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1895–1899년의 기록 112건

구간을 선택해 더 좁은 기간으로 좁혀 보세요.

가장 많은 기록
1898 · 37건
관련 엔티티
70개
날짜가 확정된 기록
80%
구간을 선택해 기록 보기 1898 · 37건

메인호 폭발 사건으로 미국 내 전쟁 여론이 높아진 상황에서 공동결의안이 상/하원에서 통과. 핵심 내용은 쿠바는 자유롭고 독립된 국가임을 선언하고, 스페인에 쿠바에서의 주권 포기와 군대 철수를 요구하고, 매킨리 대통령에게 스페인을 상대로한 무력 사용 권한을 위임.

조지 듀이George Dewey) 준장이 이끄는 미국 아시아 함대가 마닐라만에서 스페인 함대를 상대로 완벽한 승리를 거둠. 홍콩에 머물던 함대는 전쟁 선포 직후 필리핀으로 출항했고 밤을 틈타 마닐라만 방어선을 뚫고 진입. 미국은 현대식 철갑선이고 스페인은 오래된 목강선이었음.

전투 시작 당시 조지 듀이가 기함 올림피아호의 함장에게 내린 "준비되면 쏘게, 그리들리(You may fire when you are ready, Gridley)"라는 말은 미국 해군사의 명언으로 남음.

마닐라만 해전에서 승리한 미국은 스페인을 완전히 몰아내기 위해 현지인들의 지지를 받지만 홍콩에서 망명 생활 중이던 필리핀 독립 운동 세력의 지도자 에밀리오 아기날도(Emilio Aguinaldo)를 필리핀으로 불러들임. 미국 함정 맥컬록호를 타고 마닐라 카비테 항구로 입항.

참고로 당시 에밀리오 아기날도는 미국이 필리핀의 독립을 도와줄 것이라고 믿었지만, 미국은 스페인을 몰아내고 자신들이 필리핀을 통치하려는 속셈이었음.

착공 6년 만인 1898년 5월 29일 조선대목구장 뮈텔 주교의 집전으로 축성식을 올려 성당을 완공함. 라틴 십자형 평면에 벽돌로 쌓은 한국 최초의 순수 고딕 양식 대성당으로, 당시 가장 높은 건물이라 '뾰족집'으로 불리며 장안의 명물이 됨. 준공 당시 이름은 자리 이름을 딴 종현성당.

명동성당

에밀리오 아기날도는 카비테의 자택 발코니에서 필리핀 독립을 선포하고 현재의 필리핀 국기를 처음으로 게양. 홍콩에서 제작해온 국기를 게양하면서 산프란시스코 데 말라본 마칭 밴드가 필리핀 국가를 연주, 독립 선언문은 암브로시오 리안자레스 바우티스타(Ambrosio Rianzares Bautista)가 낭독.

산후안 언덕 전투(Battle of San Juan Hill)는 시어도어 루스벨트 당시 육군 대령과 그가 이끄는 의용 기병대인 러프 라이더스(Rough Riders)가 전설적인 활약을 펼친 것으로 유명. 이 승리로 미군은 산티아고 항구를 내려다보는 고지를 장악.

참고로 당시 전투에서 제9기병대, 제10기병대(버팔로 솔저) 같은 흑인 정규군 부대가 러프 라이더스보다 앞장서 싸웠고 피해도 심했으나 당시 미국 언론은 루즈벨트의 활약을 집중적으로 보도. 루즈벨트는 이 전투의 전공으로 명성을 얻어 뉴욕 주지사를 거쳐 미국 대통령이 됨.

산티아고 데 쿠바 해전(Battle of Santiago de Cuba). 산후안 언덕 전투 이후 산티아고 항구에 전박하던 스페인 함대가 육상과 해상 양쪽에서 포위될 위기에 처하고, 이를 벗어나려고 벌인 스페인 세르베라 제독이 미군의 주일 예배를 틈타 좁은 항구를 빠져나가려고 했으나 이를 기다리던 미국 해군이 추격하여 스페인 해군을 궤멸시킴. 스페인 측은 323여 명 사망, 151명 부상, 1800여 명 부상, 미국 측은 사망 1명, 부상 1명.

이 결과 스페인은 카리브해의 해상권을 잃고 쿠바에 주둔하던 스페인 육군은 보급이 끊김. 이 해전이 미국-스페인 전쟁의 실질적 종결을 가져왔다고 볼 수 있음.

토지 측량을 담당하는 양지아문의 직원과 사무 처리 규정을 칙령 제25호로 반포한 사건. 외국인 수기사를 초빙하고 측량 인력을 양성하여 한성에서 지방으로 토지조사를 확대하도록 한 조치. 토지와 조세 기반을 파악하려는 광무 양전사업의 제도적 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