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모 해위해, 전공 인정받아 명예 소총과 증서 수여받음
제12사단장 안테로 스벤손 대령으로부터 스웨덴 사업가 에우겐 요한손이 기증한 명예 소총과 증서를 전달받음. 당시 핀란드군 사진 기록은 해위해가 자신의 소총으로 219명을 사살했다고 기록함.
제12사단장 안테로 스벤손 대령으로부터 스웨덴 사업가 에우겐 요한손이 기증한 명예 소총과 증서를 전달받음. 당시 핀란드군 사진 기록은 해위해가 자신의 소총으로 219명을 사살했다고 기록함.
이광수가 1940년 2월 20일 『매일신보』에 「창씨와 나」를 게재함. 자신의 이름을 향산광랑(香山光郞)으로 바꾼 이유를 밝히고 일제의 창씨개명 정책을 지지함. 황민화운동과 내선일체를 선전한 이광수의 친일 행위가 공개적으로 드러난 대표적 사례.
일본 오사카에서 한국인 부모 사이에 김경자라는 이름으로 출생. 프랑스국립도서관의 배우 전거에 기록된 생년월일은 1940년 1월 22일.
조선일보사에서 판소리 명창들의 생애와 예술, 유파 이론을 정리한 저술 출판. 이후 판소리 연구의 기초가 된 자료이면서, 구술과 기록에 담긴 오류·편향을 비판적으로 대조할 필요가 있는 문헌.
1940년 1월 1일 경기도 파주에서 출생함. 파주에서 유년기를 보내고 한국전쟁을 겪은 뒤 서울에서 학업을 이어감.
경희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1960년대 중반 방송계에 진출해 아나운서·DJ·MC로 활동하게 되는 생애의 출발점.
80대를 맞은 타벨이 자신의 생애와 직업 경험을 《하루의 일 속에서》에 정리해 출간. 석유지역의 어린 시절과 대학 교육, 파리 연구에서 잡지 편집과 산업 조사까지 이어지는 선택을 직접 돌아본 기록. 유명인과의 만남을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료를 구하고 취재원을 만나며 판단을 수정했던 과정을 설명한 저술. 후반부에는 전쟁과 산업, 강연 활동과 사회 변화까지 다루어 스탠더드 오일 보도 이후에도 이어진 관심을 보여주는 구성. 자신의 보도를 단순한 폭로나 공격으로 이해하는 시각과 거리를 두고 역사 연구와 공적 이해에 대한 책임을 강조한 회고.
일본의 전시 노동력 확보 정책 아래 조선인들의 사할린 동원이 본격화됨. 탄광과 토목·벌목 등 산업 현장에 투입할 인력을 ‘모집’하는 과정에도 식민지 행정기관의 개입과 통제가 작동함. 이전부터 이어진 농업·생계 이주와 구별되는 전시 강제동원이 확대되었으며, 이후 사할린 한인 사회의 형성과 가족 이산에 깊은 영향을 남김.
프란세스크 데 파울라 킨타나가 공사를 이어받음. 파괴를 면한 자료와 출판물, 복원한 석고 모형을 바탕으로 건설을 재개한 과정.
듀폰이 뉴욕 세계박람회에서 나일론 스타킹을 전시하고 시연함. 회사는 새로운 합성섬유의 의류 적용을 소개했으며, 스타킹은 상업 생산과 판매를 준비하던 나일론의 대표 제품이었음.
파울 뮐러가 DDT의 곤충 방제 효과를 확인. 곤충 몸에 닿아 작용하는 약제가 질병을 옮기는 모기와 이를 통제할 수 있다는 가능성의 발견. 훗날 노벨상으로 이어진 연구 성과.
낮에는 특허 업무를 하고 밤에는 뉴욕 로스쿨에서 공부한 끝에 법학 학위 취득. 물리학 지식에 법률 훈련을 더해 발명과 특허를 함께 다루는 전문성을 갖춘 단계.
건청궁이 사라진 자리에 조선총독부 미술관이 들어섬. 왕과 왕비의 거처였던 공간이 식민지 통치기관의 전시시설 부지로 바뀌었으며, 이 건물은 해방 이후에도 박물관·전시관 용도로 사용됨.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이후 1939년부터 1943년까지의 노벨평화상이 수상자 없이 남음. 1940년 독일의 노르웨이 점령으로 위원회의 활동 환경이 크게 제약되었으며, 위원들이 흩어진 1943년부터는 회의도 중단됨. 전쟁이 끝난 뒤 위원회가 다시 모여 국제적십자위원회에 1944년분 평화상을 수여하기로 결정함. 수상 대상 연도와 실제 선정·시상 시점이 어긋난 전시 상황을 보여 주는 사례.
기상업무의 경제·기술적 중요성이 커지면서 IMO의 비정부기구적 구조를 정부간 체제로 바꾸려는 협약 초안 마련. 제2차 세계대전으로 승인 절차가 지연되는 가운데 사무국을 중립국 스위스로 이전하며 전후 WMO 설립 논의로 연결된 준비 단계.
콜먼 호킨스가 테너 색소폰으로 《Body and Soul》을 녹음. 익숙한 멜로디를 그대로 따라가기보다 화음의 흐름을 바탕으로 새로운 선율을 만들어내는 즉흥연주를 펼침. 테너 색소폰 연주자들이 반복해서 참고하는 중요한 재즈 해석으로 남은 녹음.
제2차 세계대전 발발 뒤 민간 승용차 대량생산 계획이 중단되고 군수생산·강제노동 체제로 전환된 시기.
전쟁 발발로 국민차의 민간 대량생산 계획이 중단되고 군용차와 군수품 생산 중심으로 전환. 유럽 점령지 출신 노동자·전쟁포로·강제수용소 수감자 등 약 2만 명을 강제노동에 동원했으며, 1944년에는 강제노동자가 전체 노동력의 약 3분의 2를 차지.
폰 미제스가 이스탄불 대학교 이학부 학술지에 논문 「Über Aufteilungs- und Besetzungswahrscheinlichkeiten」을 발표하며 생일 문제의 한 형태를 처음 활자화함. 이후 이 문제가 확률론 입문의 고전 사례로 자리 잡는 출발점이 된 첫 공식 출판.
겨울 전쟁 개전 뒤 JR 34와 함께 콜라강 방어선으로 이동한 뒤 저격수로 활동하기 시작함. 정확한 시작일은 확인되지 않아 월 단위로 기록함.
듀폰이 델라웨어주 시퍼드 공장에서 나일론의 상업 생산을 시작함. 고분자 합성과 용융 방사를 공장 규모로 수행하여 섬유를 공급하는 생산 체제가 가동됨.
뉴욕 현대미술관이 알프레드 H. 바 주니어의 기획으로 피카소의 약 40년 작업을 망라한 회고전 개최. 시카고 미술관과 공동으로 준비되었으며, 《게르니카》와 관련 습작을 미국 관람객에게 소개한 중요한 전시.
《게르니카》가 스페인 구호를 위한 순회와 동시대 정치의 맥락을 지니면서도 현대미술사의 핵심 작품으로 자리 잡아 간 장면. 전쟁으로 유럽 정세가 악화된 가운데 작품의 장기 미국 체류로 이어진 뉴욕 전시사의 이정표.