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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3월 25일 마카오 베네시안 극장에서 열린 제9회 아시안 필름 어워드에서 배두나가 《도희야》로 여우주연상 수상. 학대받는 소녀를 보호하려다 마을의 폭력과 편견에 맞닥뜨리는 파출소장 영남의 연기로 수상.

2010년 3월 5일 열린 제33회 일본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배두나가 《공기인형》으로 우수 여우주연상 수상.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작품에서 감정을 갖게 된 공기인형 노조미 역으로 출연.

일본 아카데미는 우수상 수상자 가운데 최우수상 수상자를 별도로 선정. 그해 최우수 여우주연상은 《비욘의 아내》의 마쓰 다카코가 수상.

배두나

팽크허스트가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에서 78세로 사망함. 에티오피아의 독립을 지지해 온 공적을 기려 국장이 거행되었으며 현지에 안장됨. 여성 참정권 운동과 노동계급 공동체 활동, 예술·출판, 반파시즘 운동에 걸친 생애를 영국 밖의 연대 현장에서 마침.

오랫동안 에티오피아의 독립을 지원한 팽크허스트가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의 초청으로 아디스아바바에 이주함. 영국에서의 신문 발행을 마친 뒤에도 《에티오피아 옵서버》를 통해 이 나라의 사회와 문화를 소개했으며, 어머니와 아동의 생활 개선과 여성 의료시설을 위한 활동을 이어감. 반파시즘 연대가 에티오피아 현지에서의 출판과 복지 활동으로 연결된 전환이었음.

이탈리아의 에티오피아 침략과 점령에 반대하던 팽크허스트가 런던에서 《뉴 타임스 앤 에티오피아 뉴스》를 창간함. 신문은 인접 국가의 통신원 등을 통해 에티오피아 저항 세력의 소식을 전달하고 이탈리아의 침략을 비판했으며, 암하라어 판 일부는 점령지 안으로 반입됨. 스페인 내전, 나치 독일과 파시스트 이탈리아의 탄압 등도 다루며 반파시즘을 위한 국제적 정보망을 형성함.

실비아 팽크허스트

《워커스 드레드노트》에 실린 기사들이 전시 국방 관련 법률을 위반했다는 혐의로 팽크허스트가 런던에서 징역 6개월을 선고받음. 여성 참정권 운동 이후에도 노동자와 공산주의 운동의 입장을 신문으로 전하던 과정에서 받은 처벌이었음. 수감은 편집 활동을 제약했지만 신문 발행은 지지자들의 지원 속에서 계속되었음.

실비아 팽크허스트

제1차 세계대전 발발로 동런던 가정의 생계가 흔들리고 독일산 장난감 수입이 끊기자 팽크허스트와 동런던 서프러제트 연맹이 노먼 로드에 장난감 공장을 세움. 여성들에게 지역의 통상적인 저임금보다 높은 임금을 지급하며 목제 장난감과 인형 등을 생산했고, 노동자들의 디자인과 예술가들의 협력도 활용함. 일하는 어머니들이 아이를 맡길 수 있는 보육 공간을 함께 마련하여 고용과 돌봄을 연결함.

실비아 팽크허스트

《복수는 나의 것》이 국내 개봉함. 누나의 신장 이식 비용을 마련하려는 류와 여자친구 영미의 유괴 계획이 비극으로 이어지고, 아이의 아버지 동진이 복수에 나서는 과정을 다룸. 신하균이 류, 송강호가 동진, 배두나가 영미 역으로 출연함. 박찬욱은 감독과 공동각본을 맡아 계층 간 격차와 폭력의 연쇄를 다룸. 《올드보이》와 《친절한 금자씨》로 이어지는 복수 연작의 첫 작품.

동런던 서프러제트 연맹이 실비아 팽크허스트의 편집으로 《우먼스 드레드노트》 특별 예고호를 발행함. 정규 제1호는 3월 21일에 나왔으며 여성 참정권과 지역 노동자의 요구를 알리는 지면이 마련됨. 신문은 운동의 변화와 함께 1917년 《워커스 드레드노트》로 개칭되어 사회주의·반전·공산주의 논쟁을 다루는 매체로 이어졌음.

실비아 팽크허스트

여성 참정권을 요구하는 활동 과정에서 팽크허스트가 1913~1914년 여덟 차례 체포됨. 수감 중에는 단식을 통해 항의했으며 교도소의 강제급식을 겪음. 집회와 직접행동에 대한 처벌은 투표권을 부정당한 여성들의 항의와 국가의 통제 사이 충돌을 심화시켰고, 팽크허스트의 정치 활동도 반복적인 구금과 건강 악화 속에서 이어졌음.

기업 기부와 보조금 감소가 일반 운영기금과 참여 공동체의 자금 조달에 영향을 미치자 아웃리치가 2025년 12월 회차를 축소된 재원과 활동으로 운영한다고 발표함. 일반기금에서 인턴십 비용을 지원할 수 없게 되었고, 참여 공동체가 인턴 활동비와 최소 운영비를 확보해야 하는 구조가 됨. 운영진은 일부 프로그램 활동을 줄이거나 단순화하면서 회차 자체는 유지하기로 함. 2026년 5월 회차 모집에서도 같은 재정 제약을 이어가며, 인턴 한 명당 최소 8,000달러의 후원을 참여 공동체에 요구함.

