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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년 3월의 기록 10건

일자가 있는 기록은 날짜순으로,
월까지만 알려진 기록은 마지막에 모았습니다.

현재 10건 표시

01 · 토

국제통화기금이 회원국의 국제수지 문제를 지원하기 위한 금융업무를 개시. 1945년 12월 27일 설립협정 발효와 1946년 조직 구성을 거쳐 실제 자금 운영에 들어간 단계. 같은 해 5월 프랑스가 처음으로 IMF 자금을 인출하며 회원국 금융지원의 실행 시작.

제주북공립국민학교에 열린 3.1절 기념식을 마친 직후 기마경관이 탄 말에 어린이가 채여, 소란 발생. 기마경관이 어린이가 채인 사실을 무시하자 주변 군중이 몰려들어 돌을 던지고 경찰서까지 쫒아감. 경찰은 이를 경찰서 습격으로 판단, 시위대를 향해 발포, 6명이 사망, 8명이 중상. 희생자 중에는 평범한 일반인 포함.

09 · 일

제주도청을 시작으로 민관 총파업. 경찰, 사법기관 제외한 대부분의 행정기관까지 대부분 파업 참여하며 지난 3·1절 기념행사 발포한 경관의 처단과 경찰 책임자의 인책사직을 강경히 요구. 심지어 경찰도 일부 파업 동참.

14 · 금

18 · 화

군정 실시 이래 처음보는 광범위한 총파업이 일단락되고, 파업 해결책과 범죄자 재판에 대해 협의 중이라고 알려짐. 이날까지 파업을 선동한 150명을 검거하였다고 조병옥 경무부장이 발표. 당시 미군정은 3월 15일 전남·북 응원경찰 222명, 3월 18일 경기도 응원경찰 99명을 증파.

19 · 수

조병옥 경무부장이 제주 3·1절 발포사건과 총파업에 관한 담화에서 경찰의 발포를 정당방위라고 주장하고, 사건이 북조선과의 통모로 발생했다는 취지의 주장을 발표함. 제주4·3평화재단은 이러한 인식과 총파업에 대한 강경 대응이 이후 대규모 검속과 탄압으로 이어졌다고 정리함.

미 국무부의 초기 작업 초안이 일본이 권리를 포기할 한국의 섬에 제주도·거문도·울릉도와 함께 독도를 명시한 단계. 최종 조약과 달리 독도 이름을 직접 적었다는 점에서 영토 문구의 변화 과정을 보여주는 자료. 문서 자체가 아직 승인받지 않은 잠정안임을 밝힌 상태여서, 초안의 내용과 연합국의 최종 합의는 구분할 필요.

20 · 목

31 · 월

일자 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