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돌프 삭스, 색소폰 특허 출원
아돌프 삭스가 프랑스에서 ‘색소폰이라 부르는 관악기 체계’의 특허를 출원. 프랑스 산업재산권청(INPI)이 보관하는 기록 번호는 1BB3226. 하나의 악기뿐 아니라 서로 다른 음역을 맡는 악기군을 설계한 점이 특징. 해당 날짜는 특허를 신청한 날로, 허가일과 구분.
아돌프 삭스가 프랑스에서 ‘색소폰이라 부르는 관악기 체계’의 특허를 출원. 프랑스 산업재산권청(INPI)이 보관하는 기록 번호는 1BB3226. 하나의 악기뿐 아니라 서로 다른 음역을 맡는 악기군을 설계한 점이 특징. 해당 날짜는 특허를 신청한 날로, 허가일과 구분.
바위스 발로트가 위트레흐트와 마르선 사이의 철도에서 실험을 진행함. 열차와 승강장에 연주자와 청각이 좋은 관측자를 배치해, 음원이나 관측자가 움직일 때 음높이가 달라지는지 비교했음. 천체의 빛에서 출발한 제안을 사람이 직접 들을 수 있는 소리로 검증한 사례였음.
러시아의 생물학자, 세균학자 엘리 메치니코프. (~1916년)
프랑스의 작곡가, 오르가니스트, 피아니스트 가브리엘 포레. (~1924년)
웰스가 보스턴에서 아산화질소를 이용한 발치 마취를 공개적으로 보여 주려 했으나, 환자가 소리를 내면서 청중은 시연이 실패했다고 받아들였음. 환자가 경험한 통증과 이를 지켜본 청중의 판단이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을 수 있음을 보여 준 사례였음.
이는 웰스의 앞선 성과 전체를 부정하는 증거라기보다 당시 투여 방법과 효과 판정의 어려움을 드러낸 사건으로 볼 수 있음. 이 경험은 이듬해 모턴의 시연이 넘어야 했던 불신의 배경이 되었음.
호러스 웰스가 아산화질소를 흡입한 상태에서 자신의 치아를 뽑도록 하여 통증 완화 효과를 확인함. 전날 기체 시연에서 다친 참가자가 통증을 느끼지 않는 모습을 관찰한 데서 착안한 실험이었음.
오락적 기체 시연에서 얻은 관찰을 치과 치료에 적용한 사례로, 이후 보스턴에서 마취 효과를 공개적으로 보여 주려는 시도로 이어졌음.
프랑스의 화가 앙리 루소. (~1910년)
송만재가 당시의 연희를 시로 서술한 「관우희」에 열두 바탕을 기록. 오늘날 전승되는 다섯 바탕 외에도 변강쇠타령·배비장타령 등 여러 작품이 존재했음을 보여 주는 자료.
1843년 10월 8일 영국 전권대표 헨리 포팅거와 청나라 전권대신 기영이 광둥성 후먼에서 난징 조약의 후속 협정인 후먼 조약을 체결함. 조약은 영국인의 범죄와 민사 분쟁을 영국 영사·영국 법률에 따라 처리하는 치외법권을 인정하고, 청나라가 이후 다른 국가에 부여하는 특권을 영국에도 적용하는 최혜국 대우 조항을 둠. 또한 조약항에서의 영국인 거주·통상 조건과 영국 군함의 정박 범위를 구체화함. 이 협정은 난징 조약으로 열린 조약 체제를 법률·외교적으로 확장했고, 이후 미국·프랑스 등 서구 열강이 유사한 특권을 요구하는 선례가 됨.
노르웨이의 작곡가 겸 피아노 연주자 에드바르 그리그. (~1907년)
오스트리아의 소설가 겸 급진적 평화주의자 베르타 폰 주트너. (~1914년)
러시아의 과학자 클리멘트 티미랴제프. (~1920년)
미국의 지형학자 그로브 칼 길버트. (~1918년)
조각가 로렌초 바르톨리니가 《다비드》를 실내로 옮기자는 의견을 제시함. 광장의 역사적 자리를 유지하는 일과 대리석 원작을 장기적으로 보호하는 일 사이에서 선택이 필요하다는 문제를 제기한 것임.
실제 이전까지는 수십 년이 더 걸렸음. 이 제안은 1873년의 이전이 갑자기 결정된 일이 아니라 오랫동안 이어진 보존 논쟁의 결과였음을 보여 줌.
1842년 8월 29일 영국 전권대표 헨리 포팅거와 청나라 전권대신 기영·이리포·우건이 난징 앞 양쯔강에 정박한 영국 군함 콘월리스호에서 난징 조약에 서명함. 청나라는 홍콩섬을 영국에 할양하고, 광저우·샤먼·푸저우·닝보·상하이의 다섯 항구를 개항했으며, 아편 몰수·광저우 몸값·상인 채무·전쟁 비용 명목으로 모두 2,100만 은달러를 배상하기로 함. 또한 광저우 공행의 무역 독점이 폐지되고, 관세는 양국이 협의해 정하도록 규정됨. 이 조약은 1차 아편 전쟁을 종결한 중국 최초의 불평등조약으로 평가되며, 이후 호문 조약 등을 통해 치외법권과 최혜국 대우가 추가되면서 청의 대외 질서가 본격적으로 재편됨.
1842년 7월 21일 영국군이 양쯔강과 대운하가 만나는 전략 거점 전장을 공격해 점령함. 만주·몽골 팔기군이 성문과 시가지에서 강하게 저항했고, 성이 함락된 뒤 일부 수비대와 가족들은 포로가 되지 않기 위해 자결함. 영국군 역시 전쟁 중 가장 큰 전투 손실을 입었으나, 전장을 장악하며 대운하 남단과 세곡 수송 체계를 위협하게 됨. 이 패배는 청 조정이 난징에서 강화 협상에 나서도록 압박한 마지막 대규모 전투로 평가됨.
헨리 포팅거가 지휘한 영국 원정군이 1842년 6월 16일 황푸강 하구의 우쑹 포대를 공격해 함락하고, 바오산을 점령함. 청군 지휘관 진화성은 포대 방어 중 전사했고, 영국군은 이 승리로 상하이로 향하는 수로를 확보함. 6월 19일 청군의 저항이 약한 가운데 상하이를 점령하면서, 영국은 양쯔강 하구의 핵심 무역·수운 거점을 장악함. 이후 영국군은 양쯔강을 거슬러 올라가 전장과 대운하를 위협하며 청 조정의 재정과 곡물 운송 체계에 압박을 가함.
크리스티안 도플러가 프라하의 왕립 보헤미아 학술협회에서 쌍성의 빛을 주제로 강연하며, 파동원과 관측자의 상대 운동이 관측 주파수에 영향을 준다는 생각을 제시함. 별의 색을 설명하려던 초기 문제의식과, 뒤에 정교하게 검증된 도플러 효과 자체는 구별해서 이해할 필요가 있음.
프랑스의 오페라 작곡가 쥘 마스네. (~1912년)
크로퍼드 롱이 미국 조지아주에서 제임스 베너블의 목 부위 병변을 수술하며 에테르를 사용함. 1846년 보스턴 공개 시연보다 앞서 수술 마취에 에테르를 적용한 중요한 선례였음.
다만 롱은 이 경험을 뒤늦게 학술적으로 발표했음. 따라서 에테르를 수술에 먼저 사용한 공로와 공개 시연을 통해 널리 알린 공로는 구분해서 평가할 필요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