팽크허스트가 잉글랜드 중부·북부와 스코틀랜드의 산업 지역을 여행하며 도자기·사슬·신발·방적 등 여러 업종에서 일하는 여성들을 관찰하고 그렸음. 빠르게 마르는 과슈를 활용해 실제 작업 조건 속에서 인물과 노동을 묘사했으며, 현장에서 조사한 임금과 공정에 관한 글도 작성함. 이 기록은 이후 잡지와 참정권 신문에 실려 여성의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조건을 알리는 자료가 되었음.

아웃리치가 누적 1,000명 이상의 인턴을 지원하는 규모에 도달하고 여섯 나라의 현지 행사와 세 차례 온라인 행사를 열어 성과를 기념함. 2023년에는 40개 오픈소스 공동체와 191명의 멘토가 참여했고, 인턴 121명에게 총 84만7,000달러의 활동비가 지급됨. 멘토 가운데 30명은 과거 아웃리치 인턴이었으며, 지원받은 참여자가 다음 세대의 기여자를 지도하는 역할로 돌아옴. 같은 해 기여 기간에 참여하도록 승인된 1,936명에 비해 인턴 자리는 제한되어, 확대된 수요와 재원 사이의 격차도 나타남.

맨체스터에서 미술을 공부한 팽크허스트가 장학금을 받아 런던 왕립예술대학에서 수학하기 시작함. 1906년까지 이어진 교육으로 회화와 디자인의 기반을 쌓았으며, 이후 그 기술을 여성 참정권 운동의 배지·현수막·포스터 제작에 활용함. 예술가로서의 진로와 정치 활동을 함께 모색하던 시기였음.

리처드 스톨먼의 자유 소프트웨어 재단 이사회 복귀 이후 아웃리치 운영진이 참가자의 안전에 대한 우려를 제기하고 재단의 후원자·멘토 참여를 중단함. 운영진은 재단의 재정 후원을 받는 별도 공동체들에 대해서도 행동 규범 집행과 스톨먼의 인턴 접촉 여부를 확인했으나, 재단 자금으로 이루어지는 후원은 받지 않기로 함. 이미 참여를 준비하던 한 공동체의 인턴 자금 공백에는 컨서번시가 임시 후원을 제공함. 해당 결정은 아웃리치 운영진의 안전·책임성 판단에 따른 조치였음.

코로나19 확산으로 학교·보육시설과 대학 기숙사가 닫히고 인터넷 이용이 중단되는 일이 발생하자 아웃리치가 임시 지원 정책을 발표함. 2020년 5~8월 회차에서 영향을 받은 인턴의 요구 활동 시간을 주 30시간으로 낮추고, 멘토에게 프로젝트 범위를 조정할 수 있도록 안내함. 학사 일정 변경을 겪는 학생에게는 수업·시험 기간 주 10시간 활동을 허용하는 후속 정책도 적용했으며 활동비는 감액하지 않음. 원격 인턴십에서도 돌봄과 생활 조건에 따른 불평등이 발생한다는 현실에 대응한 조치였음.

아웃리치가 전 세계의 여성·트랜스젠더 남성·젠더퀴어 참여자를 지원하던 범위에 더하여, 미국 기술산업에서 과소대표된 인종·민족 집단의 미국 국민과 거주자를 성별에 관계없이 포함한다고 발표함. 대상에는 흑인, 라틴계, 아메리카 원주민, 알래스카 원주민, 하와이 원주민과 태평양 섬 주민 등이 포함됨. 기업의 다양성 자료와 오픈소스 공동체의 경험을 배경으로, 성별에 초점을 맞춘 접근에서 여러 종류의 구조적 진입 장벽을 다루는 방식으로 확장함.

GNOME에서 출발한 여성 참여 프로그램에 여러 자유·오픈소스 조직이 합류하여 공동체를 넘는 인턴십으로 확대됨. 앞선 2012년 5월 회차에는 소프트웨어 프리덤 컨서번시가 Twisted 프로젝트의 인턴 한 자리를 지원하며 참여했음. 2013년의 확대는 지원자가 하나의 데스크톱 프로젝트에 국한되지 않고 여러 개발 공동체에서 멘토와 일할 기회를 갖게 한 변화였음.

GNOME이 여성 참여 확대 프로그램을 재개하여 여덟 명의 인턴이 2011년 3월까지 멘토와 함께 활동하도록 함. 마리나 주라힌스카야가 조직을 맡았고 구글·GNOME 재단·콜라보라가 활동비를 후원함. 남반구 학생의 여름방학에 맞춘 회차였지만 학생만으로 자격을 제한하지 않았으며, 코딩 외에 디자인·문서 등의 기여도 포함함. 이후 연중 두 차례 운영되는 인턴십의 기반이 됨.

아웃리치

마리나 주라힌스카야와 한나 월러크가 2006년 참가자 여섯 명의 경험을 다시 조사함. 참가자들은 기술 분야의 일을 이어가고 멘토링을 긍정적으로 평가했지만, 여러 작업이 GNOME 본류에 반영되지 않았으며 학업과 생업 때문에 지속 기여가 어려웠음. 후속 프로그램은 준비 기간과 멘토 연결을 늘리고, 작은 기여부터 팀 작업에 참여하도록 하며, 디자인·문서·마케팅까지 활동 범위를 넓히는 방향을 마련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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