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 사망 이후 평화시장 일대 노동자들이 전국연합노동조합 청계피복지부를 결성함. 작은 봉제업체 노동자들을 시장 단위로 조직하여 장시간 노동과 낮은 임금, 작업장 환경 문제에 대응한 노조.
이소선과 동료 노동자들은 조직의 유지와 노동조건 개선에 참여함. 다수의 여성 조합원들이 교육과 소모임·임금인상 활동을 이끌었지만 공식 지도부는 주로 남성으로 구성되어 노조 내부에도 성별 위계가 남아 있었음.
서울 동대문 상권의 청계천변에 자리한 의류 도매시장. 피란민과 영세 의류업자들의 생업에서 형성된 시장으로, 봉제산업과 의류 유통의 중심지이자 전태일·청계피복노조와 관련된 노동운동의 현장.
소매상에게 의류와 잡화를 공급하는 도매시장으로, 상점과 인근 봉제 작업장·원단업체·운송업이 연결된 동대문 의류산업의 구성 공간. 상품을 사입하는 상인들의 일정에 맞춰 야간 거래가 이루어지는 상업 구조이며, 주변의 신평화시장·동평화시장 등과는 각각 구별되는 시장.
점주·재단사·봉제기술자·보조노동자 등 서로 다른 지위와 일을 맡은 사람들이 함께 형성한 생업 공간. 빠른 생산과 유통을 가능하게 한 협업망 안에서 임금·노동시간·작업장 안전을 둘러싼 이해관계가 맞물리는 장소.
전태일 사망 이후 평화시장 일대 노동자들이 전국연합노동조합 청계피복지부를 결성함. 작은 봉제업체 노동자들을 시장 단위로 조직하여 장시간 노동과 낮은 임금, 작업장 환경 문제에 대응한 노조.
이소선과 동료 노동자들은 조직의 유지와 노동조건 개선에 참여함. 다수의 여성 조합원들이 교육과 소모임·임금인상 활동을 이끌었지만 공식 지도부는 주로 남성으로 구성되어 노조 내부에도 성별 위계가 남아 있었음.
청계피복노조가 근로기준법수호투쟁위원회 활동에 이어 단식농성을 시작함. 봉제공장의 긴 노동시간을 줄이고 낮은 천장의 다락 작업 공간을 없애라는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한 집단행동.
노동교실의 교육·소모임 활동으로 연결된 조합원들이 작업장 환경과 휴식 문제를 공동 요구로 제기했으며, 노동시간 단축과 다락 철거의 성과로 이어짐. 이듬해에는 견습공에게 임금을 직접 지급하도록 요구하는 활동도 전개함.
이소선의 구속과 노동교실 봉쇄가 이어진 가운데 청계피복노조 노동자들이 노동교실 반환과 구속자 석방을 요구하며 농성함. 노동교실은 평화시장 일대 노동자들이 글과 노동법을 배우고 소모임을 꾸리던 교육·휴식 공간이었으며 다른 사업장 노동자들과 교류하는 곳이기도 했음.
경찰의 진압과 연행 과정에서 부상자가 발생하고 조합원들이 구속됨. 여성 노동자 신순애·이숙희·임미경 등도 구속 대상에 포함되었으며, 노동교실 탄압에 대한 종교계·재야의 항의와 연대 활동이 이어짐.
신군부의 노동운동 정화조치와 간부 연행 이후 서울시장 명의의 청계피복노조 해산명령서가 전달됨. 같은 달 경찰이 노조 사무실의 집기를 반출하고 평화시장 일대의 접근을 막으면서 공개적인 노조 활동이 차단됨.
조합원들은 해산 철회를 요구했고 1월 30일에는 아시아·아메리카 자유노동기구 한국사무소 점거농성에 나섬. 농성 진압과 구속으로 활동가들이 흩어진 뒤에도 남은 노동자들이 청계모임을 꾸려 조직 재건을 이어감.
합법 지위를 회복하지 못한 청계피복노조의 비공개 활동 과정에서 여성 지도부가 조직 활동을 수행함. 구술사 연구는 1981년 강제 해산 뒤 여성들이 청계모임을 주도했고, 1986년에도 여성 활동가들의 지도력이 나타났다고 분석함.
같은 연구는 구속된 남성 활동가들이 돌아오면서 여성 지도부가 배제되고 남성 중심의 지도체계가 다시 구성되었다고 설명함. 여성들이 조합원의 다수를 이루고 교육·파업·조직 유지에 참여하면서도 지도부 진출에는 제약을 겪은 경험.
청계피복노조가 신고필증을 교부받으며 1981년 강제 해산 이후 7년 만에 합법 지위를 회복함. 청계모임의 비공식 활동, 노조 복구대회와 합법화 요구 시위 등을 지속해 온 노동자들의 조직 재건 결과.
