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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의 J. 앤드 A. 매클린이 논설들을 묶은 제1권을 출간함. 신문에서 흩어 읽던 주장을 책으로 접할 수 있게 되었으며, 해밀턴의 서문과 교정이 포함됨.

비준 논쟁이 진행되는 동안 출판한 책이므로, 정치적 개입과 이론적 설명이 결합된 성격을 지님.

연방주의자 논집

워싱턴의 제이컵 기디언이 매디슨의 수정과 저자별 집필 목록을 반영한 판본을 출판함. 개별 논설의 저자를 표시하는 방식과 본문 교정이 이후 독서와 편집에 영향을 줌.

저자 귀속을 둘러싼 모든 이견이 이 판본으로 사라진 것은 아니며, 서로 다른 목록과 판본을 비교하는 연구가 계속되었음.

연방주의자 논집

파리의 뷔송이 프랑스어 번역본 《Le Fédéraliste》를 두 권으로 출판함. 미국의 비준 논쟁에서 나온 저작이 다른 언어권에 소개되는 중요한 출판 단계였음.

초기 번역본은 세 저자의 이름도 제시했으며, 공동 필명으로 발표된 글을 실제 저자들의 저작으로 읽는 흐름을 보여줌.

존 매케이가 X-1E의 26번째이자 마지막 비행을 수행함. 이 비행에서는 새로운 추진제 U-Deta를 낮은 고도와 속도에서 시험했으며, 이후 점검에서 연료탱크 균열이 발견됨.

수리 비용과 차세대 X-15의 등장 등을 고려해 X-1E 비행은 재개되지 않았음. 일부 연구는 F-104로 옮겨졌으며, 이 비행은 X-1 계열 전체의 마지막 비행으로 남았음.

벨 X-1

미 육군항공대와 국가항공자문위원회가 X-1 비행시험을 두 단계로 나누기로 합의함. 군은 날개가 더 얇은 1호기로 마하 1.1 도달을 서두르고, NACA는 기술 자문과 데이터 분석을 지원하기로 함.

NACA는 이후 날개가 더 두꺼운 2호기로 천음속 영역을 세밀하게 조사하기로 함. 속도 장벽 돌파와 반복 측정을 통한 과학적 이해가 함께 추진된 구조였음.

벨 X-1

벨 X-1E가 마하 2.24에 도달하여 이 개조형의 최고속도를 기록함. 앞선 착륙 사고와 수리를 거친 뒤 얻은 성과로, 초기 X-1이 개척한 연구를 더 높은 속도 영역으로 확장함.

고속에서의 방향 안정성은 여전히 연구 과제로 남았으며, 이 기록을 X-1 계열 전체의 최고속도와 동일하게 취급해서는 안 됨.

벨 X-1

척 예거가 머록의 활주 지면에서 X-1 1호기를 직접 이륙시킴. 통상적으로 모기인 B-29에 매달려 고도까지 올라간 뒤 분리되던 X-1이 지상 출발도 가능함을 보인 시험이었음.

지상 이륙이 일반적인 운용방식으로 바뀐 것은 아니며, 제한된 로켓 추진 시간을 연구 고도에서 활용하기 위한 공중발사가 X-1 시험의 중심 방식으로 유지됐음.

벨 X-1

미 공군의 프랭크 에버리스트가 X-1 1호기로 약 7만 1,900피트 고도에 도달함. 속도 돌파와 별도로 고고도 비행에서 기체의 성능과 운용 한계를 시험한 성과였음.

이 기록은 1948년 마하 1.45 비행과 날짜가 다른 시험 결과이며, 두 성과를 한 비행의 기록으로 합쳐 쓰지 않아야 함.

X-1 2호기에서 개조된 X-1E가 조지프 워커의 조종으로 첫 활공비행을 수행함. 얇은 날개, 터보펌프식 연료계통, 돌출형 캐노피와 사출좌석 등 여러 부분을 바꿔 기존 기체를 새로운 연구 플랫폼으로 활용함.

12월 12일의 무동력 활공과 12월 15일의 첫 동력비행은 별개의 시험임. 첫 동력시험에서는 엔진과 터보펌프 문제가 나타나 이후 점검과 개선이 필요했음.

벨 X-1

척 예거가 X-1 1호기를 조종하여 이 기체의 최고속도인 마하 1.45에 도달함. 1947년의 음속 돌파 이후에도 1호기가 더 높은 속도에서 안정성과 조종성을 조사하는 시험을 이어갔음을 보여 주는 비행이었음.

후속 X-1 계열의 마하 2 이상 기록과는 구분되는 초기 1호기의 성과임.

