 넘어 전국으로 확산되며 3·1운동 이후 주요 항일 학생운동으로 발전함. 나주역 사건과 광주 시위 시작, 이후 전국 확산의 단계를 구분해 기록함.
버지니아 울프가 《자기만의 방》에서 여성 작가의 창작 조건과 문학적 계보를 논하면서 제인 오스틴을 중요한 선배 작가로 다룸. 후대 연구에서는 울프가 가족 전기에서 형성된 온순한 작가 이미지를 넘어 오스틴을 풍자적이고 비판적인 여성 작가이자 모더니즘의 선행자로 다시 읽은 과정으로 평가함.
한글날 기념식에서 100여 명에 이르는 각계 인사의 발기로 조선어사전편찬회를 조직하고 우리말 사전 편찬에 착수함. 신명균·이극로·이윤재·이중화·최현배가 집행위원으로, 이극로·이윤재·한징 등이 편찬원으로 선정됨. 28년 뒤 『큰사전』 완간으로 결실을 맺는 대장정의 출발점.
1929년 10월 29일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에서 대규모 투매가 발생해 약 1,640만 주가 거래되고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가 하루 만에 약 12% 하락함. 전날 블랙 먼데이에 이어 주가 폭락이 계속된 ‘검은 화요일’로, 1929년 주식시장 붕괴와 이후 세계 대공황으로 이어지는 금융 불안의 상징적 사건임. 1929년 가을의 주가 급락은 대공황 악화의 중요한 계기였지만 은행 위기, 통화 긴축, 국제 금본위제와 무역 위축 등 다른 원인도 함께 고려해야 함.
1929년 10월 28일 뉴욕 주식시장에서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가 하루 만에 약 12.8% 떨어진 이른바 ‘블랙 먼데이’ 발생. 나흘 전 검은 목요일 이후 가라앉지 않은 매도 압력이 다시 급증했고, 다음 날 검은 화요일에도 폭락이 이어짐. 미국의 증권시장 붕괴가 금융·경제 전반의 위기로 심화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사건이며, 이후 세계 대공황과 연결되는 역사적 전환점임. 다만 대공황의 발생 원인을 이날의 주가 하락 하나로 환원할 수는 없음.
1929년 10월 24일 뉴욕 주식시장에서 대규모 매도 주문이 몰리며 주가가 급락. 주요 금융인들의 매수 개입으로 당일 낙폭이 일부 회복됐지만, 10월 28~29일 추가 폭락이 이어졌음. 이날의 주식시장 혼란과 이후 전개된 세계 대공황은 구분해야 함.
경성과 평양의 대표 선수들이 경성 휘문고보 운동장에서 첫 경평축구대항전을 벌였음. 조선일보가 주최한 대회는 10월 8일부터 10일까지 세 경기로 진행되었고, 평양 대표팀이 2승 1무를 기록했음.
당시의 대표팀은 1933년에 정식 창단되는 경성축구단·평양축구단과 구분할 필요가 있음. 학교와 민간 축구단에서 모인 선수들의 대결이 도시 전체의 관심사로 커지면서, 경평전은 근대적인 관람 스포츠와 도시 라이벌 문화의 상징이 되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