조합원들은 구속·수배·해고를 겪는 동안에도 업종별 모임과 문화 활동으로 관계를 유지함. 1987년 민주화 이후에도 곧바로 해결되지 않았던 노조 인정 문제가 신고필증 교부로 마무리되어 공식적인 노동조합 활동의 기반을 회복함.
청계천변 평화시장이 정식 시장 개설 허가를 받음. 전쟁 후 피란민과 영세 의류업자들이 판자 점포에서 옷을 만들거나 미군복을 수선·염색해 팔던 상권이 바탕이며, 화재를 겪은 상인들이 신축을 추진해 1961년 3층 시장 건물을 완성한 뒤 허가를 얻은 과정.
1층 판매점과 상층 봉제공장이 연결되어 의류 생산과 유통을 한 건물에서 처리함. 기성복 수요가 늘면서 동대문 의류산업의 거점이 되었으나, 좁은 공장에 다락을 덧대어 작업 공간을 늘리는 과정에서 노동자의 환기·채광과 작업 자세 문제가 심해짐.
1970년대 후반부터 진행된 공장의 외부 이전이 이어지며 평화시장 건물은 생산·판매가 결합된 공간에서 도매 유통 중심으로 바뀌어 감. 봉제공장 일부는 창신동·숭인동·신당동의 주택가로 옮겨 작은 작업장과 시장 점포가 주문·하청으로 연결되는 구조를 형성함.
완전히 이전한 시점에 관한 상인들의 기억은 1980년대와 1990년대 초로 엇갈리며, 여러 해에 걸친 재편 과정. 인근 공장에서는 빠른 납기에 맞춘 의류 생산이 계속되었지만 반지하·소규모 작업장 등으로 노동 현장이 분산되어 시장 건물의 개선이 노동조건 전반의 개선과 일치하지는 않았음.
서울시가 평화시장을 서울미래유산으로 선정함. 전후 판자 점포에서 출발해 동대문 의류 도매상권의 형성에 영향을 준 장소로, 상인과 봉제노동자의 생업 및 도시 산업의 변화를 보여 주는 공간이라는 점을 인정한 선정.
시장 건물과 영업 공간의 생활사적 가치를 보존 대상으로 삼은 것으로, 국가지정문화유산 지정과는 다른 서울시의 근현대 유산 보존 제도에 따른 인정.
전태일과 동료 재단사들이 평화시장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바보회를 결성함. 근로기준법 해설서를 공부하고 작업장 실태를 조사하며 법으로 보장된 권리와 현장의 차이를 확인함.
업주에게 개별적으로 임금과 처우 개선을 요구하는 데서 나아가 동료들이 함께 자료를 모으고 노동행정기관에 호소하려 한 조직 활동.
전태일과 동료들이 바보회의 후속 조직인 삼동회를 결성함. 평화시장뿐 아니라 통일상가와 동화시장의 노동자가 참여하여 어린 노동자의 보호와 근로조건 개선을 추진한 모임.
설문조사를 토대로 10월 노동청에 진정서를 제출하고 휴일, 건강검진, 임금 인상, 다락 철거와 환기·조명 개선 등을 요구함. 노동실태는 언론에도 보도되었지만 개선 약속이 이행되지 않아 노동자와 업주·노동당국 사이의 갈등이 이어짐.
서울 평화시장의 재단사 전태일이 노동조건 개선과 근로기준법 준수를 요구하며 분신한 뒤 사망함. 그는 앞서 동료들과 노동실태를 조사하여 노동청과 언론 등에 개선을 호소했으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은 상황이었음.
박정희 정부의 고도성장 과정에서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에 놓인 노동자들의 현실을 사회문제로 드러낸 사건. 이후 노동조합 조직과 노동·민주화운동의 확대에 중요한 계기가 됨.
청계천박물관이 1960~70년대 평화시장의 형성과 의류 유통을 다룬 기획전을 개막함. 전쟁 이후 청계천변 판자 점포에서 의류 제작과 미군복 수선·염색을 하던 사람들이 시장을 형성한 과정, 시장의 구조와 상품, 동대문 상권의 변화를 다루었음.
시장의 탄생부터 이후 변화까지 네 부분으로 구성되었으며 11월 24일까지 열렸음. 의류 도매업의 성장과 그 현장에서 일했던 사람들의 생활을 함께 전시함.
서울동부지법이 이소선의 계엄법 위반 사건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함. 1981년 청계피복노조 해산 명령 이후 노조 사무실 등에서 대책을 논의했다는 이유로 처벌된 사건으로, 당시 징역형 선고에서 43년이 지난 뒤의 판결.
전태삼 등도 계엄법 위반 혐의에 무죄를 받았으며 일부 집회·시위법 혐의에는 면소 판결이 내려짐. 재판부는 적용된 계엄포고가 발령 요건과 헌법상 원칙을 충족하지 못했다고 판단함. 당시 평화시장 노동자들의 노조 활동에 대한 처벌을 사법적으로 다시 판단한 결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