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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은 김기환 피고인 등 지존파 일당 6명에 대한 상고심 선거공판에서 원심대로 사형을 확정
대법관 임기 만료 후에도 6·3 지방선거 관리의 연속성을 이유로 위원장직을 유지하던 중, 2026년 6월 5일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에 책임을 지고 자진 사퇴. 선거 관리 부실과 거듭된 논란 속에 결국 물러난 결정. 약 4년에 걸친 중앙선거관리위원장 임기를 마무리한 사건.
2026년 3월 3일 6년 임기를 마치고 대법관에서 퇴임. 후임 대법관 제청이 이루어지지 않은 채 물러나 대법관 공백이 현실화. 퇴임사에서 '정치의 사법화' 시대에 법관의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한다고 당부.
노태악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이 선관위 고위직 간부 자녀들의 특혜 채용 문제와 관련해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함. “국민 여러분께 큰 실망과 걱정을 끼쳐드렸다”며 통렬한 반성과 함께 사과했고, 국민이 만족할 때까지 제도 개선과 외부 통제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힘. 선관위는 특혜채용 수혜자로 지목된 고위직 자녀 10명을 직무에서 배제하고, 부적정 채용 처리에 관여한 직원들에 대한 징계 절차에도 착수함.
2020년 1월 김명수 대법원장의 제청과 2월 국회 임명동의를 거쳐 3월 4일 대법관에 취임.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로 재직하다 사법부 최고 법원의 일원이 됨. 이후 6년 임기 동안 대법원 전원합의체와 소부에서 주요 사건의 판결에 참여.
사법연수원 16기를 수료하고 육군 법무관을 거쳐 1990년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 판사로 법관 생활을 시작. 이후 서울중앙지방법원·특허법원·서울고등법원 등 여러 법원을 거치며 재판 실무 경력을 쌓음. 30여 년에 걸친 법관 경력의 시작점.
한양대학교 법학과에 재학하던 1984년 제26회 사법시험에 합격하며 법조인의 자격을 얻음. 대학 재학 중 이른 나이에 시험을 통과해 법관의 길로 들어섬. 이후 사법연수원 수료와 군 법무관을 거쳐 판사로 임관하는 출발이 됨.
1962년 11월 20일 경상남도 창녕군에서 태어남. 평범한 가정에서 자라 한양대학교 법학과에 진학하며 법조인의 길로 들어섬. 훗날 대법관과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을 지내는 법조인의 출발점.
2022년 4월 위원으로 지명된 뒤 5월 17일 제22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에 취임. 대법관이 위원장을 겸임해 온 관례에 따라 선거 관리 기구의 수장을 맡음. 대통령선거·지방선거 등 전국 단위 선거 관리를 총괄하는 자리.
2023년 선관위 사무총장·사무차장 등 고위 간부 자녀의 특혜채용 의혹이 잇따라 불거지자 위원장으로서 "국민께 심려를 끼쳐드려 송구하다"며 사과하고 전수조사를 약속. 그러나 이후 직무감찰 등으로 다수 사례가 추가 확인되며 2024년 다시 사과. 선관위의 채용 공정성과 조직 신뢰가 크게 흔들린 사건.
1983년 썬 마이크로시스템즈에 합류해 약 14년간 재직하며 1994년에는 최고기술책임자(CTO) 자리에 오름. 썬의 소프트웨어·기술 전략을 이끌며 엔지니어이자 기술 경영자로서 입지를 다짐. 이후 본격적인 최고경영자 경력으로 나아가는 발판.
1997년 네트워크 소프트웨어 기업 노벨의 회장 겸 최고경영자로 취임. 마이크로소프트와의 경쟁 속에서 침체된 회사의 사업 재편과 경영 정상화를 지휘. 전문 경영인으로서 대기업 CEO 경력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자리.
2001년 3월 구글 이사회 의장으로 합류한 뒤 8월 최고경영자(CEO)에 오름. 엔지니어 출신 창업자 래리 페이지·세르게이 브린과 함께 '3두 체제'로 회사를 운영하며 노련한 전문 경영을 더함. 신생 검색 기업 구글이 본격적인 사업 조직으로 도약하는 전환점.
2004년 8월 구글이 나스닥에 상장하며 기업공개를 단행. 일반적 투자은행 방식 대신 네덜란드식 경매(Dutch auction) 방식을 채택해 화제를 모았고, 상장으로 막대한 자금과 함께 세계적 주목을 받음. 당시 CEO였던 에릭 슈미트 체제에서 구글이 거대 기업으로 도약한 분기점.
2010년 에릭 슈미트가 재러드 코언을 영입해 기술과 지정학이 교차하는 문제를 연구하는 사내 싱크탱크 구글 아이디어스를 세움. 엔지니어와 연구자, 정책 전문가가 한데 모여 활동가와 독립 언론을 사이버 공격에서 지키는 일 등을 다룸. 뒷날 직소로 이어지는 조직의 출발점.
2011년 4월 약 10년간 맡아 온 구글 CEO직을 공동 창업자 래리 페이지에게 넘기고 집행 회장(executive chairman)으로 물러남. 일상적 경영은 페이지가 맡고 슈미트는 대외 관계·정책·인수합병 등 대외 업무에 집중. '3두 체제'를 마무리하고 창업자 주도 경영으로 복귀한 변화.
2017년 12월 에릭 슈미트가 알파벳 집행위원장에서 물러나 기술 자문(technical advisor)으로 역할을 바꾼다고 발표. 이사회에는 계속 남으면서 경영 일선에서 한 걸음 물러난 결정. 구글 창업 초기부터 16년 넘게 이어 온 핵심 경영 역할을 단계적으로 내려놓기 시작한 시점.
2016년 2월 16일 에릭 슈미트가 미디엄 글에서 구글 아이디어스를 기술 인큐베이터 직소로 확장한다고 발표함. '협력적 문제 해결이 최선의 해법을 낳는다'는 믿음을 담아 이름을 짓고, 폭력적 극단주의 대응·검열 차단·디지털 공격 완화를 사명으로 내세움. 알파벳의 자원을 활용해 더 정교한 제품을 만드는 독립 조직으로 거듭남.
2015년 10월 구글이 지주회사 체제로 개편되며 알파벳(Alphabet)이 출범, 에릭 슈미트가 집행위원장(executive chairman)을 맡음. 구글을 비롯한 여러 자회사를 거느린 새 구조에서 회사 전반의 방향 설정과 대외 역할을 담당. 구글 창업·성장기를 이끈 경영진의 역할이 지주회사 차원으로 이어진 단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