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성배(건진법사), 김건희에게 그라프 목걸이 줬다가 돌려받았다고 인정
서울중앙지법 형사33부(재판장 이진관) 심리로 열린 첫 공판에서 전성배 측은 그라프 목걸이 전달 사실 인정. 김건희 측은 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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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중앙지법 형사33부(재판장 이진관) 심리로 열린 첫 공판에서 전성배 측은 그라프 목걸이 전달 사실 인정. 김건희 측은 부인.
대법원은 2021년 10월 14일 텔레그램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의 상고를 기각하고 징역 42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함. 신상정보 공개·고지와 관련 기관 취업제한 10년,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 30년 등의 명령도 함께 확정됨.
대법원은 성착취물 제작·유포를 위해 역할을 분담하고 내부 규율을 갖춘 박사방을 범죄집단으로 인정하고 조주빈의 범죄단체조직 혐의를 유죄로 판단함. 박사방 운영과 조직적 디지털 성착취 범죄에 대한 조주빈의 형사책임이 최종 확정됨.
샘 닐이 2019년 뉴질랜드 배우조합(Equity New Zealand) 평생공로상을 수상함. 뉴질랜드 배우들의 추천을 바탕으로 선정되는 상으로 배우와 작가, 제작자, 감독으로 이어온 오랜 활동을 함께 인정받음. 수상 과정에서는 국제적인 배우 경력뿐 아니라 동료 배우들에게 보여준 리더십과 멘토링, 뉴질랜드 공연예술계와 영화산업에 대한 기여도 평가됨.
1970년대 뉴질랜드 영화산업이 성장하던 시기부터 국제 영화와 TV에서 활동하면서도 뉴질랜드 영화계와 지속적으로 관계를 유지해온 샘 닐의 경력을 동료 영화인들이 공식적으로 평가한 생애 후반의 주요 영예임.
유타 주립대학교에 어니타 사키시안의 강연 참석자와 여성학 관련 구성원을 겨냥한 대량살상 협박 이메일이 전달됨. 발신자는 반자동 소총·권총·파이프 폭탄을 보유했다고 주장하며, 강연이 열리면 미국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학교 총격을 벌이겠다고 위협함.
대학은 경비 인력 증원과 행사장 수색 등을 준비했으나, 유타주 총기법상 합법적 은닉휴대 허가자의 무기 반입을 일괄적으로 막기 어렵다고 설명함. 사키시안은 협박 그 자체보다 충분한 보안 조치를 보장할 수 없다는 이유로 10월 15일 예정된 강연을 취소함.
협박 사건에는 지역 경찰과 연방 수사기관이 대응했고, FBI도 수사에 관여함. 게이머게이트를 둘러싼 온라인 공격이 공개 강연을 중단시킬 정도의 물리적 위협으로 이어진 사례.
포스코가 1994년 10월 14일 뉴욕증권거래소에 ADR을 상장해, 한국 기업으로는 처음으로 NYSE에 오름. 영국 브리티시스틸에 이어 세계 두 번째로 NYSE에 상장한 철강사로, 주주 분산·회계·경영 능력 등 까다로운 상장 요건을 충족함. 이 상장을 계기로 한국전력·SK·LG 등 다른 한국 기업이 잇따라 미국 시장에서 자금 조달에 나섬.
이만희 감독의 《시장》이 제4회 청룡영화상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함. 제작사 동양영화흥업주식회사가 수상자로 기록됨.
국립영화제작소의 《월남전선》이 제4회 청룡영화상 비극영화 작품상을 수상함. 여기서 비극영화는 극영화가 아닌 영화를 뜻함.
이만희가 《시장》으로 제4회 청룡영화상 감독상을 수상함.
신영균이 《시장》으로 제4회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함.
문정숙이 《시장》으로 제4회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함.
허장강이 《군번없는 용사》로 제4회 청룡영화상 남우조연상을 수상함.
조미령이 《나운규의 일생》으로 제4회 청룡영화상 여우조연상을 수상함.
남정임이 《유정》으로 제4회 청룡영화상 신인특별상을 수상함.
주민아가 《비무장지대》로 제4회 청룡영화상 아역특별상을 수상함.
한우정이 《군번없는 용사》로 제4회 청룡영화상 각본상을 수상함.
남자 부문은 김진규·신성일·신영균이, 여자 부문은 고은아·김지미·최은희가 수상함.
안윤혁이 《비무장지대》로 제4회 청룡영화상 흑백촬영상을 수상함.
김동진이 《태양은 다시 뜬다》로 제4회 청룡영화상 음악상을 수상함.
노인택이 《오늘은 왕》으로 제4회 청룡영화상 미술상을 수상함.
김희수가 《탈출명령》의 편집으로 제4회 청룡영화상 편집상을 수상함. KMDb에는 기술상 가운데 편집 부문으로 기록됨.
전조명과 이병우가 《잘 있거라 일본땅》으로 제4회 청룡영화상 색채촬영상을 공동 수상함.
국토건설종합계획법이 제정·공포돼 전국계획과 특정지역계획 등 국토계획의 법적 틀이 마련됨. 제1차 계획이 법정 계획으로 수립되는 제도적 기반이 됨.
아돌프 히틀러가 독일의 제네바 군축회의 철수와 국제연맹 탈퇴를 발표. 독일 정부는 다른 국가와 동등한 군비를 인정받지 못했다는 점을 결정의 명분으로 제시하고, 11월 12일 국민투표를 통해 이를 추인.
탈퇴는 국제연맹 규약에 따른 통고 기간을 거쳐 발효됐으며, 독일 정부는 이후 공군 창설과 징병제 부활 등 베르사유 조약의 군비 제한을 위반하는 재무장 정책을 추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