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4월 8일 파키스탄의 중재로 미국과 이란이 2주간의 휴전에 합의. 4월 5일 제시된 45일 2단계 휴전안을 이란이 거부하고 자체 10개항 평화안을 제안한 끝에 성립한 합의로,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을 재개방하기로 함. 그러나 휴전은 선언 직후부터 양측의 거듭된 위반으로 흔들렸고, 4월 21일 트럼프가 휴전을 무기한 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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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호르무즈 해협의 선박 공격에 대한 보복으로 이란 남부 해안의 군사 표적을 대규모 공습하고, 이란이 이라크·요르단·카타르·쿠웨이트·바레인의 미군기지를 미사일과 드론으로 공격함. 이란은 미국 공습으로 군인과 민간인이 사망했다고 발표했으며, 미국은 결혼식장 민간인 피해 주장을 조사하겠다고 밝힘. 8월의 상대적 소강 뒤 7월 이후 최대 규모로 전투가 재격화됨.
2026년 3월 21일 미국이 벙커버스터 폭탄으로 이란의 나탄즈 핵시설을 공습. 러시아는 이를 "국제법의 노골적 위반"으로 규탄했고,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핵 사고 위험을 피하기 위한 군사적 자제를 촉구. 이에 이란은 이스라엘 남부 디모나의 원자력연구센터를 겨냥해 보복하며 핵 시설을 둘러싼 상호 공격이 격화.
2026년 6월 17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이 군사작전 중단과 최종 평화 합의 협상을 위한 60일짜리 양해각서에 서명함. 트럼프는 프랑스 베르사유궁에서 문서에 서명했고 페제시키안은 별도로 서명했으며, 양해각서는 호르무즈 해협의 통항 재개, 미국의 이란 항구 봉쇄 해제와 제재 완화, 이란의 고농축 우라늄 희석 등을 규정함. 항구적 종전이 아니라 이행 순서와 세부 조건을 추가로 협상하는 잠정 합의.
2026년 3월 초 레바논의 헤즈볼라가 하메네이 사살에 대한 보복으로 이스라엘을 향해 로켓과 미사일 공격을 개시. 헤즈볼라는 1년 넘게 이어진 이스라엘의 공격에 맞선 "방어 행위"라고 주장. 이스라엘군은 이를 헤즈볼라의 공식 선전포고로 규정하고 레바논 남부·베이루트·베카 계곡을 타격하며 전선이 레바논으로 확대.
6월 24일 미국 동부시간 새벽, 트럼프 대통령이 휴전 발효를 선언하고 양측에 위반 자제를 요청하면서 12일간의 전쟁이 사실상 종료됨. 발효 초기 양측의 산발적 미사일 교환과 위반 공방이 있었으나, 트럼프의 직접 개입 속에 휴전이 유지됨. 전쟁 결과는 '비결정적'으로 평가됐으며, 이듬해 이란-이스라엘 분쟁 재격화의 전사로 남음.
개전 수 시간 만에 이란이 "진실한 약속 IV" 작전으로 이스라엘 텔아비브·하이파와 페르시아만 일대 미군 기지·친미 아랍국가를 향한 미사일·드론 공격을 개시. 바레인·쿠웨이트·아랍에미리트·사우디아라비아·이라크의 미군 시설과 영사관 등이 표적이 됨. 동시에 호르무즈 해협 통항이 사실상 마비되어 오일 탱커를 포함한 150여 척의 화물선이 발이 묶이며 세계 연료 위기를 촉발.
2026년 3월 8일 사망한 알리 하메네이의 차남 모즈타바 하메네이가 이란의 신임 최고지도자로 지명됨. 개전 첫날 공습으로 최고지도자가 사살된 이후 권력 공백을 메우기 위한 신정 체제의 후계 조치로, 전쟁 와중에 이란 지도부가 재편됐음을 보여준 사건.
2026년 1월 이란의 반정부 시위 유혈 진압을 계기로 미국·이란 긴장이 고조되던 가운데, 미국이 2003년 이라크 침공 이후 최대 규모로 항공모함 전단과 수백 대의 항공기를 중동에 집결시킴. 트럼프 행정부는 이란이 핵·미사일 프로그램으로 미국과 그 이익을 위협한다고 비난하면서도 외교를 선호한다는 입장을 유지. 오만에서 시작된 미국·이란 간접 협상이 비엔나 후속 회담을 앞둔 상황에서 전쟁의 전조가 된 군사적 긴장.
국회미래연구원은 「석유화학 산업의 구조적 전환과 한국의 미래전략」을 발간해 현재의 위기를 일시적 불황이 아니라 기존 성장모델의 구조적 한계로 진단하였다. 보고서는 단순한 NCC 총량 감축보다 개별 설비를 감축·전환·유지 대상으로 구분하고, 정유·석유화학 통합과 반도체·배터리·자동차·인공지능 관련 전방산업 수요에 맞춘 소재 전환을 병행할 것을 제안하였다. 이 진단은 2026년 9월 현재 한국 석유화학 산업의 구조전환 과제를 정리한 기준점이 되었다.
