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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정부가 전라도 전주성 안에 우두국(牛痘局)을 설치하고 공식 종두를 시행함. 지석영이 우두법 보급 활동을 이어 가는 가운데, 우두법이 개인적 시술을 넘어 지방 행정과 결합한 초기 사례. 조선에서 국가가 인정한 종두 시행의 출발점.

종두법

성공회대학교 동아시아연구소 전갑생 연구교수가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에서 수집한 독도 관련 미공개 문서 222쪽을 동북아역사재단에 기증하고, 재단이 이를 공개. 자료에는 1948년 6월 독도 폭격 사건 뒤 미 극동공군사령부(FEAF)가 작성한 조사보고서가 포함되었으며, 보고서는 1947년 9월 당시 독도가 “한국의 일부(a part of Korea)”로 명확히 확립돼 있었다고 기록. 함께 공개된 문서철에는 울릉도사 공식 문서와 주민 진술서 등도 포함.

제33차 세계보건총회가 결의 WHA33.3을 채택해 천연두의 세계적 박멸을 선언함. 광범위한 예방접종과 함께 환자 발생 감시, 접촉자 추적, 환자 주변 집중 접종과 봉쇄 전략을 결합한 국제 박멸 사업의 성과. 천연두는 인류가 세계적으로 박멸을 공식 확인한 최초의 감염병.

지석영이 종두 지식과 시술 경험을 바탕으로 『우두신설』을 저술함. 상·하 2권 1책으로, 제너의 우두종법 발견과 종두법 시행, 한역 종두서, 우두 치료법, 두묘 제조·보존법, 종우 사양법과 채장법 등을 정리한 저술. 조선에서 간행된 최초의 종두서이자 우두법의 지식과 기술을 체계화한 문헌.

종두법

지석영이 제2차 수신사 김홍집의 수행원으로 일본 도쿄에 건너가 우두종계소에서 종두 기술을 익힘. 두묘의 제조·저장법과 송아지 사양법, 채장법을 배우고 두묘 50병을 확보해 귀국함. 수입한 두묘에만 의존하지 않고 국내에서 종두 재료를 마련·보급할 수 있는 기술적 기반의 형성.

종두법

부산 제생의원에서 우두법을 배운 지석영이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처가가 있는 충주에 들러 약 40명에게 우두를 접종함. 조선인이 공개적으로 시행한 종두법의 초기 사례이자, 국내 우두 보급 과정에서 널리 알려진 출발점. 이후 서울에서도 종두를 시행하며 우두법 보급 활동을 이어감.

종두법

지석영이 일본 해군이 부산에 설치한 제생의원에서 원장 마쓰마에 유즈루와 군의 도즈카 세이사이에게 약 두 달간 우두 접종법을 배움. 두묘와 종두침 두 개를 얻어 서울로 돌아가던 길에 충주의 처가에 들러 약 40명에게 우두를 접종함. 조선인에 의한 공개적 우두 접종의 초기 사례이자 이후 국내 종두 보급의 출발점.

종두법

정약용이 천연두 예방을 위해 연구한 종두 관련 내용을 『마과회통』 권말 부록 『종두심법요지』에 수록함. 청나라 의서에 실린 『유과종두심법요지』와 『정씨종두방』을 바탕으로 내용을 재편한 문헌. 조선 후기 지식인 사회에서 천연두 예방을 위한 인두 접종의 방법과 필요성이 체계적으로 정리된 초기 사례.

종두법

에드워드 제너가 『우두의 원인과 효과에 관한 연구』를 자비로 출간함. 우두 감염 또는 우두 접종이 천연두에 대한 방어 효과를 보인다고 판단한 사례들을 정리한 저술. 우두법의 방법과 근거를 널리 알리며 이후 유럽 각지의 접종 확산에 영향을 준 문헌.

종두법

에드워드 제너가 우두에 감염된 젖 짜는 여성 세라 넬름스의 병변에서 채취한 물질을 여덟 살 제임스 핍스에게 접종함. 핍스는 가벼운 증상을 겪은 뒤 회복했으며, 제너는 약 6주 뒤인 7월 천연두 물질을 이용한 인두 접종으로 예방 효과를 시험함. 핍스에게 천연두가 발병하지 않으면서 우두 감염이 천연두에 대한 방어 효과를 가질 수 있다는 관찰의 핵심 사례. :contentReference[oaicite:1]{index=1}

메리 워틀리 몬터규가 런던에서 딸에게 인두 접종을 시행하고 이를 공개적으로 알림. 오스만 제국에서 접한 예방 관행을 영국 사회에 소개한 사례로, 인두법을 둘러싼 의학적·사회적 관심 확산의 계기.

