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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의 기록 127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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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드버즈의 잔여 공연 계약을 이행하기 위해 지미 페이지가 로버트 플랜트·존 폴 존스·존 본햄을 규합함. 네 사람은 1968년 8월 런던 제러드 스트리트의 작은 연습실에서 처음 합주한 것으로 전해지며, 정확한 날짜는 공식 사이트도 8월 12일이 포함된 주간을 대략적인 시점으로 제시함. 새 편성은 9월 스칸디나비아 공연을 소화한 뒤 레드 제플린으로 이름을 바꿈.

레드 제플린

지미 페이지·로버트 플랜트·존 폴 존스·존 본햄 편성이 1968년 8월 런던에서 첫 합주를 가진 뒤 스칸디나비아 투어에 나섬. 9월 7일 덴마크 글라드삭세의 틴 클럽 무대에서 네 명이 처음으로 청중 앞에 함께 연주함. 야드버즈의 잔여 공연 계약을 이행하기 위한 ‘뉴 야드버즈’ 명의였으나 실질적으로는 새 밴드의 첫 무대.

레드 제플린

《헤어》가 런던 샤프츠버리 극장에서 개막함. 영국에서 연극에 대한 사전검열이 폐지된 바로 다음 날 무대에 올라, 작품의 도발적인 표현과 공연 제도의 변화가 맞물리는 사례가 되었음.

런던 공연은 거의 2,000회에 이르는 장기 흥행을 기록함. 미국의 히피 문화와 베트남전쟁 반대라는 배경을 지닌 작품이 영국 관객에게도 큰 반향을 일으켰다는 점에서 국제적 확산의 중요한 단계였음.

1968년 9월 30일 보잉이 워싱턴주 에버렛 공장에서 최초의 747을 공개. 대형 광동체 여객기의 시대를 본격적으로 연 상징적 사건으로, 장거리 대량 항공여행과 국제 항공산업의 구조 변화를 대표하는 기술·산업사 이정표.

프란코 체피렐리 감독의 《로미오와 줄리엣(Romeo and Juliet)》 미국 개봉. 셰익스피어의 비극을 이탈리아 현지 촬영으로 옮긴 작품으로, 올리비아 핫세가 줄리엣, 레오나드 화이팅이 로미오를 연기한 공동 주연작. 니노 로타의 음악과 파스콸리노 데 산티스의 촬영, 다닐로 도나티의 의상이 어우러진 영화. 같은 해 3월 4일 런던 왕실 시사회를 거쳐 10월 8일 미국 관객에게 소개된 작품.

올리비아 핫세 출연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영화화한 《피니안의 무지개》의 뉴욕 개봉. 프레드 아스테어·페툴라 클라크가 출연하고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가 연출한 뮤지컬 판타지.

조지 루카스가 제작 현장에서 코폴라의 조수로 일하며 인연을 맺은 시기의 작품으로, 두 사람이 이후 독립 제작을 함께 모색하는 협업의 출발점.

멕시코시티 올림픽 남자 200m에서 금·은·동메달을 딴 토미 스미스, 피터 노먼, 존 카를로스가 시상대에 함께 섬. 미국 국가가 연주되는 동안 스미스와 카를로스는 고개를 숙이고 검은 장갑을 낀 주먹을 들어 인종차별과 불평등에 항의함. 노먼은 올림픽 인권 프로젝트 배지를 착용해 두 선수에게 연대함.

경기 성취를 축하하는 의식이 차별받는 사람들의 현실을 알리는 비폭력 항의의 무대가 됨. 이후 두 미국 선수에게 가해진 제재와 세 선수에 대한 재평가는 스포츠의 정치적 중립성과 선수의 인권 옹호 사이의 논쟁을 오래 남김.

1968년 멕시코시티 올림픽 시상식 인권 항의

미국의 밥 비먼이 1968년 멕시코시티 올림픽 남자 멀리뛰기 결승에서 8.90m를 기록해 금메달과 세계기록을 수립함. 기존 세계기록을 55cm 경신했으며, 세계기록은 1991년 마이크 파월에게 경신될 때까지 23년간 유지됨. 육상 역사상 가장 큰 도약 가운데 하나로 평가되는 성취.

스칸디나비아 투어 뒤 사용하던 '뉴 야드버즈' 명의를 버리고 10월 25일 레드 제플린으로 이름을 변경. 이름은 키스 문이 새 그룹 구상을 두고 '납 풍선처럼 추락할 것'이라고 농담한 일화에서 유래한 것으로 지미 페이지가 회고. 야드버즈의 잔여 계약을 수행하던 임시 명칭에서 독립된 밴드명으로 전환함.

레드 제플린

국제올림픽위원회가 시상식 항의를 올림픽의 정치화로 간주하면서 토미 스미스와 존 카를로스에게 제재가 가해지고 두 선수가 선수촌을 떠나게 됨. 이미 마친 200m 경기의 메달은 박탈되지 않았음. 세계 정상급 경기력을 인정받은 선수라도 인종차별 문제를 공개적으로 제기하면 스포츠 기구의 제재 대상이 될 수 있음을 드러낸 사건이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