정부는 여천NCC, 롯데케미칼, 한화솔루션, DL케미칼의 관련 사업과 설비를 연계해 에틸렌 설비 2기, 연산 139만 톤과 저부가 범용 제품 설비를 감축하는 여수 지역 사업재편계획을 승인하였다. 남은 생산기반은 의료용 저밀도폴리에틸렌, 의료·식품·위생용 폴리올레핀 엘라스토머 등 고부가 제품으로 전환하도록 설계되어, 국내 최대 석유화학단지에서 구체적인 설비 감축이 시작되는 계기가 되었다.
국내 석유화학 기업들은 정부와의 민관 협의 아래 연간 270만370만 톤, 국내 NCC 생산능력의 약 1825%를 감축하고 고부가·친환경 제품으로 전환한다는 자율협약을 체결하였다. 기업별 이해관계를 넘어 산업 전체의 NCC 감축 목표가 처음 명시되었고, 정부는 기업의 자구노력과 실질적인 구조조정을 전제로 금융·세제·연구개발·지역 지원을 연계한다는 원칙을 제시하였다.
정부는 롯데케미칼 대산공장을 분할해 HD현대케미칼과 통합하고, 롯데의 연산 110만 톤 규모 NCC와 중복·저수익 유도품 설비를 중단하는 대산 지역 사업재편계획을 승인하였다. 정유와 석유화학 설비의 통합효율을 높이는 한편 경량·고탄성 소재, 배터리 전해액용 유기용매, 바이오 나프타 기반 제품으로 전환하는 계획으로, 산업 차원의 감축 목표가 개별 단지의 실행계획으로 옮겨간 첫 사례가 되었다.
「석유화학산업의 경쟁력 강화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이 2025년 12월 30일 제정·공포되고 2026년 4월 21일 시행되었다. 법은 생산설비 합리화와 사업재편, 고부가·저탄소 기술개발, 고용안정과 지역경제 지원의 근거를 마련하고, 필요한 범위에서 기업 간 정보교환과 공동행위, 기업결합 절차의 특례를 두어 산업 전반의 동시적인 구조조정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였다.
세계적 공급과잉과 중국 수요 둔화로 국내 NCC의 가동률이 낮아지고, 에틸렌 가격에서 나프타 가격을 뺀 스프레드가 통상적인 손익분기점으로 거론되는 톤당 300~350달러를 지속적으로 밑돌기 시작하였다. 나프타를 수입하는 한국의 원료비 열위와 범용 제품의 높은 수출 의존도가 기업 실적에 직접 반영되면서, 업황 순환을 넘어 생산구조 자체의 수익성 문제가 표면화되었다.
정부는 중국과 중동의 대규모 증설, 범용 제품의 공급과잉, 국내 기업의 수익성 저하를 구조적 문제로 진단하고 사업 매각·인수합병·설비 폐쇄를 포함한 사업재편과 고부가·친환경 전환 지원방안을 발표하였다. 2016년 대책보다 산업 전반의 설비 조정과 지역경제 영향을 폭넓게 다뤘지만, 구체적인 NCC 감축 규모와 기업별 실행계획은 이후 민관 협의와 사업재편 승인 단계에 남아 있었다.
한국 석유화학 산업의 수출액이 447억 달러를 기록해 국내 수출 품목 가운데 4위에 올랐고, 연간 에틸렌 생산능력은 약 900만 톤 규모에 도달하였다. 대형 NCC와 범용 제품의 대중국 수출을 결합한 성장 모델이 규모 면에서 정점에 이른 시기를 보여준다. 한편 미국의 셰일가스 기반 에탄 설비 확대와 중국의 자급률 상승이 동시에 진행되면서 이후 원가와 시장 양쪽에서 압력이 커질 조건도 형성되고 있었다.
세계 에틸렌 생산능력이 약 4,500만 톤 증가했고, 이 가운데 약 2,500만 톤이 중국에서 추가되었다. 중국은 대규모 정유·석유화학 통합설비를 바탕으로 수입 의존국에서 자급화와 수출 경쟁을 병행하는 국가로 전환하였다. 한국에서도 이전 호황기에 결정된 증설이 가동되면서 국내 생산능력이 수요보다 빠르게 증가해, 중국 수요에 기대던 수출 구조와 범용 제품의 공급과잉이 동시에 압박받는 상황이 심화되었다.
삼성종합화학의 대산 나프타분해공장이 상업가동에 들어가면서 울산·여수·대산을 축으로 하는 국내 3대 석유화학 생산거점 체제가 형성되었다. 서해안의 입지와 대규모 설비를 바탕으로 수도권 수요와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 수출시장에 대응할 수 있는 기반이 확대되었고, 1990년 투자자유화 이후의 설비 증설 흐름이 구체적인 생산능력으로 전환되었다.
울산석유화학단지가 준공되며 나프타분해시설과 계열 공장을 연결한 국내 최초의 대규모 석유화학 일관생산체계가 확립되었다. 1967년 정부의 단지 조성계획 수립과 1968년 기공 이후 기초유분에서 합성수지·합성섬유 원료 등 유도품으로 이어지는 생산 기반이 형성되었고, 이후 한국 석유화학 산업의 대형화와 수출산업화를 가능하게 한 출발점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