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블 두 번째 정비 임무, 적외선·분광 관측 능력 확장
디스커버리호의 STS-82 임무가 출발해 허블에 NICMOS와 STIS를 설치함. NICMOS는 근적외선 관측을, STIS는 빛을 파장별로 나누어 천체의 성질과 운동을 분석하는 분광 관측을 발전시킴.
이 정비는 고장 난 장비를 단순히 원상 복구한 작업이 아니었음. 새로운 검출기와 장비를 궤도에서 교체함으로써 이미 발사된 망원경의 과학적 활용 범위를 넓혔다는 의미를 지님.
편집일 기준 · 한국 시간
디스커버리호의 STS-82 임무가 출발해 허블에 NICMOS와 STIS를 설치함. NICMOS는 근적외선 관측을, STIS는 빛을 파장별로 나누어 천체의 성질과 운동을 분석하는 분광 관측을 발전시킴.
이 정비는 고장 난 장비를 단순히 원상 복구한 작업이 아니었음. 새로운 검출기와 장비를 궤도에서 교체함으로써 이미 발사된 망원경의 과학적 활용 범위를 넓혔다는 의미를 지님.
미국 의회가 승인한 자금이 적용되면서 대형 우주망원경 사업이 공식적으로 시작됨. 오랫동안 논의되던 구상이 실제 제작 사업으로 전환됐으며, 이후 광학계와 우주선 본체의 개발이 진행됨.
라이먼 스피처가 지구 대기 밖에 망원경을 두면 별빛의 흐트러짐과 대기의 흡수를 피할 수 있다고 설명함. 이 구상은 훗날 허블로 이어지는 대형 우주망원경 운동의 중요한 출발점이 됨.
인도 국방획득위원회(DAC)가 라지나트 싱 국방장관 주재로 약 2조 1,200억 루피(2.12 lakh crore) 규모의 육·해·공군 방위장비 조달 제안에 필요성 인정(Acceptance of Necessity, AoN)을 부여함. 대상에는 자주포, 헬리콥터, 초단거리 방공체계, 대드론 장비, 장거리 공격·감시 무인기와 해군 플랫폼 등이 포함됨. 인도 국방부는 승인된 조달 제안의 약 82%를 국내 산업에서 조달할 계획이라고 밝혔음. 이번 결정은 장비 획득 절차를 진행하기 위한 행정적 원칙 승인으로, 계약 체결이나 구매·배치 완료를 뜻하지 않음.
영국 런던의 옥스퍼드 스트리트에서 오처드 스트리트와 그레이트포틀랜드 스트리트 사이 약 1km 구간에 24시간 차량 통행 제한이 시행됨. 이 구간의 일반 자동차·버스·택시·자전거·전동 스쿠터 등의 통행이 금지됐으며, 배송·시설관리 차량은 자정부터 오전 7시까지 정해진 조건으로 진입할 수 있음. 런던시는 보행자 중심 거리 전환을 시작으로 2027년까지 나무와 휴식공간·공공광장 조성 등의 단계적 정비를 추진할 계획임. 이날 시행된 것은 특정 구간의 통행 제한으로, 전체 도로 정비공사가 완료된 것은 아님.
미국 인공지능 기업 앤트로픽(Anthropic, PBC)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기업공개(IPO)를 위한 S-1 등록신고서를 공개 제출함. 신고서에는 나스닥 글로벌 셀렉트 마켓에 종목기호 'ANT'로 상장하려는 계획이 담겼으나, 공모 주식 수와 공모가 범위는 공개 제출 시점에 확정되지 않음. 이번 공개 제출은 2026년 6월의 비공개 예비신고 이후 이루어진 절차이며, 신고서 효력 발생이나 주식 상장·거래 개시를 뜻하지 않음.
1962년 10월 27일 쿠바 상공에서 정찰 중이던 미 공군 U-2기가 소련제 지대공미사일에 격추되어 조종사 루돌프 앤더슨 소령이 사망함. 쿠바 미사일 위기가 핵전쟁 직전의 긴장 상태에 이른 날로, 케네디 대통령은 즉각적인 군사 보복 대신 협상을 택함.
