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농무부의 DDT 사용 축소 시작
미국 농무부가 자체 방제 사업에서 DDT 사용을 단계적으로 줄이기 시작. 전국적인 등록 취소보다 앞서 진행된 변화로, 정부의 판단이 단번의 금지 결정이 아니라 대안 개발과 사용 축소를 거쳐 형성되었음을 보여 주는 전환.
미국 농무부가 자체 방제 사업에서 DDT 사용을 단계적으로 줄이기 시작. 전국적인 등록 취소보다 앞서 진행된 변화로, 정부의 판단이 단번의 금지 결정이 아니라 대안 개발과 사용 축소를 거쳐 형성되었음을 보여 주는 전환.
미국 마켓대학교가 톨킨에게 구입한 자료 가운데 《반지의 제왕》 원고를 인수. 자필 초고와 타자 원고, 교정쇄, 지도와 미발표 에필로그 등을 보존하여 작품의 수정 과정과 출판 역사를 연구할 수 있는 핵심 자료 기반의 형성.
친구 올가 허킨스가 항공 살충제 살포 뒤 조류 피해를 알린 편지를 계기로 카슨이 농약의 생태 영향을 다룰 책 집필에 착수. 이전부터 쌓아 온 문제의식에 정부 연구자료와 과학자들의 관찰·서신을 더하고, 약 4년간 조사와 집필을 이어간 작업.
이강천 감독의 영화 《아름다운 악녀》 제작. 최지희가 소매치기 소녀 은미를 연기해 주목받기 시작한 작품으로, 한국영상자료원이 전후 여성상인 ‘아프레걸’을 드러낸 초기 대표작으로 평가한 영화.
웨스트하틀풀 예술학교에서 디자인을 공부한 리들리 스콧이 1958년 가을 런던 왕립예술대학에 진학. 그래픽디자인과 사진, 텔레비전·영화 디자인을 접하며 시각적 표현의 기반을 다지고 1961년 ARCA 그래픽디자인 과정 수료.
《지옥화》는 신상옥이 연출하고 최은희·김학·조해원이 출연한 영화. 미군부대 물자를 훔쳐 살아가는 형과 그를 고향으로 데려가려는 동생, 두 사람 사이의 소냐를 통해 전후 사회의 생존과 욕망을 묘사.
최은희가 연기한 소냐는 적극적인 욕망을 지닌 인물. 기지촌과 도시의 소비문화를 배경으로 멜로드라마와 범죄영화의 요소를 결합한 작품.
《어느 여대생의 고백》은 신상옥이 연출하고 최은희가 가난한 법학도 소영을 연기한 멜로드라마. 학업과 사회적 성공을 향한 욕망에 거짓 신분과 법정극을 결합.
프랑스 영화 《배신》을 바탕으로 서구 멜로드라마의 구성을 한국 관객에 맞게 변용. 이후 《동심초》·《자매의 화원》으로 이어지는 신상옥과 최은희의 1950년대 멜로드라마 협업을 보여주는 작품.
진명여고가 주간 과정에 더해 야간학급을 증설. 야간 교육 규모는 1958년 180명, 1959년 180명, 1960년 165명
문교부가 국산영화의 예술적 수준 향상과 영화산업 진흥을 목적으로 우수국산영화상을 시행함. 정부가 주관한 이 영화상이 이후 대종상으로 이어지는 제도적 출발점.
독립연구서비스를 이끌며 세계청년축제에 참가할 미국 학생들을 조직함. 이 사업은 CIA의 비밀 자금을 받았고 스타이넘은 훗날 자금 출처를 알고 있었다고 인정하며 협력을 옹호함.
냉전기 미국은 소련권이 주도한 세계청년축제에 비공산권 미국 학생들이 참여하도록 지원했고, 스타이넘이 운영한 독립연구서비스가 그 사업을 맡았다. CIA 자금 연계는 1967년 언론 보도로 공개되었다.
이 경력은 스타이넘의 판단과 냉전기 자유주의의 한계를 둘러싼 정당한 비판 대상이다. 다만 이 활동은 그가 여성해방운동의 지도자로 부상하기 전인 1958~1962년에 이루어졌으므로, 이를 근거로 CIA가 이후의 여성운동 전체를 창설하거나 통제했다고 단정하는 것은 사실관계를 넘어선 해석이다.
미국 시애틀을 거쳐 뉴욕으로 이주해 본격적으로 뉴욕 전위미술계에서 활동하기 시작함. 이후 인피니티 네트 회화, 소프트 스컬프처, 설치와 퍼포먼스를 잇달아 전개함.
