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세광의 한국 입국
문세광이 다른 사람 명의의 일본 여권을 이용해 한국에 입국.
일본 경찰백서와 당시 항공사 확인 보도에 따르면 문세광은 1974년 8월 6일 다른 사람 명의의 일본 여권으로 한국에 입국. 총격 사건을 약 일주일 앞둔 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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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세광이 다른 사람 명의의 일본 여권을 이용해 한국에 입국.
일본 경찰백서와 당시 항공사 확인 보도에 따르면 문세광은 1974년 8월 6일 다른 사람 명의의 일본 여권으로 한국에 입국. 총격 사건을 약 일주일 앞둔 시점.
문세광의 박정희 대통령 저격 시도 과정에서 육영수와 장봉화가 피해를 입음.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에서 열린 광복절 경축식 도중, 문세광이 연설 중인 박정희 대통령을 향해 권총을 발사. 박정희는 피격되지 않았고 문세광은 현장에서 체포됨. 육영수는 머리에 총상을 입었으며, 성동여자실업고 학생 장봉화도 총격 과정에서 사망.
육영수가 서울대학교 부속병원에서 수술을 받았으나 피격 당일 사망.
총상을 입은 육영수는 서울대학교 부속병원으로 이송되어 수술을 받음. 당일 청와대 대변인 발표에 따르면 수술은 오전 10시 40분부터 5시간 40분 동안 진행됐으나, 육영수는 오후 7시에 사망.
한국 수사본부가 북한·조총련 관계자의 지령과 지원이 있었다는 취지의 수사 결과를 발표.
한국 수사본부는 문세광의 범행에 북한과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관계자의 지령과 지원이 있었다는 취지의 수사 결과를 발표. 이후 일본 내 관련자 수사와 조총련에 대한 조치를 둘러싸고 한일 간 갈등이 이어짐.
육영수가 중앙청 국민장 영결식 후 동작동 국립묘지에 안장됨.
오전 10시 중앙청 광장에서 육영수의 국민장 영결식 거행. 국내외 조문사절과 시민들이 애도하는 가운데, 육영수는 같은 날 오후 동작동 국립묘지에 안장됨.
박정희 대통령이 차지철 전 국회 내무위원장을 제3대 대통령경호실장으로 임명함. 육영수 피격 사건 이후 물러난 박종규의 후임 인사. 차지철은 전날 국회의원 사직서를 제출했으며, 임명 발표 당일 오전 박종규와 업무 인계를 협의함.
박정희 정부가 대통령긴급조치 제5호를 선포하여 제1호와 제4호를 해제함. 다만 이미 재판이 진행 중이거나 처벌받은 사람에게는 해제의 효력이 미치지 않도록 규정하여 기존 관련 사건의 처벌 문제는 남았음.
문세광이 13개 죄목으로 서울지방검찰청에 구속 송치됨.
문세광은 13개 죄목으로 서울지방검찰청에 구속 송치됨. 검찰은 후속 수사를 거쳐 9월 12일 6개 죄목으로 기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