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나라의 알선으로 조선의 신헌, 김홍집과 미국의 슈펠트(Schufeldt) 제독이 서명한 이 조약은 조선이 서양 국가와 최초로 맺은 근대적 조약이자 불평등 조약.
- 거중조정: 어느 한 나라가 다른 나라의 부당한 위협을 받을 때 서로 돕고 중재한다는 내용
- 치외법권 및 최혜국 대우: 미국인에 대한 영사재판권 인정과 미국에게 최고 수준의 경제적·정치적 혜택을 부여하는 불평등 조약
청나라의 알선으로 조선의 신헌, 김홍집과 미국의 슈펠트(Schufeldt) 제독이 서명한 이 조약은 조선이 서양 국가와 최초로 맺은 근대적 조약이자 불평등 조약.
미국 측이 조약 체결에 쓸 국기를 요청하자, 김홍집의 지시를 받은 역관 이응준이 제물포에 정박한 미군함 안에서 흰 바탕에 태극과 4괘를 그린 기를 제작·사용함. 1882년 5월 22일 조미수호통상조약 조인 자리에서 쓰인 이 기는 오늘날 학계가 보는 '최초의 태극기'로, 조선이 근대 국가로서 처음 자국 국기를 내건 사례. 박영효의 기와 함께 태극기 기원 논의의 중심에 있음.
아일랜드계 캐나다의 단거리 육상 선수 로버트 커. (~1963년)
뉴욕의 중앙노동조합(Central Labor Union)이 노동자들의 권리와 기여를 기리는 행사를 조직해 미국 최초의 Labor Day 행사가 열렸다. 이후 여러 주가 노동절을 공휴일로 채택했고, 1894년에는 매년 9월 첫째 월요일을 연방 공휴일로 정하는 법이 제정되었다. 이 미국 노동절은 5월 1일 국제 노동절과는 별개의 전통이다.
제물포 조약 사후 처리를 위한 제3차 수신사 박영효 일행이 일본으로 가던 1882년 9월, 증기선 메이지마루 선상에서 태극·4괘 도안의 기를 직접 그려 사용함. 오랫동안 '최초의 태극기'로 알려졌으나 실제로는 넉 달 앞선 이응준의 기를 변형해 4괘의 좌우를 바꿔 쓴 것으로 밝혀짐. 국가 사절이 외국에서 공식적으로 게양한 이른 사례로, 태극기가 대외적으로 조선을 대표하기 시작한 장면.
조선 정부가 전라도 전주성 안에 우두국(牛痘局)을 설치하고 공식 종두를 시행함. 지석영이 우두법 보급 활동을 이어 가는 가운데, 우두법이 개인적 시술을 넘어 지방 행정과 결합한 초기 사례. 조선에서 국가가 인정한 종두 시행의 출발점.
1883년 3월 6일(음력 1월 27일) 고종이 왕명으로 태극·4괘 도안의 태극기를 조선의 정식 국기로 제정·공포함.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이 '국기를 이미 제정하였으니 팔도와 사도에 알려 사용하게 하자'고 아뢰자 윤허하여 전국에 반포됨. 태극기가 개인의 사용을 넘어 국가가 공인한 공식 국기로 자리 잡은 출발점.
체코의 작가 야로슬라프 하셰크. (~1923년)
프랑스의 화가 에두아르 마네. (1832년~)
1880년대 초 파리 살페트리에르 병원에서 장마르탱 샤르코의 연구 환경에 참여해 최면과 히스테리 현상을 연구함. 샤르코 학파는 최면을 히스테리와 연결된 신경학적 현상으로 설명했고, 비네도 초기에는 이 해석을 지지하며 샤를 페레 등과 관련 실험을 수행함.
이 시기의 연구는 훗날 비네가 피험자의 피암시성과 실험자의 기대가 연구 결과에 개입할 수 있다는 문제를 인식하는 계기가 됨. 최면 연구의 한계를 경험한 뒤 관찰과 실험 통제를 더 중시하는 연구 태도로 이동하게 되는 배경이 됨.
조선 정부가 충청도 공주부에 우두국을 설치해 종두를 시행함. 전주 우두국 설치에 이어 지방 거점에서 우두법을 보급하려 한 조치. 이후 대구·한성 등에도 우두국이 설치되는 기반.
미국의 야구인 치프 벤더. (~1954년)
미국의 제33대 대통령 해리 S. 트루먼. (~1972년)
체코의 작곡가, 음악가 베드르지흐 스메타나. (1824년~)
체코슬로바키아의 정치인 에드바르트 베네시. (~1875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