같은 날 미국은 소련의 쿠바 미사일 철수 방안을 논의하고 로버트 케네디와 소련 대사 아나톨리 도브리닌 사이의 비공개 접촉이 이어짐. 이 사건은 정찰과 오판, 위기관리의 중요성을 보여줌.
2006년 10월 27일 에이미 와인하우스의 두 번째 정규 음반 《Back to Black》이 발매됨. 소울·재즈·R&B의 복고적 음악 언어와 개인적 경험을 담은 가사로 주목받았고, 《Rehab》 등의 히트곡으로 국제적 성공을 거둠.
2000년대 영국 음악계의 소울 부흥과 현대 대중음악의 흐름을 설명하는 대표적 작품. 다만 일부 유통·음반 목록은 영국 실물 CD 발매일을 10월 30일로 표기하므로 27일은 최초 발매일 기준으로 기록함.
1991년 10월 27일 투르크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이 국민투표를 거쳐 독립국가 투르크메니스탄의 수립을 선포함. 소련 말기 중앙아시아 공화국들이 독립국가로 전환하던 과정의 한 사건.
독립 이후 사파르무라트 니야조프가 국가 지도자로 권력을 공고히 했으며 투르크메니스탄은 1992년 유엔에 가입함. 소련 해체, 중앙아시아의 체제 전환과 권위주의 국가 형성을 연결함.
1838년 10월 27일 미국 미주리주 주지사 릴번 보그스가 후기성도 교도들의 추방 또는 무력 진압을 지시한 행정명령 제44호를 발령함. 미주리 모르몬 전쟁 중 종교집단을 주에서 제거하려는 조치로 박해와 강제 이주에 영향을 미침.
종교적 소수자에 대한 공권력의 차별과 폭력, 종교 자유의 역사를 보여주는 사례. 이 명령은 1976년 크리스토퍼 본드 주지사에 의해 철회됨.
1979년 10월 27일 오전 6시 40분경 경상북도 문경의 대한석탄공사 은성광업소 지하 갱도에서 화재가 발생함. 갱구에서 약 2,250m 떨어진 컨베이어 구간에서 시작된 불이 운반용 벨트를 따라 번져 유독가스가 발생했고, 작업 중이던 광부 126명 가운데 44명이 숨짐.
전동기의 열이 고무 컨베이어에 옮겨붙은 것이 사고 원인으로 전해짐. 대한석탄공사 역사상 최악의 광산 참사로 기록되었으나, 박정희 대통령 피살 바로 다음 날 발생해 충분한 사회적 관심을 받지 못한 사건. 한국 석탄산업을 뒷받침한 노동자의 위험과 산업안전·재난구조의 과제를 보여줌.
1980년 10월 27일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가 불교계 정화를 명분으로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송월주 등 불교계 인사 153명을 강제연행함. 10월 30일에는 군인과 경찰을 대규모 투입해 전국 사찰과 암자를 수색하는 등 탄압이 확대됨.
신군부가 불교계의 자율성을 침해하고 지도부를 압박했으며 조사 중 폭행과 고문 등 인권침해가 발생함. 이후 국가권력에 의한 종교 탄압으로 규명되었으며, 불교계 피해 회복과 역사적 책임을 둘러싼 논의가 이어짐.
1553년 10월 27일 스페인 출신 신학자·의학자 미카엘 세르베투스가 제네바에서 이단 판결을 받고 화형당함. 그는 삼위일체 교리를 비판하고 유아세례를 거부했으며, 장 칼뱅과 교리 논쟁을 벌인 뒤 제네바 당국의 재판에 회부됨.
이 사건은 종교개혁 시기에도 반대 신앙을 처벌했던 현실과 종교적 관용 논쟁의 중요한 사례임. 세르베투스는 폐혈액순환을 서술한 인물로 의학사에도 이름을 남겼으며, 출생 연도는 자료에 따라 1509년 또는 1511년으로 전해져 확정하지 않음.
신해철이 서울아산병원에서 치료받던 중 2014년 10월 27일 세상을 떠남. 소속사가 전한 병원 설명에 따르면 사망 시각은 오후 8시 19분이었음. 이후 의료과실 여부를 둘러싼 수사와 재판이 이어졌으며, 당시 사망 발표와 뒤에 확정된 법원의 판단은 구분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음.
