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혜석, 경성에서 첫 유화 개인전 개최
경성일보사 내청각에서 이틀 동안 첫 개인전을 열었음. 작품을 한자리에서 대중에게 보여주며 전문 화가로 활동 영역을 넓힌 전시였고, 조선 여성의 서양화 활동을 가시화한 계기가 되었음.
경성일보사 내청각에서 이틀 동안 첫 개인전을 열었음. 작품을 한자리에서 대중에게 보여주며 전문 화가로 활동 영역을 넓힌 전시였고, 조선 여성의 서양화 활동을 가시화한 계기가 되었음.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사료편찬위원회와 『독립신문』에서 활동하던 이광수가 1921년 3월 상하이에서 국내로 귀국함. 귀국 직후 일본 경찰에 체포됐으나 곧 불기소 처분.
《매일신보》에 「인형의 집」을 발표함. 여성에게 요구되는 순종적인 가족 역할을 인형에 빗대어 표현하며, 스스로 삶을 선택할 수 있는 주체의 문제를 제기함.
대한민국의 군인 김용배. (~1951년)
오스트리아의 평화운동가 알프레트 헤르만 프리트. (1864년~)
대한민국의 정치인 박승규. (~1971년)
소련의 과학자, 사회운동가 안드레이 사하로프. (~1989년)
미국의 소설가 제임스 블리시. (~1975년)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박재혁. (1895년~)
영국의 왕족 에든버러 공작 필립. (~2021년)
소련의 의사 가브릴 일리자로프. (~1982년)
1921년 7월 초 김승학이 『독립신문』 2대 사장에 취임. 초대 사장 겸 주필 이광수와 영업부장 이영렬의 이탈 뒤 일본 영사관의 항의와 프랑스 영사관의 조치로 신문사와 인쇄소가 봉쇄된 상황에서, 안창호와 신문사 해제 방안을 논의하고 프랑스 영사관과 교섭함. 그 결과 음력 5월 말 신문사와 인쇄소가 다시 개방되었고, 사장 김승학·주필 박은식·편집국장 차리석 체제로 운영 기반 재정비.
이승만이 호놀룰루에서 대한인동지회 결성을 주도했음. 동지회는 임시정부 옹호와 교민 단결을 표방하며 그의 외교활동을 뒷받침했음.
1921년 7월, 이승만이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대한인동지회 조직을 주도했음. 상하이 임시정부에서 지도체제와 독립운동 방략을 둘러싼 갈등을 겪고 하와이로 돌아온 직후였음. 단체는 임시정부를 옹호하고 교민의 단결을 도모한다는 목적을 내세웠으며, 이승만을 지지하는 인사들을 결집시켰음.
동지회는 《태평양잡지》를 활동의 매개로 삼고, 1924년 하와이 한인대표회를 계기로 조직과 정강을 정비했음. 정치적 독립운동 지원과 함께 교민의 경제적 역량을 키우려 했으며, 동지식산회사 운영과 동지촌 건설도 추진했음. 그러나 자본 부족과 경영난 속에 회사가 파산하면서 경제적 자립 구상은 좌절됨.
동지회는 이후에도 이승만의 중요한 정치적 후원조직으로 남았음. 동시에 다른 한인 단체들과 대표권과 재정, 외교활동의 주도권을 놓고 갈등을 겪었음. 하와이 활동은 교육과 독립운동의 기반을 넓히는 과정이면서, 교민사회의 분열과 지도권 경쟁이 함께 나타난 과정이었음.
일본 영사관의 항의와 프랑스 영사관의 조치로 봉쇄되어 제109호(1921년 5월 31일) 뒤 발행이 중단된 『독립신문』이, 1921년 8월 15일 제110호부터 속간. 김승학 사장 취임 뒤 신문사와 인쇄소의 재개방을 거쳐 발행을 재개했고, 김승학 운영기에는 제110호부터 제177호까지 모두 68호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