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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6월 28일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내무총장 겸 국무총리 대리에 정식 취임함. 연통제와 교통국을 조직하고 《독립신문》 발행을 주도하며 통합 임시정부 수립을 이끎. 초기 임시정부 운영의 실질적 중심 역할.

안창호

1913년 5월 13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민족운동단체 흥사단을 창립함. 청년학우회를 확대 조직해 안창호 등 발기인 6인이 창단발기인대회를 개최하고 안창호를 전권위원으로 선출함. 무실역행과 인격 수양을 통한 민족 역량 강화를 지향한 흥사단 운동의 시작.

안창호

안창호와 최남선 등이 신민회의 외곽 청년 조직으로 청년학우회를 창립함. 무실·역행 등의 덕목을 내건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청년 수양 단체. 1910년 한일병합과 105인 사건으로 해산되었으나 그 이념이 흥사단으로 계승된 원류.

안창호 중앙총무

한삼현·윤재명·정인숙·윤성운·전재풍·이덕환·최유문 등 평양 지역 인사들이 1908년 평양 마산동에 평양자기제조주식회사를 설립하고, 이승훈이 초대 사장을 맡음. 조선인용 식기 생산과 근대 요업기술의 확산을 목표로 한 식산흥업 사업. 신민회의 산업진흥 구상과 맞닿은 근대 기업이지만 안창호를 직접 발기인으로 단정할 근거는 확인되지 않음.

안창호 설립 주도

1894년 평안남도 강서군 동진면 탄포리의 교회가 판동교회에서 분립함. 대한예수교장로회 계열 기록은 안창호를 전도인으로, 서순화·김용기·오하준을 창설 교인으로 전함. 뒤에 당회를 조직하고 지역 장로교회로 활동한 사실이 관보와 당시 신문 자료에서 확인됨.

안창호

3·1운동 이후 안창호가 대한인국민회 원동위원 자격으로 상하이에 도착해 대한민국 임시정부 활동에 참여함. 연통제와 교통국 설치, 독립운동 세력의 임시정부 통합 등을 추진하며 임시정부의 조직 기반을 정비함.

안창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