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2개 선거구 재선거
5·10 총선에서 무효 처리된 제주도 2개 선거구 정상 투표 완료. 북제주군 갑 독촉국민회 홍순녕, 북제주군 을 대한청년단 양병직 당선.
5·10 총선에서 무효 처리된 제주도 2개 선거구 정상 투표 완료. 북제주군 갑 독촉국민회 홍순녕, 북제주군 을 대한청년단 양병직 당선.
무장 경찰이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를 습격해 조사 인력을 체포했음. 이승만은 특경대 해산 지시를 인정했고, 친일행위 조사와 처벌은 급격히 위축됨.
1949년 6월 6일 서울 중부경찰서장 윤기병이 이끄는 무장 경찰이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본부를 습격했음. 전날 경찰 지휘부는 시경국장 김태선을 거쳐 내무차관 장경근에게 특경대 강제 해산 계획을 알리고 허락을 받았음. 경찰은 특위 요원들을 연행하고 특경대의 무장을 해제했으며, 연행된 사람들은 구금 중 가혹행위를 당했음. 국회가 1948년 반민족행위처벌법에 따라 설치한 조사기구가, 수사 대상인 친일 경찰 세력을 포함한 경찰 조직의 공격을 받은 사건이었음.
습격 전부터 이승만은 반민특위가 현직 경찰을 조사·처벌하는 데 반대하며 특경대 해산을 요구했음. 습격 이후에는 경찰의 행동이 자신의 지시에 따른 것이라고 밝힘. 국회는 정부 책임을 추궁하고 원상회복을 요구했으나, 국회 프락치 사건으로 소장파 의원들이 체포되고 정부·경찰의 압박이 이어지면서 조사 활동을 지킬 힘은 약해짐.
이후 반민족행위처벌법의 공소시효가 단축되고 위원들이 사퇴하면서 반민특위의 활동은 사실상 마비됨. 6·6 사건은 친일 청산이 좌절되는 결정적 계기이자, 이승만 정부가 반공과 치안 유지를 내세워 식민지 시기 경찰 인력을 보호하고 입법부의 조사 활동을 제약한 사례로 남았음.
1949년 6월 6일 이기붕이 서울특별자유시장으로 취임함. 이어 같은 해 8월 행정체제 변경에 따른 서울특별시장 직위를 맡아 1951년까지 재임한 인물.
무장대 제2대 사령관이었던 이덕구가 경찰 토벌대와의 교전 끝에 사살. 김달삼 월북 이후 무장대를 지휘하던 이덕구 사살로 실질적인 무장항쟁 세력은 와해.
한 언론이 "제주도 반도사령관 이덕구는 지난 7일 경찰부대에 사살됐다. 즉 제주경찰서 화북지서 김영주 경사가 지휘하는 경찰부대는 지난 7일 오후 4시께 속칭 작은 가오리 부근 정글 속에서 반도사령관 이덕구 부대와 교전 끝에 이덕구를 사살하는 한편 그의 보신부하 1명을 포로로 잡았는데 이덕구 시체는 방금 제주경찰서에서 보관하고 있다고 한다."고 보도.
잉글랜드의 음악가 앨런 화이트. (~2022년)
대한민국의 경제관료이자 정치인 한덕수가 전라북도 전주에서 출생함. 이후 통상교섭본부장·재정경제부 장관·주미대사와 제38대·제48대 국무총리 등을 역임한 인물.
농지를 농민에게 분배한다는 제헌헌법의 원칙을 구체화한 농지개혁법이 법률 제31호로 공포됨. 직접 경작하지 않는 지주의 농지 등을 정부가 사들여 농민에게 분배하는 유상매수·유상분배 방식과 가구당 3정보의 소유 상한을 중심으로 농촌의 토지 소유질서를 바꾸려 한 법률임.
이승만 정부의 주요 사회경제 개혁이었지만, 대통령 한 사람의 구상으로 이루어진 일은 아니었음. 해방 이후 농민의 토지 요구, 북한의 토지개혁, 미군정의 귀속농지 분배가 선행했고, 조봉암이 이끈 농림부와 국회가 법안 형성에 참여했음. 정부·국회·지주층 사이의 보상과 상환 조건을 둘러싼 갈등 때문에 법은 1950년 3월 다시 개정되었으며, 그해 농지 분배가 본격화됨.
농지개혁은 지주·소작 관계를 크게 약화시키고 자작농 중심의 토지 소유체제를 형성한 중요한 변화였음. 다만 개혁 이전의 토지 매각, 전쟁, 농민의 상환 부담과 영세한 경영 규모 때문에 효과와 한계가 함께 나타났으며, 보상·상환·소유권 이전까지 같은 날 완료된 것은 아니었음.
1949년 제정법과 1950년 시행된 개정법의 상환 조건은 구별해야 함. 1950년 개정 후 매수·분배 가격은 평년 생산량의 150%, 상환·보상 기간은 5년을 기준으로 하였음. 법 공포일인 1949년 6월 21일을 농지개혁 전체의 단일 완료일로 이해할 수 없음.
1949년 7월 조직을 주식회사 슈에이샤로 개편함. 8월 ‘밝고 즐거운 소년소녀 잡지’를 표어로 내건 《오모시로 북》을 창간함. 이 잡지는 법인 개편 뒤 처음 발행한 정기 간행물이 됨.
미 공군의 프랭크 에버리스트가 X-1 1호기로 약 7만 1,900피트 고도에 도달함. 속도 돌파와 별도로 고고도 비행에서 기체의 성능과 운용 한계를 시험한 성과였음.
이 기록은 1948년 마하 1.45 비행과 날짜가 다른 시험 결과이며, 두 성과를 한 비행의 기록으로 합쳐 쓰지 않아야 함.
장황연 감독의 멜로드라마 《청춘행로》 개봉. 김춘광 원작을 장황연이 각색하고 예술영화사가 제작한 작품으로, 결혼 뒤 시댁의 학대를 겪는 정순과 미국 유학에서 돌아온 남편 계식의 이야기를 전개
황정순이 시집살이를 견디는 며느리로 첫 영화 주연을 맡고, 강계식·주선태 등이 함께 출연. 황정순은 같은 해 홍성기의 《여성일기》와 최인규의 《파시》에도 출연하며 서로 다른 여성 인물을 연기
대한민국 정부의 기상업무를 맡을 국립중앙관상대가 직제 시행과 함께 발족한 사건. 이전부터 이어져 온 관측업무를 해방 이후 국가행정체계 안에 조직하고, 관측·예보·기후자료 관리를 담당할 중앙기관의 기반 마련. 오늘날 기상청의 조직적 출발점이며, 1990년 기상청 승격과 구별되는 이력.
리처드 티퍼니 기어(Richard Tiffany Gere)가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에서 출생.
해리 S. 트루먼 미국 대통령이 최근 소련에서 원자폭발이 발생했다는 증거를 확보했다고 공식 발표. 소련의 첫 핵실험이 미국 정부에 의해 공개적으로 확인되며 미국의 핵무기 독점이 끝났음이 알려진 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