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롤루스 대제가 로마에 머무르던 중 레오 3세가 자신에게 제기된 혐의를 부인하는 정화 선서를 함. 교황을 누가 심판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 속에서 택한 중세적 분쟁 해결 방식으로, 현대 형사재판의 증거 심리와 동일한 절차는 아님.
교황 레오 3세, 카롤루스 대제를 로마 황제로 대관
800년 성탄절 로마의 옛 성 베드로 성당에서 레오 3세가 프랑크 왕 카롤루스 대제에게 황제관을 씌움. 서방의 로마 황제 칭호를 되살리고 교황과 프랑크 군주의 협력을 드러낸 사건임. 교황이 군주를 보호자로 필요로 했다는 현실도 배경이었으며, 후대 신성 로마 제국의 역사를 이 날짜 하나로 단순화하기는 어려움.
레오 3세가 황제 대관식 뒤 다시 알프스를 넘어 카롤루스 대제를 만남. 두 권력의 협력이 대관식 한 번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접촉을 통해 이어졌음을 보여 줌. 방문의 세부 목적에 대해서는 전승과 해석에 차이가 있음.
809년 11월 아헨 공의회가 필리오케의 신경 삽입을 지지한 뒤, 프랑크 측 사절이 810년 1월 로마에서 교황과 논의함. 레오 3세는 성령의 발출에 관한 서방의 교리적 설명을 인정하면서도 신경 본문을 변경하는 데 반대함. 신학적 설명에 대한 동의와 공통 신경의 문구를 바꿀 권한이 서로 다른 문제였음을 보여 줌.
레오 3세가 사망하면서 795년부터 이어진 재위가 끝남. 성 베드로 성당에 묻혔으며, 황제 대관과 교회 후원을 통해 남긴 유산은 중세 교황권과 서유럽 정치 질서를 이해하는 중요한 사례가 됨.
닌묘 천황 사망
일본의 54대 천황 닌묘 천황. (808년~)
프랑크 왕국의 왕 루이 2세. (846년~)
제111대의 교황 교황 포르모소. (816년~)
보리스 1세 사망
제1차 불가리아 제국의 군주 보리스 1세. (?~)
미나모토노 미쓰나카 출생
헤이안 시대 중기의 무장 미나모토노 미쓰나카. (~997년)
후고구려의 군주 궁예. (869년~)
일본 헤이안 시대의 귀족, 시인 후지와라노 아쓰타다. (906년~)
웨섹스 왕가 잉글랜드의 제9대 왕 에드먼드 1세. (922년~)
중국 후당의 정치인 풍도. (882년~)
후주(後周)에서 귀화한 쌍기(雙冀)의 건의를 받아들여, 호족 세력을 약화시키고 능력 중심의 인재를 등용해 왕권을 강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도입. 제술업(문학), 명경업(유교 경전), 잡업(기술직)으로 나누어 선발했으나, 당시에는 문신을 선발하는 제술업이 중시.
페르시아계 무슬림 천문학자 압드 알라흐만 알수피. (903년~)
카롤링거 왕조의 마지막 프랑스 왕 루도비쿠스 5세 이네르스. (967년~)
일본 헤이안 시대의 귀족 겸 정치인 후지와라노 미치타카. (953년~)
포증 출생
송나라의 관료, 범관 포증. (~106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