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생물학자 토머스 헨리 헉슬리. (182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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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배우 이가와 하루카.
미국의 배우 라나 터너. (1921년~)
미국의 배우 캐서린 헵번. (1907년~)
타이완의 영화감독 에드워드 양. (1947년~)
판단과 의사결정 연구를 통해 심리학과 경제학의 경계를 넓힌 다니엘 카너먼이 향년 90세로 별세함. 그는 휴리스틱과 편향, 손실회피, 전망 이론 연구를 통해 인간이 위험과 불확실성 아래에서 실제로 어떻게 판단하고 선택하는지를 설명하는 데 기여함.
카너먼의 연구는 경제학이 전제해 온 완전한 합리성의 인간관에 중요한 수정을 요구했으며, 행동경제학·행동재무학·공공정책·법·경영 등 여러 분야에 영향을 남김. 프린스턴 대학교는 그를 행동과학 분야의 거장으로 추모하며, 심리학적 통찰을 경제 분석과 사회적 의사결정 문제에 연결한 학자로 평가함.
그의 별세는 아모스 트버스키와 함께 시작한 판단·의사결정 연구의 한 시대가 마무리된 사건으로 기억됨.
아모스 트버스키와 대니얼 카너먼이 《저널 오브 리스크 앤드 언서튼티》에 「전망 이론의 진전: 불확실성의 누적 표현」을 발표하며 누적전망이론을 제시함. 1979년 원전망이론의 결과별 분리형 의사결정 가중치를 결과의 순위와 누적확률에 기반한 가중치로 대체해 확률우월성 위반 문제를 완화함. 이득과 손실에 서로 다른 확률가중함수를 허용하고, 임의의 수의 결과를 가진 위험 및 불확실성 아래의 선택으로 적용 범위를 확장함. 이후 누적전망이론은 전망 이론의 대표적 정교화 모형이자 행동경제학·금융·보험 분야 응용 연구의 주요 기준 모형으로 자리 잡음.
존 폰 노이만과 오스카어 모르겐슈테른이 《게임 이론과 경제 행동》에서 불확실성 아래의 선택을 다루는 기대효용 이론을 공리적으로 정식화함. 합리적 행위자가 일정한 선호 공리를 충족할 경우, 가능한 결과의 효용을 확률로 가중한 기대효용을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선택한다는 모형을 제시함. 이후 기대효용 이론은 미시경제학과 의사결정 이론의 표준적 규범 모형으로 자리 잡았으며, 전망 이론이 실제 인간의 판단과 선택이 이 모형에서 체계적으로 벗어난다고 보이며 비판적으로 확장한 기준점이 됨.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의 군사·정부·지휘 시설을 겨냥한 대규모 기습 공습을 개시하며 2026년 미국·이스라엘-이란 전쟁이 시작됨. 미국은 작전을 ‘에픽 퓨리’, 이스라엘은 ‘로어링 라이언’으로 명명했으며, 이스라엘 공군은 약 200대의 전투기를 동원해 서부·중부 이란의 군사 표적 약 500곳을 타격했다고 발표함. 공습으로 이란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와 이슬람혁명수비대 고위 지휘부가 사망함.
도널드 트럼프와 베냐민 네타냐후는 핵·미사일 능력과 이란의 역내 대리세력 약화를 군사목표로 내세우는 동시에, 이란 국민에게 현 체제를 벗어나 정부를 장악하라고 공개 촉구함. 이 사건은 군사시설 파괴를 넘어 이란 정권의 존속 자체를 압박하는 방향으로 전쟁 목표가 확장됐음을 보여줌.
야리브 레빈 법무장관이 대법원 판결의 의회 재의결 허용, 판사 임명 절차에서 정부·연정의 영향력 확대, 행정부 조치에 대한 ‘합리성’ 심사 축소 등을 포함한 사법부 권한 재편 계획을 발표함. 네타냐후 정부는 이를 입법·행정·사법 간 균형 회복으로 규정했으나, 반대 측은 사법 독립과 견제 장치를 약화하는 조치라고 비판함. 이후 이 계획은 대규모 반정부 시위와 사회적·정치적 위기의 중심 쟁점이 됨.
베냐민 네타냐후가 리쿠드 대표 경선에서 실반 샬롬을 꺾고 당 대표로 복귀함. 1999년 선거 패배 뒤 물러난 지 약 6년 만의 당권 회복이었으며, 아리엘 샤론이 리쿠드를 떠나 카디마를 창당한 정치 재편 속에서 이뤄짐. 이후 야당 지도자로 활동하며 2009년 총리 재취임으로 이어지는 기반을 마련함.
