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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언론인)
인물

김대중 (언론인)

Kim Dae-joong

1965년부터 2020년까지 약 55년간 조선일보에서 기자·편집국장·주필·고문을 지낸 대한민국의 언론인이자 칼럼니스트. 본관은 광산 김씨이며, 사회부장·정치부장·미국 워싱턴 특파원·편집국장·주필·편집인 등 신문사 주요 보직을 두루 거친 뒤 1990년 주필 취임 이후로는 '김대중 칼럼'을 통해 시사 평론가로 활동. 동명의 전직 대통령 김대중과는 다른 인물.

친미·반공주의에 기반한 일관되고 단호한 보수 논조로 한국 보수진영을 대표하는 논객으로 평가. 1967년 충남 청양 구봉광산 매몰 광부 양창선 구조 보도로 유명 기자 반열에 올랐고, 마흔 무렵부터 칼럼니스트로서 거의 모든 정권에 비판의 날을 세움. 강경한 논조는 군사정부 시절 필화를 빚기도 했고, 1980년 광주 관련 르포 보도와 햇볕정책 비판 등으로 진보 진영과 지속적으로 충돌.

시사저널의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인' 조사에서 여러 해 1위를 차지할 만큼 한국 언론계에서 비중 있는 위치를 점한 인물. 조갑제·류근일과 함께 1990~2000년대 보수 담론을 이끈 대표적 논객으로 꼽히며, 1939년 출생 이후 현재까지도 조선일보에 간간이 칼럼을 기고하는 현직 언론인.

16 타임라인
2 사실

타임라인

16
1939 1건
87년 전
1965 1건
61년 전

1965년 6월 조선일보 수습 8기로 입사하며 기자 생활을 시작함. 수습 기간 편집부와 외신부 등을 거쳤고, 외신부장 리영희 아래에서 외신 기사 작성과 국제정세 보도를 익힘. 이후 외신부·사회부를 거쳐 1967년 정치부 기자로 옮기며 정치 취재 경력을 본격화함.

1967 1건
59년 전

1967년 8월 충남 청양 구봉광산 붕괴로 지하에 매몰된 광부 양창선의 생존과 구조 과정을 취재·보도함. 당시 사회부 기자였던 김대중은 이 사건 관련 보도로 주목받으며 조선일보 내에서 이름을 알림. 양창선은 매몰 16일 만에 구조되어 전국적 관심을 모음.

1972 1건
54년 전

1972년 조선일보 주미 특파원으로 부임해 1979년까지 워싱턴에서 활동함. 미국 정치와 외교, 한미관계를 현장에서 취재했으며, 훗날 그의 친미·안보 중심 논평과 국제정세 인식에 중요한 경험적 기반이 된 시기라 추정할 수 있음.

1980 2건
46년 전

1980년 5월 25일 조선일보에 광주 르포를 게재하며 광주를 ‘무정부 상태’로, 바리케이드 뒤의 무장 시민을 ‘총을 든 난동자’로 표현함. 계엄군의 집단 발포와 시민 희생이 이어진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맥락을 충분히 드러내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으며, 당시 조선일보 보도의 문제를 보여주는 사례로 거론됨. 김대중은 1997년 회고에서 “기사는, 신문은 그 시대 그 상황의 산물이며 기록일 수밖에 없다”고 썼고, 다른 글에서는 해당 기사를 쓰지 말았어야 했다는 후회를 밝힌 것으로 전해짐.

1984 1건
42년 전

1984년 11월 30일 조선일보 출판국장 시절 「거리의 편집자들」을 게재함. 전두환 정부 아래에서 편집권과 언론 통제를 우회적으로 비판한 칼럼으로 평가되며, 이후 정권과의 갈등 속에서 칼럼 집필이 중단되고 보직이 변경되는 배경 가운데 하나로 거론됨.

1985 1건
41년 전

1985년 7월호 월간조선에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금남로의 10일」을 게재함. 이 글은 광주민주화운동 희생자 수를 200~300명 정도로 서술한 것으로 전해짐. 김대중은 1997년 글에서 이 기고를 광주와의 ‘악연’ 가운데 하나로 회고함.

1986 1건
40년 전

1986년 여름부터 약 1년간 영국에서 연수함. 조선일보 출판국장과 현대사연구소장·논설위원실 위원 등을 지낸 뒤 해외 연수를 통해 영국의 정치·사회와 국제정세를 접한 시기임.

위키백과에 의하면 옥스포드 대학교 세인트앤터니 칼리지(St Antony's College)에 갔다고 함.

1989 1건
37년 전
1990 1건
36년 전

1990년 3월 11일 조선일보 이사 겸 주필에 취임. 이후 현장 취재보다 칼럼과 사설 집필에 무게를 두며 시사 논평 활동을 이어감. ‘김대중 칼럼’을 통해 정치·외교·안보 현안에 대한 보수적 관점을 지속적으로 제시.

1997 1건
29년 전

1997년 5월 10일 출간된 《5·18 특파원 리포트》에 「악연으로 만났지만 그래도 사랑하는 광주」를 기고함. 1980년 광주 취재와 보도에 대해 “기사는, 신문은 그 시대 그 상황의 산물이며 기록일 수밖에 없다”고 회고함. 해당 서술은 1980년 5월 르포의 시민군 묘사를 둘러싼 비판과 함께 이후에도 논쟁의 대상이 됨.

2001 1건
25년 전

2001년 10월 30일 월간조선사에서 칼럼집 《김대중 주필의 직필》을 출간. 언론의 비판 기능과 현실 비판을 강조한 글들을 묶은 저서로, 조선일보 주필·칼럼니스트로서 축적한 논평 활동을 단행본으로 정리한 출간물.

2003 1건
23년 전
2004 1건
22년 전

2004년 10월 31일 조선일보 이사기자에서 정년퇴임. 이후 조선일보 고문으로 활동하며 칼럼 집필과 시사 논평을 이어감. 2020년 고문직에서도 물러날 때까지 조선일보와의 관계를 유지함.

2020 1건
6년 전

2020년 3월 31일 조선일보 편집국에서 퇴임식을 갖고 조선일보에서의 기자 생활을 마무리함. 퇴임식에서 “기자로 살아서 행복했다. 아부 안 하고 돈 안 밝히고 살아서 좋았다”고 말하며 기자 정신과 글쓰기의 중요성을 강조함. 퇴임 뒤에도 ‘김대중 칼럼’을 계속 집필하겠다는 뜻을 밝힘.

그 외 사실들

기록

  • 시사저널의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인' 조사에서 조사 시작 이래 2004년까지 1위를 차지했고, 2005년 조사에서 손석희에게 1위 자리를 넘김.

    출처: 위키백과

논란

  • 친미·반공주의에 기반한 단호한 보수 논조로 한국 보수진영을 대표하는 논객으로 평가되는 한편, 1980년 광주 관련 르포 보도와 햇볕정책 비판 등을 둘러싸고 편파보도 논란이 지속적으로 제기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