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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의 기록 61건

77년 전.한 해의 기록을 월별로 살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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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 예거가 머록의 활주 지면에서 X-1 1호기를 직접 이륙시킴. 통상적으로 모기인 B-29에 매달려 고도까지 올라간 뒤 분리되던 X-1이 지상 출발도 가능함을 보인 시험이었음.

지상 이륙이 일반적인 운용방식으로 바뀐 것은 아니며, 제한된 로켓 추진 시간을 연구 고도에서 활용하기 위한 공중발사가 X-1 시험의 중심 방식으로 유지됐음.

벨 X-1

정부 수립 이후 대한민국이 유엔 정식 회원국 가입을 처음 신청했음. 국제사회의 승인과 다자외교 참여를 넓히려는 시도였지만, 신청서를 제출하는 것만으로 회원 자격이 생기지는 않았음. 안전보장이사회의 심사와 추천, 총회의 결정이 뒤따라야 하는 가입 절차의 출발점이었음.

안전보장이사회 제410차 회의에서 소련이 전달한 북한의 가입 신청을 신규회원국가입위원회에 넘길지를 논의했음. 위원회 회부안이 부결되면서 북한의 신청은 다음 단계로 나아가지 못했음. 남한의 신청에 대한 소련의 거부권 행사와는 날짜와 심사 단계가 다른 초기 가입 시도였음.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

안전보장이사회 제423차 회의에서 대한민국의 가입을 추천하려던 결의안 S/1305에 소련이 거부권을 행사했음. 상임이사국의 반대로 총회에 필요한 추천을 얻지 못했음. 가입 신청과 안보리의 초기 검토가 이루어진 1~2월은 실제 거부권이 행사된 날짜와 구분할 필요가 있음.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

대한민국 해병대가 경남 진해 덕산비행장에서 신현준 초대 사령관을 필두로 해군에서 차출된 장교 26명, 부사관 54명, 병 300명 등 380명의 소수 병력으로 창설. 948년 여순 사건을 계기로 해안 방어와 초기 진압의 필요성이 증대되었고, 해군 산하의 상륙 작전 전문 부대의 필요성이 대두. 초대 사령관 신현준 중령.

프랑스 안시에서 1949년 4월부터 8월까지 이어진 두 번째 GATT 관세협상의 시작. 라운드는 여러 나라가 일정 기간 함께 진행하는 한 묶음의 무역협상을 뜻하며, 초기 협상의 핵심은 상품별 관세를 서로 얼마나 낮출지 조정하는 작업.

첫 제네바 협상 이후 참가 범위를 넓히고 추가 관세 인하를 추진한 단계. 한 차례 협정 체결로 모든 무역장벽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후속 협상을 거듭하며 약속을 쌓아 간 방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