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저 1호 발사
보이저 1호가 미국 플로리다의 케이프커내버럴 발사단지 41에서 타이탄 IIIE-센타우르 로켓에 실려 출발. 먼저 발사된 보이저 2호보다 빠른 경로를 따라 목성과 토성으로 향했으며, 장기적으로는 태양권 바깥 환경을 조사하는 임무로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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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저 1호가 미국 플로리다의 케이프커내버럴 발사단지 41에서 타이탄 IIIE-센타우르 로켓에 실려 출발. 먼저 발사된 보이저 2호보다 빠른 경로를 따라 목성과 토성으로 향했으며, 장기적으로는 태양권 바깥 환경을 조사하는 임무로 이어짐.
보이저 1호가 지구에서 약 1,166만 km 떨어진 곳에서 지구와 달을 한 화면에 함께 촬영. NASA가 지구와 달 전체를 함께 담은 최초의 사진으로 소개한 기록. 탐사선이 멀어지며 바라본 지구와 달의 모습을 보여 주는 초기 자료.
야마하가 자사 최초의 색소폰을 출시. 유럽과 미국 제조사들이 발전시켜 온 악기 제작에 일본의 종합 악기 제조사도 본격적으로 참여한 사례.
아돌프 삭스가 벨기에 산업박람회 심사위원들에게 초기 색소폰을 시연. 파리 음악박물관의 설명에 따르면 아직 특허를 내기 전이어서 악기를 가린 채 소리를 들려준 것으로 기록됨. 새로운 소리의 가능성을 먼저 알린 단계.
콜먼 호킨스가 테너 색소폰으로 《Body and Soul》을 녹음. 익숙한 멜로디를 그대로 따라가기보다 화음의 흐름을 바탕으로 새로운 선율을 만들어내는 즉흥연주를 펼침. 테너 색소폰 연주자들이 반복해서 참고하는 중요한 재즈 해석으로 남은 녹음.
파리 음악원장 클로드 델뱅쿠르가 마르셀 뮐에게 색소폰 강좌를 맡김. 뮐의 연주와 교육은 클래식 색소폰 연주자 양성에 큰 영향을 줌. 재즈 무대뿐 아니라 전문 음악교육과 클래식 연주에서도 악기의 기반이 넓어진 계기.
셀머가 밸런스드 액션 색소폰을 공개. 낮은 음을 내는 키의 위치와 작동 구조를 바꾸어 손가락으로 누르기 편하게 만든 모델. 음색뿐 아니라 빠르고 편안하게 연주할 수 있는 조작 방식의 개선으로도 이어진 색소폰 발전의 사례.
아돌프 삭스가 프랑스에서 ‘색소폰이라 부르는 관악기 체계’의 특허를 출원. 프랑스 산업재산권청(INPI)이 보관하는 기록 번호는 1BB3226. 하나의 악기뿐 아니라 서로 다른 음역을 맡는 악기군을 설계한 점이 특징. 해당 날짜는 특허를 신청한 날로, 허가일과 구분.
셀머가 Mark VI 색소폰을 공개. 옥타브 키와 엄지 받침 등 손으로 조작하는 부분을 개선해 연주의 편의성과 유연성을 높임. 존 콜트레인, 스탠 게츠, 소니 롤린스 등 여러 연주자와 연결되며 널리 알려진 모델로 정착.
셀머가 첫 알토 색소폰 시리즈인 Série 1922를 공식 발표. 이름에 1922가 들어가지만 공식 발표일은 1921년 12월 31일. 이어진 Modèle 22는 제작 방식과 구조를 개선하며 현대 색소폰 제조의 한 흐름을 형성.
아돌프 삭스가 파리 음악원과 연결된 군악 교육에서 색소폰 교육을 시작. 군악대는 초기 색소폰 보급의 중요한 통로였으며, 발명가가 직접 연주 교육까지 맡았다는 점에서 의미를 지닌 사례.
유네스코가 국제자문위원회의 심사 결과와 추천을 받아들여 《난중일기》를 세계기록유산 목록에 올리기로 확정. 전쟁 중 군대를 이끈 당사자가 직접 쓴 일기로서 드문 사례이며, 역사 연구에도 중요한 자료라는 가치를 인정한 결정. 문화재청의 공식 발표일은 다음 날인 6월 19일.
이은상이 이순신의 손글씨 원본을 기준으로 일기를 한국어로 번역하고, 원본에서 없어진 부분은 《이충무공전서》의 내용으로 보충하여 현암사에서 출판. 한문 원문과 한국어 번역, 이해를 돕는 풀이를 함께 실은 책.
이은상이 이순신의 손글씨 원본을 다른 자료와 비교해 글자를 확인하고 바로잡아 《이충무공난중일기》를 출판. 이후 《이충무공전서》에 실린 내용으로 원본에서 없어진 부분을 채우고, 한문을 한국어로 옮기는 작업으로 이어진 연구.
1598년 음력 11월 17일, 이순신이 노량해전에서 전사하기 이틀 전의 기록. 현재 남아 있는 일기책 일곱 권과 따로 전해지는 마지막 부분을 함께 살폈을 때 확인되는 일기의 마지막 날짜.
노승석이 이순신의 손글씨 원본과 여러 형태로 전해진 일기 자료를 비교해 글자와 내용을 정리하고, 이를 한국어로 옮긴 《교감완역 난중일기》를 민음사에서 출판. 제목의 ‘교감’은 자료 사이의 차이를 비교해 글자와 내용을 바로잡는 일, ‘완역’은 전체 내용을 번역했다는 뜻.
조선사편수회가 《난중일기》를 《임진장초》와 함께 《조선사료총간》의 여섯 번째 자료집으로 출판. 원본을 사진으로 복사해 인쇄하는 ‘영인’ 방식을 사용하여, 이순신이 직접 쓴 글씨의 모습을 그대로 살펴보고 연구할 수 있게 한 작업.
문화재청이 《난중일기》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목록에 올리기 위해 신청서를 제출. 2011년 국내 선정 절차를 거쳐, 이순신이 직접 쓴 원본이라는 점과 전쟁 지휘관의 일기로서 드문 사례라는 점을 설명. 바다에서 벌어진 전투와 당시 사람들의 생활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라는 가치도 함께 제시.
이순신이 직접 쓴 《난중일기》 일곱 권과 《서간첩》·《임진장초》를 합친 아홉 권의 기록을 국보로 지정. 현재 국가유산 목록에 등록된 지정일은 1962년 12월 20일. 조선 수군의 활동과 전쟁 상황, 이순신의 삶을 보여주는 원본 기록을 한데 묶어 보호하기 위한 지정.
정조의 명령으로 이순신이 남긴 글과 그의 생애에 관한 기록을 모아 《이충무공전서》를 출판. 책의 제5~8권 부분에 일기를 싣고 《난중일기》라는 제목을 붙인 작업. 나중에 손글씨 원본의 일부가 없어지고 난 뒤에도 그 내용을 확인할 수 있게 해 준 국가 차원의 출판 사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