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전의 뮤지컬 《의형제》에서 걸인·해설자 역으로 무대에 오르며 뮤지컬 배우로 데뷔함.
크리스토퍼 도일·이핑빈, 《화양연화》로 제37회 금마장 촬영상 수상
크리스토퍼 도일과 이핑빈이 《화양연화》로 제37회 금마장 최우수 촬영상을 공동 수상함.
수잔 서랜든이 유니세프 활동으로 인도와 탄자니아의 아동 지원 현장을 방문함. 인도에서는 영유아 발달을 위한 지원을, 탄자니아에서는 HIV/AIDS의 영향을 받는 아동과 가족의 교육·보호 문제를 알리는 활동에 참여함.
이명세, 뉴욕에서 해외 프로젝트 개발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해외 반응을 계기로 뉴욕으로 건너가 광고·영화 프로젝트 개발.
2005년 인터뷰에서 토니 스콧 등의 제안을 받아 미국으로 향했으나, 현지 파업으로 일정이 지연되면서 미국 작가들과 시나리오 작업을 이어갔다고 설명. 2003년에는 광고 촬영을 위해 일시 귀국해 미국 프로젝트의 진행 상황을 알림.
《인정사정 볼 것 없다》 해외영화제 상영과 배급 확대
로테르담국제영화제와 뉴욕 뉴디렉터스 뉴필름스가 《인정사정 볼 것 없다》를 소개하고 라이언스게이트의 해외 판권 확보가 보도됨.
로테르담국제영화제의 2000년 장편 프로그램과 같은 해 뉴디렉터스 뉴필름스 선정작으로 상영. 2000년 5월 한국영화 소식지는 Lions Gate Films International의 판권 확보를 보도. 영화제 선정과 상영, 해외 배급권 확보를 통해 해외 관객과의 접점을 넓힌 작품의 유통 이력.
서극 감독의 《순류역류》(順流逆流, Time and Tide)가 공개됨. 사정봉과 오백이 연기한 경호원과 전직 용병이 복잡한 범죄와 인간관계에 휘말리는 홍콩 현대 액션영화.
영어권 영화 작업 뒤 홍콩의 고밀도 도시 공간으로 돌아와 추격과 총격의 움직임을 실험한 작품. 건물과 골목, 수직 공간을 활용한 빠른 액션으로 서극의 현대극 연출을 이어감.
박중훈이 《인정사정 볼 것 없다》로 제36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남자 최우수 연기상 수상.
거칠고 집요한 우형사 역으로 이명세의 시각적인 액션 연출과 결합한 연기 성과.
앤 카슨, 맥아더 펠로십 선정
미국 맥아더 재단이 고전학과 시·산문을 결합하는 작업을 높이 평가해 앤 카슨을 2000년 맥아더 펠로십 수상자로 선정. 학계와 문학계를 넘나드는 창작 활동이 국제적인 주목을 받은 계기.
네이버, 통합검색 서비스 도입
네이버가 여러 종류의 검색 결과를 한 화면에 모아 제시하는 통합검색 서비스 도입. 검색어와 관련된 자료를 정보의 유형별로 나누어 보여주며 이용자의 다양한 검색 의도에 대응하는 방식의 출발. 이후 지식iN과 블로그 등 이용자가 생산한 콘텐츠를 검색 결과에 결합하는 기반으로 발전.
《공생충》으로 다니자키 준이치로상 수상
《공생충》으로 제36회 다니자키 준이치로상 수상. 사회적 고립과 정보의 영향력을 다룬 장편으로 문학적 평가를 이어간 이정표.
아쿠타가와상 심사위원으로 활동 시작
아쿠타가와상 심사위원으로 활동 시작. 자신을 문단에 알린 상의 수상자에서 신인 작가들의 작품을 평가하는 역할로 이동했으며, 이후 약 18년간 심사에 참여함.
한국에서 야생동물용 광견병 미끼백신 살포 시작
야생동물 감염 고리를 줄이기 위해 경구용 미끼백신을 배포하기 시작한 해. 초기에 약 2만 개의 미끼가 사용된 뒤 사업 규모가 확대된 과정. 반려동물·가축의 접종과 야생동물 방역을 병행하는 방식으로,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 동물 단계에서 감염을 줄이는 접근의 구체화.
한국에서 대규모 홍역 유행이 시작됨
2000년부터 이듬해까지 한국에서 수만 명의 홍역 환자가 발생함. 영유아와 학령기 아동의 면역 공백이 드러나면서, 개별 환자 대응을 넘어 국가 차원의 퇴치계획을 수립하는 계기가 됨.
미국, 홍역의 지속적 지역사회 전파가 중단됐다고 선언
미국에서 홍역 퇴치가 선언됨. 여기서 퇴치는 12개월 넘게 지속적인 국내 전파가 없었다는 의미로, 모든 환자의 소멸이나 세계적 박멸을 뜻하지 않음. 해외유입에 따른 유행에 대비하는 감시는 이후에도 필요했음.
명지대학교에서 뛰던 박지성이 일본 교토 퍼플 상가에 입단하며 프로 무대에 진출함. 이후 팀의 2부리그 강등과 2001년 승격을 모두 경험하며 경기 출전과 역할 변화 속에서 성장함. 한국 프로리그를 거치지 않고 일본에서 출발했다는 점은 그의 해외 진출 경로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대목임.
이영표가 안양 LG 치타스에 입단하며 프로 경력 시작. 첫 시즌부터 팀의 K리그 우승을 경험하고 2002년까지 국내 무대에서 활약한 뒤 유럽으로 진출한 경력의 출발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