벨 X-1

척 예거가 X-1 1호기의 마지막 비행을 수행함. 음속 돌파 이후에도 안정성·조종성·날개와 꼬리의 하중·고고도 특성 등을 시험한 기체는 비행 임무를 마치고 스미스소니언으로 이관됨.

이는 X-1 사업 전체의 종료가 아니라 ‘글래머러스 글레니스’로 알려진 1호기의 퇴역이었음. 2호기와 후속 기체를 통한 연구는 계속됐음.

벨 X-1

벨의 시험비행사 찰머스 ‘슬릭’ 굿린이 X-1 2호기로 첫 동력비행을 수행하여 마하 0.79에 도달함. 앞선 활공시험에서 확인한 기체에 로켓 추진을 더하면서 본격적인 고속시험 단계로 넘어감.

처음 음속을 돌파한 기체는 1호기였지만, X-1 사업의 첫 동력비행은 2호기가 수행했다는 점을 구분할 필요가 있음.

벨 X-1

NACA 시험비행사 허버트 H. 후버가 X-1 2호기로 마하 1.029에 도달함. 군 조종사였던 척 예거의 성과에 이어 NACA와 민간 시험비행사에게도 첫 초음속 비행이 되었음.

2호기는 단순히 같은 기록을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선회·옆미끄럼·승강타 효율 등 조종과 안정성 자료를 수집하는 연구에 사용됐음. 이 조종사는 동명의 미국 대통령과 다른 인물임.

벨 X-1

X-1 3호기가 B-50에 매달린 시험을 마치고 착륙한 뒤 추진제 배출 준비 중 폭발과 화재가 발생함. 조종사 조지프 캐넌은 탈출했으나 심한 화상을 입었고, X-1 3호기와 B-50은 소실됐음.

터보펌프 방식으로 더 높은 성능을 기대했던 3호기는 본격적인 동력시험 성과를 남기지 못함. 이 손실은 X-1 개발이 성공 기록만이 아니라 추진제 취급과 실험비행의 큰 위험을 동반했음을 보여 줌.

벨 X-1

음속 부근에서 항력과 진동이 커지고 조종성이 달라지는 문제를 실제 비행으로 조사하기 위해, 미국 육군항공대가 벨 항공기에 실험기 제작을 맡김. 전투 임무나 여객 운송보다 비행 데이터를 얻는 데 초점을 둔 연구기 사업이 출발함.

초기 기체는 XS-1로 불렸으며 이후 X-1 명칭으로 알려짐. 개발 계약에 관한 자료들의 일자 표기가 달라 이 기록에서는 계약이 체결된 월까지만 표시함.

벨 X-1

X-1 2호기가 원래 형상으로 54번째이자 마지막 비행을 수행함. 연료계통을 가압하는 고압 질소 용기의 금속 피로가 우려되어 기존 상태로 비행을 계속하기 어려워졌음.

NACA는 기체를 폐기하는 대신 얇은 날개와 터보펌프 연료계통 등을 갖춘 X-1E로 개조하여 새로운 연구에 활용하는 방향을 택함.

벨 X-1

잭 울럼스가 플로리다 파인캐슬 비행장에서 X-1 1호기의 첫 활공시험을 수행함. B-29가 기체를 공중으로 운반한 뒤 분리했으며, 로켓 추진을 시작하기 전에 저속 조종성과 착륙 특성을 점검함.

이 단계는 곧바로 속도 기록에 도전한 것이 아니라 분리·조종·착륙 절차를 먼저 확인하는 과정이었음. 날짜는 NASA의 상세 비행 연표와 1세대 X-1 해설에 따른 것임.

벨 X-1

운영조례 개정에 따라 서울역사박물관의 상설전시와 특별기획전 관람을 무료로 전환함. 시민이 비용 부담 없이 박물관을 이용하도록 접근 문턱을 낮춘 조치였음.

다만 전시의 규모와 수준에 따라 별도 심의를 거치는 특별전시는 유료 운영이 가능하도록 했음. 모든 특별전이 예외 없이 영구 무료가 되었다는 뜻은 아님.

서울 전체를 1,500분의 1로 축소한 대형 모형과 영상을 결합한 도시모형영상관이 개관함. 도로·건물·산과 강의 관계를 한눈에 살펴보게 해 도시 공간을 읽는 전시를 강화했음.

개관 당시 모형에는 기존 시가지뿐 아니라 일부 개발계획의 미래 모습도 포함되었음. 따라서 그때의 모형을 실제 완공된 도시나 현재 서울을 그대로 재현한 것으로 읽어서는 안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