종두법

메리 워틀리 몬터규와 캐롤라인 왕세자비의 지원 아래 영국에서 죄수와 보호아동을 대상으로 인두 접종 시험이 시행됨. 접종 뒤 천연두에 노출시킨 결과 대상자들이 발병하지 않으면서, 영국 왕실과 상류층의 인두법 수용을 뒷받침한 사례.

종두법

오스만 제국 주재 영국 대사 부인 메리 워틀리 몬터규가 콘스탄티노플에서 관찰한 인두 접종 관행을 아들 에드워드에게 시행함. 천연두 환자의 물질을 이용해 가벼운 감염을 유도하고 이후 면역을 얻으려는 인두법의 사례. 몬터규가 이 경험을 영국 사회에 알리고 확산을 추진하는 기반.

종두법

3건

배재고 야구부 선수단과 교직원·학부모 등이 광주제일고를 찾아 5·18민주화운동 비하 및 지역 비하성 응원 구호 논란에 대해 공식 사과. 배재고 야구부 감독은 학생들을 제대로 지도하지 못한 책임을 인정하고 사과문을 발표. 방문단은 이후 학생독립운동기념탑 참배, 국립5·18민주묘지 참배, 희생자들 추모.

https://www.youtube.com/watch?v=SrUBrq3UEJU

배재고 야구부 5·18 조롱 응원 논란

이병태 대통령 직속 규제합리화위원회 부위원장이 사퇴 의사를 전달했고, 청와대가 이를 수용함. 배재고 야구부의 광주제일고 상대 경기 중 지역 비하성 응원 구호와 관련해 “5·18이 성역이 됐다”, “북한의 모습”이라고 주장한 뒤 논란이 확산. 청와대는 사안의 엄중성을 이유로 사퇴를 권고했으며, 이병태는 약 3개월간의 부위원장직을 마무리.

배재고 야구부 5·18 조롱 응원 논란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이 사임서를 제출하고 회장직에서 물러남. 정몽규는 2026 FIFA 북중미 월드컵을 앞둔 5월 29일 대표팀과 협회를 둘러싼 논란의 책임을 언급하며 대회 뒤 사퇴하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음. 2013년 제52대 대한축구협회장 취임 이후 이어진 약 13년 5개월의 재임 종료.

정몽규 회장 인사말 전문

대한축구협회장직을 내려놓으며 여러분께 드리는 마지막 인사입니다.

국민 여러분, 그리고 축구인 여러분.

그동안 대한민국 축구를 향해 보내주신 뜨거운 사랑과 질책 모두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대한축구협회장이라는 중책을 맡는 동안, 대한민국 축구의 발전과 영광만을 바라보며 달렸습니다. 때로는 기대에 부응했고, 때로는 깊은 실망을 안겨드리기도 했습니다.

모든 영광과 성과는 선수들과 팬 여러분 덕분이며, 모든 부족함과 과오는 오롯이 저의 책임입니다.

이제 저는 회장직에서 물러나, 한 명의 열성적인 축구팬으로 돌아가 한국 축구를 응원하겠습니다. 대한민국 축구는 언제나 그랬듯, 수많은 시련을 넘어 다시 한 번 높이 비상할 것이라 확신합니다.

그간의 과분한 성원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3건

대흉작에 따른 재정난, 교내 갈등과 사고, 마적의 습격, 일제의 가중되는 탄압이 겹치며 신흥무관학교 폐교. 1911년 신흥강습소로 출발한 독립군 양성기관의 약 9년 운영 종료.

폐교 뒤 지청천은 사관생도 약 300명을 이끌고 안도현 삼림지대로 이동해 홍범도 부대와 연합. 신흥무관학교 출신 인력은 이후 여러 독립군 부대와 군정 조직에서 활동하며 만주 무장 독립운동의 인적 기반 형성.

일제와 중국 군경의 합동 탄압을 피해 신흥무관학교가 안도현 밀림 지대로 이동. 지청천·김동삼 등은 소속 인력과 함께 제2의 군사기지 구축과 독립전쟁 준비를 추진.

그러나 피난지에서도 학교 운영을 지속하기 어려워 약 한 달 뒤인 1920년 8월경 해산. 폐교 뒤 생도와 교관 인력은 독립군 부대로 편입. ```

일제와 장쭤린 군벌 측 중국 관헌이 합동수색대를 편성해 신흥무관학교와 한족회 등 서간도 독립운동 기지를 습격하고 독립운동가를 체포·살해.

1920년 1월의 한족회 해산·학교 폐쇄 명령 뒤 탄압이 무력 작전으로 확대된 시점. 신흥무관학교의 안도현 이동과 운영 종료로 이어진 직접적 배경이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