모리스 창은 1958년 실바니아를 떠나 빠르게 성장하던 텍사스 인스트루먼츠(TI)에 엔지니어링 관리자로 입사함. 이후 약 25년간 근무하며 반도체 사업의 제조·영업·국제 운영을 두루 맡았고, 1980년대 초 기업 그룹 수석부사장까지 승진함.
TI 재직 중에는 생산량 확대에 따라 원가가 하락할 것을 전제로 경쟁사보다 먼저 가격을 낮추는 이른바 학습곡선 가격 전략을 발전·실행함. 이는 점유율 확대와 생산 규모 확보를 통해 다시 원가를 낮추는 선순환을 만들려는 접근.
오하이오주 랭커스터 고교 2학년이던 17세 로버트 헤프트가 역사 수업 과제로, 알래스카·하와이의 주 승격을 내다보고 48개이던 별을 50개로 늘린 성조기를 직접 만들어 제출함. 교사는 '별 개수가 틀렸다'며 B−를 주었고, 이듬해 같은 배열이 공식 국기로 채택되자 학점을 A로 고쳐줌. 통설로 굳은 일화지만, 같은 도안을 낸 사람이 수천 명에 달했다는 점에서 단독 창안 여부엔 논란이 있음.
1957년 7월부터 이어진 18개월의 공식 공동관측 기간이 종료됨. 기상·지자기·태양활동·해양·빙하와 고층대기 등 여러 분야에서 수집한 자료의 분석과 교환을 계속했으며, 남극 관측과 세계자료센터 운영도 이후 지속됨.
스푸트니크 발사 이후 우주활동이 국가 간 경쟁과 국제협력의 의제로 떠오른 가운데 유엔 총회가 결의 1348(XIII)으로 우주공간의 평화적 이용을 검토할 임시위원회를 설치함. 새로운 활동 공간에서 국제협력과 법적 문제를 논의할 다자 체계를 마련한 이정표였으며, 위원회는 이듬해 상설기구로 이어짐.
존 매케이가 X-1E의 26번째이자 마지막 비행을 수행함. 이 비행에서는 새로운 추진제 U-Deta를 낮은 고도와 속도에서 시험했으며, 이후 점검에서 연료탱크 균열이 발견됨.
수리 비용과 차세대 X-15의 등장 등을 고려해 X-1E 비행은 재개되지 않았음. 일부 연구는 F-104로 옮겨졌으며, 이 비행은 X-1 계열 전체의 마지막 비행으로 남았음.
현직 민주당 주지사 W. 애버렐 해리먼을 50만 표 이상 차로 누르고 뉴욕 주지사에 당선, 이듬해 1월 취임. 민주당 강세 속에서 거둔 승리로 단숨에 전국적 정치인으로 부상. 이후 1962·1966·1970년 세 차례 재선되며 1973년까지 14년간 주정부를 이끈 4선 주지사 시대의 개막.
대한노총 제11차 전국대의원대회에서 노동절을 5월 1일 대신 전신 조직의 결성일인 3월 10일로 정한 결정. 1957년 이승만 대통령의 날짜 변경 지시를 뒤따른 조치이며, 1959년 3월 10일 기념행사로 이어진 변화.
1958년 10월 대회에서는 김기옥 중심의 지도체제도 성립. 노동절 변경 결정과 지도체제 개편이 함께 이루어진 대회. ‘근로자의 날’ 명칭의 법제화는 1963년, 법정 날짜의 5월 1일 변경은 1994년의 별도 사건.
팬아메리칸항공이 보잉 707을 이용해 뉴욕–파리 정기 여객 운항을 시작함. 미국 항공사의 정기 국제 제트여객 서비스가 출범하며, 프로펠러 중심의 장거리 운송을 제트기로 바꾸는 흐름이 본격화됐음.
초기 운항은 급유를 위한 중간 기착이 필요했으며, 오늘날의 무착륙 대서양 횡단과는 구분됨. 이후 장거리형과 엔진 개선이 이루어지면서 더 많은 노선을 효율적으로 운항할 기반이 넓어졌음.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외과의 오케 세닝이 루네 엘름크비스트가 만든 심장박동기를 아르네 라르손에게 이식한 사건. 심장 바깥면에 붙인 전극과 배 안쪽에 넣은 본체를 연결해, 전기 자극 장치 전체를 몸 안에 넣은 최초의 시도.
플라스틱 컵을 틀로 사용해 수지로 감싼 초기 장치는 약 세 시간 뒤 작동을 멈춰 다음 날 다른 장치로 교체된 상태. 첫 장치의 짧은 수명에도 불구하고, 라르손이 이후 여러 차례 장치를 바꾸며 장기간 생존한 경험은 완전 이식형 치료의 가능성을 보여 준 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