팔레스타인계 미국인 문학비평가 에드워드 사이드가 『오리엔탈리즘』을 출간했음. 사이드는 서구의 문학·학문·정치가 동양을 설명하는 방식이 식민 지배와 권력관계에서 분리될 수 없다고 주장했음. 특히 영국과 프랑스, 이후 미국의 아랍·이슬람권 재현을 주요 분석 대상으로 삼았음.
책의 영향은 문학비평을 넘어 탈식민주의와 문화연구로 확장되었음. 영화를 중심적으로 분석한 저서는 아니지만, 이후 영화학자들이 시선과 서사적 주체, 캐스팅과 장르 관습을 권력관계 속에서 읽는 데 중요한 이론적 자원이 되었음.
데이비드 S. 로·베치 황·그레타 A. 니우가 편집한 『Techno-Orientalism: Imagining Asia in Speculative Fiction, History, and Media』가 출간되었음. 아시아와 아시아인을 기술적으로 뒤처졌거나 지나치게 기계적인 존재로 상상하는 재현을 여러 필자가 분석한 연구서임.
이 책은 SF와 영화뿐 아니라 전쟁 담론, 뉴스와 아시아계 미국인 문학 등으로 논의를 확장했음. 저자들은 아시아의 경제·문화적 부상에 대한 불안이 이러한 이미지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또 창작자들이 그 이미지를 비판적으로 다시 사용할 수 있는지를 검토했음. 2015년을 용어 자체의 최초 탄생 시점으로 단정하지는 않음.
역사학자 버나드 루이스가 『뉴욕 리뷰 오브 북스』에 「The Question of Orientalism」을 발표했음. 루이스는 사이드가 분석 지역과 연구 전통을 선택적으로 좁혔으며, 동양학 전체의 동기를 제국의 지배 의도로 설명하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고 주장했음.
이는 루이스의 비판적 입장이지 논쟁이 종결되었다는 의미는 아님. 사이드가 지식 생산을 둘러싼 권력관계를 강조했다면, 루이스는 개별 연구의 언어학적·역사학적 성과와 검증을 중시했음. 두 입장의 차이는 문화비평의 분석 단위와 역사학의 연구 방법을 함께 묻는 쟁점이 되었음.
에드워드 사이드가 『Race & Class』에 「Orientalism Reconsidered」를 발표했음. 『오리엔탈리즘』 출간 이후의 논쟁을 돌아보며, 동양에 관한 재현을 정치적·역사적 조건에서 분리할 수 없다는 자신의 관점을 다시 논의했음.
사이드는 지배적인 재현에 맞서 스스로 말하고 서술하려는 움직임에도 주의를 기울였음. 논의의 목적을 서구와 동양 중 어느 쪽이 본질적으로 우월한가를 가르는 데 두기보다, 사람들을 고정된 범주에 가두는 지식과 권력의 작동을 검토하는 데 두려 했음.
프랑스 정부가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에 동행한 학자와 예술가들의 조사 결과를 모은 『이집트지(Description de l’Égypte)』의 간행을 시작했음. 고대 유적과 건축, 지형, 자연과 주민 생활을 도판과 글로 기록한 대규모 출판 사업이었음.
이는 훗날 오리엔탈리즘 연구가 다루게 되는 역사적 배경임. 군사 원정과 지식의 수집·분류가 함께 진행되었다는 점에서 학문과 제국의 관계를 살펴볼 수 있으며,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이 출판물이 프랑스 건축과 장식미술의 이집트 취향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함. 이때 비평 개념 자체가 만들어졌다는 뜻은 아님.
사회학자 아누아르 압델말렉이 학술지 『Diogenes』에 「Orientalism in Crisis」를 발표했음. 탈식민화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동양의 사회들을 수동적인 연구 대상으로만 취급하던 기존 동양학의 전제를 비판했음.
그는 연구 대상 사회의 변화와 주체성을 충분히 반영하지 않은 채 사람들을 고정된 민족적·문명적 유형으로 분류하는 문제를 제기했음. 오리엔탈리즘 비판이 사이드의 1978년 저서 하나에서 갑자기 시작된 것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 주는 선행 논의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