베냐민 네타냐후가 외무차관으로서 마드리드 평화회의의 이스라엘 대표단에 참여하고, 국제 언론을 상대로 대표단 입장을 설명하는 역할을 맡음. 회의는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팔레스타인 측이 직접 협상 구조를 마련한 냉전 종식 이후의 주요 중동 평화외교 무대였음. 이 경험은 네타냐후가 국제 외교와 대미 언론 무대에서 존재감을 넓히는 계기가 됨.
베냐민 네타냐후가 1988년 총선에서 리쿠드 비례대표 명단으로 제12대 크네세트 의원에 처음 당선됨. 주유엔 이스라엘 대사 재임을 마치고 국내 정치에 진입한 사건. 이후 모셰 아렌스 외무장관 아래 외무차관을 맡으며 외교·안보 분야의 정치 경력을 본격화함.
이스라엘이 ‘라이징 라이언 작전’이라는 명칭 아래 이란의 핵·미사일·군 지휘 체계를 겨냥한 대규모 기습 공습을 개시함. 이스라엘군은 200대가 넘는 전투기가 약 100개 표적을 타격했다고 밝혔으며, 나탄즈 농축시설과 군사시설, 이란 혁명수비대 고위 지휘부 등이 공격 대상에 포함됨. 이란은 같은 날 드론과 탄도미사일로 보복 공격에 나섰고, 양국의 직접 군사충돌은 이후 ‘12일 전쟁’으로 불린 전면적 교전으로 확대됨. IAEA는 나탄즈 시설 피격과 외부 방사능 영향 부재를 확인했으나, 초기 시점에는 지하 농축시설의 직접 피해 여부가 확정되지 않았다고 밝힘.
국제형사재판소(ICC) 전심재판부가 가자지구 전쟁과 관련해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와 요아브 갈란트 전 국방장관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함. 재판부는 두 사람이 기아를 전쟁 수단으로 사용한 전쟁범죄와 살해·박해 등 반인도범죄에 형사책임이 있을 합리적 근거가 있다고 판단함. 네타냐후는 결정을 반유대주의적 조치라고 비판하며 ICC의 관할권과 혐의를 모두 부인함.
베냐민 네타냐후가 2022년 총선 후 종교·극우 정당들과 손잡은 강경 우파 연정을 이끌고 총리에 다시 취임함.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우편향된 정부로 평가되었으며, 이후 사법 개혁 추진과 대규모 반대 시위로 이어짐.
나프탈리 베네트와 야이르 라피드가 합의한 교대 총리제 연립정부가 크네세트 신임투표를 60대 59로 통과하며 출범함. 베네트가 첫 총리로 취임하면서 2009년 3월부터 약 12년 2개월간 이어진 베냐민 네타냐후의 연속 집권이 종료됨. 우파·중도·좌파 정당과 아랍계 정당까지 참여한 이질적 연정이 네타냐후의 퇴진이라는 공통 목표 아래 결집한 결과였으며, 네타냐후는 야당 지도자로 이동함.
아비하이 만델블리트 이스라엘 검찰총장이 베냐민 네타냐후를 1000·2000·4000 사건과 관련해 정식 기소함. 4000 사건에는 뇌물수수·사기·배임 혐의가, 1000·2000 사건에는 사기 및 배임 혐의가 적용됨. 이스라엘 역사상 현직 총리가 형사 기소된 첫 사례였으며, 네타냐후는 모든 혐의를 부인하고 정치적 수사라고 주장하면서 총리직을 유지함.
베냐민 네타냐후의 누적 총리 재임 기간이 이스라엘 초대 총리 다비드 벤구리온의 기록을 넘어섬. 1996~1999년 첫 총리 재임과 2009년 이후의 두 번째 재임을 합산한 결과로, 이스라엘 역사상 최장수 총리가 됨. 장기간의 선거 승리와 연립정부 구성 능력을 바탕으로 이스라엘 정치에서 가장 오래 지속된 개인 중심의 리더십 중 하나를 형성한 시점.
2009년 총선 뒤 베냐민 네타냐후가 리쿠드·이스라엘 베이테이누·노동당·샤스·통합토라유대교 등으로 연립정부를 구성하고 총리로 재취임함. 크네세트는 3월 31일 제32대 정부를 69대 45로 승인했으며, 네타냐후는 약 10년 만에 총리직에 복귀함. 이 재임은 2021년 6월까지 이어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