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벤트 18,168

정렬

1940 5건
86년 전

이광수가 1940년 2월 20일 『매일신보』에 「창씨와 나」를 게재함. 자신의 이름을 향산광랑(香山光郞)으로 바꾼 이유를 밝히고 일제의 창씨개명 정책을 지지함. 황민화운동과 내선일체를 선전한 이광수의 친일 행위가 공개적으로 드러난 대표적 사례.

1939 15건
87년 전

80대를 맞은 타벨이 자신의 생애와 직업 경험을 《하루의 일 속에서》에 정리해 출간. 석유지역의 어린 시절과 대학 교육, 파리 연구에서 잡지 편집과 산업 조사까지 이어지는 선택을 직접 돌아본 기록. 유명인과의 만남을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료를 구하고 취재원을 만나며 판단을 수정했던 과정을 설명한 저술. 후반부에는 전쟁과 산업, 강연 활동과 사회 변화까지 다루어 스탠더드 오일 보도 이후에도 이어진 관심을 보여주는 구성. 자신의 보도를 단순한 폭로나 공격으로 이해하는 시각과 거리를 두고 역사 연구와 공적 이해에 대한 책임을 강조한 회고.

일본의 전시 노동력 확보 정책 아래 조선인들의 사할린 동원이 본격화됨. 탄광과 토목·벌목 등 산업 현장에 투입할 인력을 ‘모집’하는 과정에도 식민지 행정기관의 개입과 통제가 작동함. 이전부터 이어진 농업·생계 이주와 구별되는 전시 강제동원이 확대되었으며, 이후 사할린 한인 사회의 형성과 가족 이산에 깊은 영향을 남김.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이후 1939년부터 1943년까지의 노벨평화상이 수상자 없이 남음. 1940년 독일의 노르웨이 점령으로 위원회의 활동 환경이 크게 제약되었으며, 위원들이 흩어진 1943년부터는 회의도 중단됨. 전쟁이 끝난 뒤 위원회가 다시 모여 국제적십자위원회에 1944년분 평화상을 수여하기로 결정함. 수상 대상 연도와 실제 선정·시상 시점이 어긋난 전시 상황을 보여 주는 사례.

기상업무의 경제·기술적 중요성이 커지면서 IMO의 비정부기구적 구조를 정부간 체제로 바꾸려는 협약 초안 마련. 제2차 세계대전으로 승인 절차가 지연되는 가운데 사무국을 중립국 스위스로 이전하며 전후 WMO 설립 논의로 연결된 준비 단계.

세계기상기구

제2차 세계대전 발발 뒤 민간 승용차 대량생산 계획이 중단되고 군수생산·강제노동 체제로 전환된 시기.

전쟁 발발로 국민차의 민간 대량생산 계획이 중단되고 군용차와 군수품 생산 중심으로 전환. 유럽 점령지 출신 노동자·전쟁포로·강제수용소 수감자 등 약 2만 명을 강제노동에 동원했으며, 1944년에는 강제노동자가 전체 노동력의 약 3분의 2를 차지.

폰 미제스가 이스탄불 대학교 이학부 학술지에 논문 「Über Aufteilungs- und Besetzungswahrscheinlichkeiten」을 발표하며 생일 문제의 한 형태를 처음 활자화함. 이후 이 문제가 확률론 입문의 고전 사례로 자리 잡는 출발점이 된 첫 공식 출판.

생일 문제

뉴욕 현대미술관이 알프레드 H. 바 주니어의 기획으로 피카소의 약 40년 작업을 망라한 회고전 개최. 시카고 미술관과 공동으로 준비되었으며, 《게르니카》와 관련 습작을 미국 관람객에게 소개한 중요한 전시.

《게르니카》가 스페인 구호를 위한 순회와 동시대 정치의 맥락을 지니면서도 현대미술사의 핵심 작품으로 자리 잡아 간 장면. 전쟁으로 유럽 정세가 악화된 가운데 작품의 장기 미국 체류로 이어진 뉴욕 전시사의 이정표.

게르니카 (피카소) 뉴욕 현대 미술관 (MoM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