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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로버트 오펜하이머와 하틀랜드 스나이더가 충분히 무거운 별이 에너지원 소진 뒤 계속 붕괴하는 과정을 일반 상대성이론의 장방정식으로 계산한 논문을 발표함. 이상화된 압력 없는 별의 모형에서 함께 움직이는 관찰자에게 붕괴가 유한한 고유시간 안에 진행되는 반면, 먼 관찰자에게는 표면이 중력반지름에 점근하는 것으로 나타남을 계산함. 후대에 블랙홀 형성을 설명하는 고전적 중력붕괴 모형으로 자리잡은 연구.

로버트 오펜하이머 일반 상대성이론

일반 상대성이론의 정적 구형 우주 해가 작은 교란에도 균형을 잃고 팽창이나 수축으로 벗어난다는 점을 증명. 정적 우주가 물리적으로 유지될 수 없음을 보임으로써 팽창 우주 모형에 이론적 근거를 더함. 이 논의가 알려지자 르메트르가 자신의 1927년 결과를 그에게 알려오는 계기가 됨.

일반 상대성이론

알렉산드르 프리드만의 논문 「공간의 곡률에 대하여」가 『Zeitschrift für Physik』에 접수됨. 아인슈타인 장방정식에서 우주의 곡률 반지름이 시간에 따라 증가하거나 주기적으로 변할 수 있는 해를 제시해, 정적 우주만을 가정했던 초기 상대론적 우주론을 넘어 팽창·수축하는 우주가 일반 상대성이론 자체에서 가능함을 보인 성과.

일반 상대성이론

프린시페와 소브랄에서 얻은 건판 측정값을 종합해, 태양 가장자리 근처 별빛의 휘어짐이 일반 상대성이론의 예측과 부합한다고 발표함. 채택된 두 주요 측정 결과는 약 1.98초각과 1.61초각으로, 아인슈타인의 예측값 약 1.75초각을 지지함. 이튿날부터 영국과 국제 언론이 대대적으로 보도해 아인슈타인이 세계적 명사가 되는 전환점이 됨.

일반 상대성이론

프랭크 다이슨이 조직하고 아서 에딩턴·찰스 데이비슨 등이 참여한 영국 원정대가 프린시페와 브라질 소브랄에서 개기일식을 관측해 태양 근처 별빛의 편향을 측정함. 세 관측 자료 중 두 자료가 일반 상대성이론의 예측과 부합했고 한 자료는 초점 문제로 신뢰도가 낮다고 판단한 결과. 1919년 11월 공동학회 발표 뒤 일반 상대성이론과 아인슈타인이 세계적 주목을 받은 검증 사건.

일반 상대성이론

아인슈타인이 「일반 상대성이론에 대한 우주론적 고찰」에서 일반 상대성이론을 우주 전체에 적용하며 장방정식에 우주상수 Λ를 추가하고 균일한 정적 우주 모형을 제시함. 당시 정적이라고 여겨지던 우주를 상대론으로 기술하려는 시도였으며, 이후 비정적 우주 해와 우주 팽창 논의의 출발점 가운데 하나가 됨.

아인슈타인이 선형화한 장방정식의 근사해를 다룬 논문에서 중력장의 교란이 빛의 속도로 파동처럼 전파될 수 있음을 제시함. 1916년 계산에는 뒤에 수정된 요소가 있었으나 중력파를 수학적으로 다룬 최초의 체계적 이론 작업. 이후 이론적 정교화와 간접·직접 관측으로 이어진 일반 상대성이론의 핵심 예측.

아인슈타인이 종합 논문 "일반 상대성이론의 기초(Die Grundlage der allgemeinen Relativitätstheorie)"를 1916년 3월 20일 학술지 안날렌 데어 피지크에 제출함. 등가원리부터 장방정식까지 이론 전체를 체계적으로 정리해 같은 해 제49권 제7호에 게재된 집대성 논문. 약 10년에 걸친 연구를 종합해 이후 상대론 연구의 표준 참고 문헌이 된 저작.

1915년 말 구대칭 질량 주위의 중력장을 기술하는 아인슈타인 장방정식의 첫 엄밀해를 구했고, 아인슈타인이 1916년 1월 13일 프로이센 학술원에 이를 발표함. 이 해에서 오늘날 슈바르츠실트 반지름으로 불리는 척도가 나오며, 후대의 좌표 확장과 인과구조 분석을 거쳐 이 경계가 사건의 지평선으로 이해됨. 블랙홀의 수학적 토대를 놓은 이정표.

일반 상대성이론

아인슈타인이 논문 「중력의 장방정식」으로 일반 상대성이론의 최종 장방정식을 프로이센 과학 아카데미에 제출함. 물질·에너지 분포와 시공간 곡률을 대응시키는 일반 공변 형태의 방정식을 완성한 사건으로, 1907년 등가원리 착상에서 시작된 일반 상대성이론의 형성이 이론적으로 완결된 핵심 시점.

일반 상대성이론

아인슈타인이 새 중력 이론으로 수성 근일점의 이상 이동을 계산해 프로이센 과학 아카데미에 보고함. 뉴턴 역학으로 설명되지 않던 100년당 약 43초의 세차를 이론값과 일치시킨 결과. 이론이 관측 사실을 정량적으로 설명한 첫 성공으로, 완성 직전 이론에 결정적 자신감을 준 사건.

아인슈타인이 수학자 마르셀 그로스만과 함께 텐서 해석과 리만 기하학을 중력에 응용한 초안 이론(엔트부르프)을 발표함. 중력장을 시공간의 계량 텐서로 기술하는 틀을 세웠으나 장방정식이 일반 공변성을 완전히 갖추지 못한 미완의 단계. 최종 장방정식으로 나아가는 핵심 징검다리.

일반 상대성이론

베른 특허국에 재직하던 아인슈타인이 자유낙하하는 사람은 자신의 무게를 느끼지 못한다는 통찰에 도달함. 가속에 의한 관성력과 중력이 국소적으로 구별되지 않는다는 등가원리로, 훗날 스스로 "생애 가장 행복한 생각"이라 회고한 착상. 중력을 시공간의 기하학으로 다루는 일반 상대성이론의 출발점.

군포시가 경기대학교 전통문화콘텐츠연구소에 의뢰해 제작한 《군포시 지명유래 및 씨족역사》가 안상호의 왕실 진료 경력과 함께 고종 사망 당시 독살 가담 의혹을 기록함. 자료는 관련 자료 부족을 이유로 진위 판단을 유보함.

정구충이 《한국 의학의 개척자》에서 의친왕에게 안상호가 고종 독살 의혹을 받게 된 경위를 물었고, 의친왕이 이를 당시 민중의 오해와 망국의 울분에서 비롯된 것으로 설명했다고 기록함. 사건 당시 기록이 아니라 후대에 정리된 전언으로, 안상호의 독살 가담설을 부인하는 기록이라는 성격임.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가 안상호의 일본인 배우자와 자녀들을 소개하며 그의 가정을 ‘일선동체’와 ‘내지화’의 성공 사례로 선전함. 기사에서 안상호는 자신을 일본 사람과 같다고 표현하고 조선식 생활과 조선인 사회에서 거리를 두고 있다고 밝힘.

내선인 융화와 관민 교정, 식산흥업 장려를 표방한 대정친목회 창립 간부진에서 평의원으로 이름을 올림. 민족문제연구소는 무단통치기에 결성된 이 단체의 성격과 안상호의 평의원 참여를 근거로 명백한 친일 행위로 평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