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세프 친선대사로 소말리아를 방문해 기근과 내전으로 피해를 입은 어린이와 의료·급식 현장을 둘러봄. 사망 약 네 달 전 이루어진 마지막 시기 해외 구호 활동 가운데 하나로, 귀국 후에도 소말리아의 인도주의 위기를 알리는 활동을 이어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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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세프 친선대사 임명 직후 가뭄과 내전으로 기근을 겪던 에티오피아를 방문함. 현지 긴급구호 사업을 둘러본 뒤 미국·캐나다·유럽 언론을 대상으로 집중적인 인터뷰를 이어가며 유니세프 현장 활동을 알림.
오드리 헵번, 유니세프 친선대사 임명
오드리 헵번이 유니세프 친선대사로 임명됨. 이후 1993년 사망할 때까지 아프리카·아시아·중남미의 아동 구호 현장을 방문하고, 모금·언론 인터뷰·연설을 통해 아동 권리와 긴급구호를 알리는 활동을 이어감.
오드리 헵번·안드레아 도티, 이혼
오드리 헵번과 안드레아 도티가 결혼생활을 마치고 이혼함. 신뢰도 높은 공개 자료에서 연도는 일치하지만 정확한 확정일은 일관되게 제시되지 않아 연도 단위로 기록함.
《로빈과 마리안》으로 장편영화 주연 복귀
리처드 레스터 감독의 《로빈과 마리안》이 개봉함. 오드리 헵번은 마리안 역으로 숀 코너리와 출연하며 1960년대 말 활동을 크게 줄인 뒤 약 9년 만에 장편영화 주연으로 복귀함.
루카 도티 출생
오드리 헵번과 안드레아 도티 사이에서 아들 루카 도티가 스위스 로잔에서 태어남. 헵번은 이후 상당 기간 영화 출연을 제한하고 두 아들과 가족생활에 집중함.
오드리 헵번과 이탈리아 정신과 의사 안드레아 도티가 스위스 모르주의 시청에서 민사 결혼식을 올림. 헵번은 이후 로마와 스위스를 오가며 가족생활에 더 많은 시간을 두고 영화 출연을 크게 줄임.
오드리 헵번·멜 페러, 결혼생활 끝내고 이혼
오드리 헵번과 멜 페러가 약 14년의 결혼생활을 마치고 이혼함. 자료에 따라 이혼 확정일을 11월 20일 또는 12월 5일로 다르게 제시하고 있어 날짜를 연도 단위로 기록함.
《어두워질 때까지》 뉴욕 개봉
테런스 영 감독의 스릴러 《어두워질 때까지》가 뉴욕에서 개봉함. 오드리 헵번은 시각장애인 수지 헨드릭스 역을 맡았으며, 이 연기로 다섯 번째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름. 당시 남편 멜 페러가 제작에 참여함.
마이 페어 레이디 개봉
조지 큐커 감독의 뮤지컬 영화 《마이 페어 레이디》가 뉴욕에서 개봉함. 오드리 헵번은 엘라이자 둘리틀 역을 맡았으며, 노래의 상당 부분은 마니 닉슨의 목소리로 더빙됨.
티파니에서 아침을 개봉
블레이크 에드워즈 감독의 《티파니에서 아침을》이 뉴욕에서 개봉함. 오드리 헵번은 홀리 골라이틀리 역을 맡았으며, 이 연기로 제34회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름.
숀 헵번 페러 출생
오드리 헵번과 멜 페러 사이에서 아들 숀 헵번 페러가 스위스에서 태어남. 헵번이 어머니가 된 첫 출산으로, 이후 가족생활과 경력 선택에 중요한 배경이 됨.
오드리 헵번과 배우·감독 멜 페러가 스위스 뷔르겐슈토크에서 결혼함. 두 사람은 무대 《Ondine》에서 함께 작업하며 관계를 이어갔고, 이후 영화와 제작 활동에서도 여러 차례 협업함.
《사브리나》 뉴욕·로스앤젤레스 개봉
빌리 와일더 감독의 《사브리나》가 뉴욕과 로스앤젤레스에서 개봉함. 오드리 헵번은 사브리나 페어차일드 역을 맡아 험프리 보가트·윌리엄 홀든과 출연했으며, 이 연기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름.
오드리 헵번, 《로마의 휴일》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수상
제26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로마의 휴일》의 앤 공주 역으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함. 장편 할리우드 주연 데뷔작으로 받은 수상으로, 국제 영화계에서의 위치를 굳힌 계기가 됨.
오드리 헵번, 《Ondine》으로 토니상 연극 여우주연상 수상
브로드웨이 연극 《Ondine》에서 타이틀롤을 맡아 1954년 토니상 연극 부문 여우주연상을 수상함. 같은 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과 토니상을 함께 받으며 영화와 무대 양쪽에서 주요 연기상을 획득함.
오드리 헵번, 브로드웨이 《Gigi》 주연으로 미국 무대 데뷔
뉴욕 풀턴 극장에서 개막한 연극 《Gigi》의 타이틀롤을 맡아 브로드웨이에 데뷔함. 공연은 219회 이어졌으며, 헵번은 이 작품으로 1952년 Theatre World Award를 받음.
전후 네덜란드를 다룬 영화 《Nederlands in zeven lessen》의 젊은 승무원 역으로 출연함. EYE Filmmuseum은 이 작품을 오드리 헵번의 첫 스크린 출연이자 유일한 네덜란드 영화 출연으로 기록함.
오드리 헵번, 암스테르담에서 소니아 가스켈에게 발레 수학
전쟁이 끝난 뒤 어머니와 함께 암스테르담으로 옮겨 발레리나 소니아 가스켈에게 발레를 배움. 이후 런던에서 무용가를 목표로 활동했으나 전쟁기 영양실조의 영향과 신체 조건 등으로 전문 발레리나 진로가 현실적이지 않다는 판단을 받으며 연기 쪽으로 활동 영역을 넓히게 됨.
독일 점령하 네덜란드에서 식량과 연료가 극도로 부족했던 ‘기아의 겨울’을 겪음. 당시의 영양실조와 전쟁 경험은 전후 건강과 발레 진로에도 영향을 미쳤으며, 1945년 연합군의 마나·차우하운드 식량 투하로 구호를 받은 민간인 가운데 한 명으로 기록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